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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r 29. 2024

책을 읽는 것이 점점 불편해질 때

안경 쓰기 싫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엎드려서 자는 놈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불쌍한 놈들 또 걸렸구나 했다. 그래서 킥킥거리며 웃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친히 나를 콕 찝어서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자지 않았다. 학교에서 매맞는게 특별할게 없던 시절이긴 했지만, 항상, 언제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학생으로서, 수업 중 딴짓을 한다고 혼나는 일이 있을지언정 잔다고 혼난적은 거의 없었다.


“너는 어제 저녁에 뭐 하느라, 수업시간에 자고 있어?”

선생님은 손에 드럼스틱 같이 생긴 막대기를 들고 한 명씩 때리면서 같은 질문을 계속했고, 곧 내 차례가 됐다.


“저 안 잤는데요? 저 책 보고 있었어요”

어차피 이래 맞으나 저래 맞으나 별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마음에 나의 억울함을 말씀드렸다.


“그렇게 책에 코를 박고 책을 어떻게 봐?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네”

내 말은 이전부터 행해져 오던 타작 의식을 멈출 수 없었고, 수많은 엉덩이를 때려왔던 냉혈한 막대기는 선생님이 원래부터 의도했던 대로, 수없이 행해져 왔듯이, 완벽한 괘도로, 내 엉덩이를 때렸다. 그리고 내 말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앞에서 맞았던 진짜  수면을 취했던 친구들보다 더 강하고 빠른 속도로 내리쳤다.


“정말로 책 보고 있었어요”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냥 몇 대 맞고, 자리에 돌아가 앉으면 다 끝난다는 걸, 그런데 그날은 왜인지 평소 같지 않게 한마디를 보탰다. 물론 내가 바람직한 학생은 아닐지라도, 그날만큼은 정말로 책을 보고 있었고 가뜩이나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보면서 그래도 나름 “공부”라는 걸 하고 있었는데, 불쌍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지도 않은 일을 이유로 때리다니 억울했다. 사실, 뭐, 선생님의 타작스윙 사이에 시간을 벌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럼, 읽어봐!”

선생님은 내게 책을 주시며 눈앞에 붙여서 읽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좋은 목소리도 아니지만 나는 보란 듯이 책을 읽었다. 눈앞에 있는 책은 두 눈으로 초점을 맞춰가면서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한쪽 눈을 감고 보면 어떤 글자인지 알 수 있어서 읽기에는 충분했다.


“누가 그렇게 읽으래! 눈 나빠지게!”

나는 결국 맞아야 할 대수를 다 채우고 추가로 몇 대를 더 맞은 후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나는 선생님을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봤지?’라는 눈빛을 친구들에게 보내며 의기양양하게 (동시에 엉덩이를 비비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내 뒤에 곧 맞을 친구들에게 ‘진짜 아파!’ 라고 입모양으로 겁을 주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 내 책상에는 돋보기 안경이 놓여있다. 식탁 옆에도, TV 소파옆에도, 침대옆에도…


나이가 든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혹자는 숫자일 뿐이라고 하고, 혹자는 머릿속 시계가 빨라지는 것이라고 하고, 혹자는 창피함이 없어지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들 애써 무시하고 있지만, 나이가 드는 건 몸이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생각이 예전만큼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둑 천재 이창호도 이제 초읽기에 몰리면 답이 없고, 두 개의 심장 박지성도 예전처럼 뛸 수 없다. 정우성도 예전만큼 잘생기지 않고, 톰 크루즈도 청혼했다가 거절당하더라. BTS도 나이 들고 블랙핑크도 다 나이 들겠지.


그러니까… 제발.. zoom 미팅할 때 글자 좀 키워줄래?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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