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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r 21. 2024

나 주술사가 될래

“나 주술사가 될까 봐 “

검지와 중지를 꼬고, 가슴에 삼각형을 그리면서 여자친구에게 말하자, 여자친구가 소스라치게 놀랬다.


“꺄악! 그게 뭐야! 뭐야 그게 초등학생도 아니고오! 도대체 그게 뭔데?”

연신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는 내게, 여자친구는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그게 뭔지 들어나 보자는 듯 물었다.


“주술회전이라고 애니메이션인데, 완전 멋있어. 그래서 나도 주술사 할래”




난 첫 번째 뇌종양 수술을 받고 난 후 난 내 감정에 좀 더 충실해질 수 있었다. 어차피 한번 갔다가 사는 인생,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다가는 말 한번 못하고 죽겠구나 싶었다.


물론, 얼마 안 있다가 다시 조심하고 이리저리 재는 나로 돌아왔지만, 2년 후 두 번째 수술이 있었고, 또 코로나가 있어서, 반 강제로 나는 내 마음을 다시 다질 수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맛있다고 말하기

이쁜 것을 봤을 때 이쁘다고 표현하기

선한 행동을 발견했을 때 멋지다고 하기

멋있는 것을 볼 때 칭찬을 아끼지 않기

훌륭함을 발견하면 훌륭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기


살다 보면, 칭찬을 아낄 때가 생기게 된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괜찮다고 말하고, 예쁜 사람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면 내 말을 오해할까 걱정한다. 선한 행동을 보면 내가 그렇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내가 모자라다고만 느끼고, 멋있는 것을 봐도 더 멋있는 것을 봤다며 칭찬을 아낀다. 그리고 훌륭함을 발견하면 질투하게 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고, 억울하다고 느끼고, 상대를 깎아 내려고 한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본 좋은 것이 좋았다고 말할 기회가 어쩌면 다시는 안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었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내가 남은 인생에서 이보다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없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팁이 없으니까 말로라도 감사인사를 듬뿍한다 (제가 가난해서 팁은 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고래가 춤을 추던, 공중 3회전을 하던, 당구를 치던? 내가 본 고래가 멋지면 내가 운이 좋은 거고 멋짐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고래가 당구를 치면 사진 찍어서 팔아야 한다)



어제 하루종일 유튜브 안될과학채널에서 김갑진교수님의 물리학 강의를 들었다. 어쩜 그리 설명을 잘해 주시는지,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찾아가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나 일 그만두고 물리학자가 될까 봐, 일단 머리를 아인슈타인처럼 회색으로 염색할까 하는데? 주술사는 나중에 하지 뭐.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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