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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둡 Feb 23. 2024

길 위에서 | 4

터널의 중간

사실 숨긴 빚과 와이프의 실직은 내 '공황'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상관관계가 있다. 잔뜩 계면쩍은 표정으로 아마 일을 그만둬야 될 것 같다는 와이프 말을 듣고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고민했다. 당시 와이프는 어땠는가? '역할과 생산성을 상실한 난소 같다' 느니 '사회적 폐경'이라느니 하소연이나 하고 있고 당장 이런 감회가 무슨 소용이라고.  대거리할 자신 없어 '좀 쉬고 천천히 생각하자' 하고 급히 마무리 지었었다. 와이프는 그때, 또는 그 이후에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고 했다.


"말하지만 당신의 실직이 나에게도 직격타는 아니었지만 유효타는 됐었다고"


최종 '공황'에 이르는 데 있어 한 줌 이상은 일조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안 버는 것만으로도 미안해했는데 그걸 숨기고 그리 당당했냐고 또 따졌다. 원래 우리 부부의 월급은 각자 관리되었다. 생활비를 각출하고 나머지 돈의 운영권은 본인이 가진다. 나는 빚이 아니라 실수를 숨긴 것이다. 그 실수에 죄책감을 느꼈고 미안하기도 했다.


"눈치 보며 살살거리는 거 안보이디?"


앙칼지다.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것, 도어록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현관 앞에 한달음에 서서 배시시 웃으면 왔냐고 반겨 주는 것, 그걸 애쓰지 말라 하면 가여운 내 와이프가 얼마나 무안해할까?


"미안해. 너도 이제 편해져. 나 그런 사람 아냐. 돈 못 벌어 온다고 타박하는 사람 아니라고 "


금액을 들었음에도 와이프는 전혀 다른 것을 추궁했다. 나는 그저 꽤 받았을 퇴직금 운용을 어찌 할지가 궁금 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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