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캇아빠 Mar 20. 2024

억수로 운 좋은 사람 이야기

그게 나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뇌종양으로 머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이혼하고, 캐나다에서 싱글파더로 10년을 혼자 살았는데도요?”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고 얼마 후 던진 내 말에 여자친구는 적잖이 놀랐었다. 하지만 그녀도 곧 내 말에 수긍하고 부럽다는 말과 함께 자신도 나처럼 운이 좋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란 말을 누가 했단다. 그 반대였나? 뭐가 되었든 인생을 보는 방법에 따라 희비극이 반대가 된다는 말 같다. 그리고 정말 그 말에 공감이 가기는 하는데, 사실 나는 멀리서 봐도 운이 좋고 가까이 봐도 운이 좋다.


나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았다. 건강하게 태어났고, 회사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님 덕에 부자는 아니지만 돈걱정 없이 살았었다. 당시에는 맞벌이하는 집이 별로 없어서 학교 끝나고 텅 빈 집으로 돌아가는 일에 화가 났지만 곧 그게 엄청난 자유라는 사실에 환호했다.


학교생활은 나름 재미있었는데 성적은 좋지 못했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은 내가 고등학교를 못할 거라고 어머님에게 말했었고, 고등학교 2학년때는 인문계이지만 직업반으로 반을 옮겨야 하니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중3담임은 촌지를 노린 협박 아닌 협박이었고 직업반은… 잘 기억이 잘 안 난다. 내가 그렇게 공부를 못했었나?


대학시험은 또 정말 운이 좋게도 연합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었다. 달달달 외우는 시험에서 수학적 능력을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암기를 잘해야 풀 수 있는 문제에서 그렇지 않은 문제가 나왔다. 바로 윗학년에서부터 바뀌었는데 과도기에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나는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처음 가채점한 점수를 고3담임선생님께 이야기했을 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름만큼은 번드르르한 연세대에 들어갔다. 동네 독서실 아저씨가 어머니께 아들 대학 어디 갔냐고 빈정거리며 물어봤을 때 어머니가 연세대 갔다고 말하자 아저씨가 정말 놀랬었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통쾌하다. 동네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났던 누나는 과학고에, 서울대에 가는데 동생은 맨날 꼴등만 하는 놈이라고 매번 무시받았었다. (뭐 말썽 부린 거는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어쨌든 그날만큼은 연영과가 있는 단국대 말고 연세대로 선택한 것이 잘했다고 느껴졌었다. 그렇다 나는 단국대와 연세대에 합격했었다. 둘 다 추가합격으로 붙은 거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학교 들어갔지만 공부 안 하던 사람이 대학교 가서 공부를 할리 만무했다. 학고를 2번 받고 한번 더 받으면 제적이라는 말에 어머니는 강제로 군대로 밀어 넣었고, 나는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노느니 기술이라도 배우라는 말에 컴퓨터를 배우고 지금은 컴퓨터 개발자로 나름 고액연봉자가 돼버렸다.


이혼은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똑똑한 아이들을 갖게 됐고, 애들 엄마가 애들을 내가 키우는 것을 허락해 줘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뇌수술을 두 번 받기는 했지만 같은 병동에 누워 있던 아저씨 아줌마들에 비하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중환자실이 지겹다고 의사 선생님께 푸시 아닌 푸시를 했다고 혼이 나기는 했지만 덕분에 항상 불이 켜진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실에서 이어폰 끼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으니 운이 좋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멀쩡하다는 게 창피해서 커튼을 치고 있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쪽이 안 들리는 귀는 어차피 두귀가 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너무 빨리 말해서 못 알아들을 때는 들리는 귀를 감싸 반쯤 열어놓고 파든? 아니면 왓?이라고 말하면 말하는 사람은 곧 미안하다는 듯이 천천히 말해주고는 한다. 사실 들리는 게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다만, 사춘기 딸한테는 이 방법이 잘 안 통하지만 말이다. 더불어 한쪽귀가 안 들리면 숙면에 유리하다.


회사는 언제나 운이 좋았다. 지방컴퍼스지만 그래도 연세대라고 좋은 회사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고, 그리고 운이 좋게 NHN과 네오위즈게임즈 같은 나름 이름 있는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어쩔 때는 연세대끼리 뭉쳐야 한다면서 자기 라인으로 들어오라는 상사의 유혹도 있었지만, 원래 강직한 성격인척 둘러대기도 했다.


나는 나의 이상형과 결혼을 약속했다. 자기 독립적이고, 한없이 착한 마음을 가진 데다, 얼굴까지 이쁜 내 여자친구는 나보고 내가 자기의 이상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 여자친구는 이런저런 이유로 남자를 사귄적이 없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잘 모른다. 한 번은 "오빠, 진짜 객관적으로 나 여자로서 매력 없어? 왜 나는 남자가 없었을까?"라고 물어봐서 대답해 줬다.

"몰라. 뭐 나야 너무 좋지. 역시 나는 운이 좋아" 라고


작가의 이전글 죽음을 준비해 보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