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캇아빠 Mar 03. 2024

작은 마을에서 살면 일어나는 일들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름

어렸을 때 저는 강남에서 살았습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말씀드리자면, 제가 어렸을 때 강남은 잘 사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사람 많기로 유명한 고속터미널 근처에서요. 어려서부터 아파트에 살았고, 고속터미널 지하에서 물건을 사시는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그 터미널 지하상가를 다니면서 학교 통학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1년 365일 시장 같은  곳이었죠. 다시 말하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살았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면 한 가지 반갑지 않은 능력이 생깁니다. 그건 사람들을 무시하는 방법입니다. 깔보거나 업신여긴다는 뜻이 아닌 정말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그 무시말입니다. 사람의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야가 꽤 넓다고 합니다. 또 사람의 귀는 정말 많은 소리를 듣고요. 하지만 뇌는 시각으로 보이는 또는 청각으로 들어지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 처리하는 대신 선별적으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사람 많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을 보되 사람을 보지 않고 목소리를 듣되 듣지 않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저는 그런 한국을 떠나 인구 6만의 프레데릭턴이라는 작은 도시로 이민을 왔습니다. 벤쿠버나 토론토 외곽도 아니고, 핼리팩스나 캘거리 같은 작지만 그래도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아닌, 정말 소도시로 말이지요. (사실 인구 6만이면 City라고 부를 수 없지만, 뉴브런즈윅이라는 주의 주도라는 이유로 도시라고 부릅니다.) 프레데릭턴으로 오시려면 일단 직항이 없습니다. 인천에서 토론토까지 오셔서 토론토에서 2시간 비행기를 타시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지요. 주변에서 가장 도시 같은 곳은 핼리팩스인데, 프레데릭턴에서 5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도시구경 가느라 운전해서 갔었더랬죠) 물론 주변에서는 꽤 큰 도시입니다. 영화관도 있고, 월마트도 2개나 있으니까요. 신호등도 도시 내에 한 45개쯤 됩니다. 강북에 20개, 강남에 한 25개 정도? (지금 세어보다가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저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곳에서 작은 마을로 이사 오게 되었죠.


그리고 저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살면 사람이 한없이 귀합니다. 앞집에 사는 제나스부부 아저씨/아줌마, 대각선집에서 사는 전직 프로레슬러 스티브가족, 언제나 잔디를 이쁘게 깎아두시는 할머니, 눈이 안 보이는 노견을 키우는 같은 블록 아저씨. 하다못해 산책 중에 가끔 만났던 할머니까지 모두 귀합니다.

물론 작은 마을이라고 이상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몇 단계만 거치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냥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됩니다. 실제로도 정말 그러니까요.


작은 마을에서 살면 마음에 드는 상점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곳을 찾으러 5시간씩 운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입맛에 꼭 맞는 햄버거 가게, 언제나 푸짐하게 퍼주는 아이스크림 가게, 몇십 년째 내려오는 아침식사집 (테이블이 6개 정도 되니까 정원은 많이 잡아야 30명 정도?), 1년에 한 번 오는 카니발 (놀이기구가 5개 정도 있지만, 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파머스 마켓에서 파는 Donair (이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 , 그런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꼭 주기적으로 가봐야 합니다. 아니면 가게가 문을 닫을 수도 있고, 카니발이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작은 마을에 살면 산책하다가 만나는 사람을 반가워하게 됩니다. 가끔은 1시간을 걸어도 사람 한 명을 만날 수도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반갑게 인사하고 가볍게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실제로 한 번은 시내에 있는 오델파크(한 바퀴 돌면 1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작은 센트럴 파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는지)에서 길 잃은 관광객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주차장 가는 길을 묻기에, 말로 가르쳐 줬더니 너무 불안해해서 주차장 근처까지 데려다줬었던..) 그래서 누굴보든 웃으며 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작은 마을에 살면 정보의 불균형이랄 게 없습니다. 어디에 무슨 가게가 있고, 이번에 무슨 공원에서 컨트리송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든지, 새로운 일본식 라면가게가 오픈을 했다던지, 어느 공장에서 애플픽킹을 시작했다던지 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사거나, 무슨 공연을 보거나, 맛집 탐방을 거나, 아이들과 사과농장에 가는 일들에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 차이가 없습니다. 더욱이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의 차이가 없을뿐더러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도 별로 없습니다. (물론 부자들은 겨울에 플로리다로 간다고 하긴 하더라)


그렇게 저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같은 삶에서 작지만 소중한것 들을 내것으로 느끼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시의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이 과연 행복을 줄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같이 저녁에 혼자 TV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면 유난히 프레데릭턴이 더 그립네요. 언젠간 다시 돌아가 살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