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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Apr 10. 2024

꽃이 활짝 핀 봄날의 창덕궁 나들이

거센 추위로 옷깃을 여며야 했던 것이 바로 얼마 전 일인데, 벌써 완연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낮 기온이 20도를 넘어서고 있으니 봄이 찾아왔다기보다는 떠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한반도 기후의 특색이라고 배웠던 것이 무색해지는 요즘 날씨입니다.



눈 깜짝하면 지나가 버리는 봄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꽃구경이 아닐까 싶은데요, 전국에 많은 꽃구경 명소 중 저희는 창덕궁을 찾았습니다. 운 좋게 창덕궁 후원 예매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막상 가서 보니 휴일임에도 아침 10시 전에는 늦은 시간이나마 창덕궁 후원 현장 예매가 가능하기는 했습니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살짝 가려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 경복궁에 못지 않은 역할을 했던 궁입니다. 조선왕조 개창과 더불어 설립된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이 건립된 후, 3대 왕인 태종은 자신이 경복궁에서 벌인 피바람이 부담스러웠는지 새롭게 창덕궁을 지어 그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후 왕들은 경복궁과 창덕궁 중 취향에 맞는 쪽을 선택하여 머물렀다고 하죠.


그러다 임진왜란으로 수도 서울의 모든 궁이 불타버리고, 환궁한 선조는 복구에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은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먼저 복원하기로 합니다. 그 이후 경복궁은 대원군이 재건할 때까지, 즉 조선왕조의 황혼기까지 터만 남아 있게 되었고 그 자리를 창덕궁이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조선왕조의 실질적인 법궁 역할을 더 오래 한 것은 창덕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울에 남아 있는 소위 조선 5대 궁궐 중, 창덕궁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유일하게 등재되어 있습니다. 사실 해외여행을 나가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다 하면 일부러라도 찾아가보곤 하는데, 정작 집에서 멀지 않은 창덕궁은 잘 찾지 않으니 가까이 있으면 소중한 줄 모른다는 옛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창덕궁이 유일하게 등재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조선왕조 궁궐의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창덕궁의 특별함을 다른 곳에서 더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창덕궁이 꽃구경 하기에 가장 좋은 궁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면, 경복궁과 같은 위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경복궁 뿐 아니라, 프랑스의 베르사유,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중국의 자금성 등 대부분의 궁은 정문에서 시원하게 넓은 공간이 나오고, 그 일직선상에 군주의 위엄을 상징하는 본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이런 건축 형태가 보편적인 이유는, 아마도 가장 위엄과 압도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가 이런 구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궁이란 모름지기 군주의 권위의 상징이니까요.


하지만 창덕궁은 들어서면 행정관청인 궐내각사만 보입니다. 아, 사실 꽃나무가 보이죠. 요즘 정말 예쁩니다. 여기서부터 꽃구경 시작이라 할 수 있죠.



그러면, 정전인 인정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정전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들어간 다음, 다시 왼쪽으로 90도를 꺾으면 볼 수 있습니다. 기묘한 구조죠. 거대한 궁이 들어온 사람을 압도한다는 위용과 느낌이 없습니다. 이는 창덕궁과 이어진 산세와 지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자연을 정복하여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를 살리고 그와 동화되는 건축을 한 셈입니다. 습지를 모두 메우고 멀리서 물을 끌어다 정원을 만든 베르사유와 대조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해치지 않고 어울리도록 건축했다는 점을 이 창덕궁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창덕궁의 꽃나무들이 다른 곳 보다 더 어울리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인정전 앞을 지나, 낙선재로 내려가기 전에 후원, 일명 비원의 입구가 있습니다.

비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요, 이 또한 평평하게 밀어버리지 않고 능선을 그대로 살려 오히려 후원을 구분된 별도의 공간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후원의 고개를 넘어 들어가면, 부용지라는 작은 연못이 나옵니다. 단풍이 들면 그야말로 절경입니다만, 봄날의 부용지 또한 멋진 광경입니다. 네모 반듯한 연못 가운데에는 둥그런 인공 섬이 있는데, 과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의 사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와 수풀은 이 연못이 인공적인 것이라는 느낌을 들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2층 누각인 주합루는 1층에 그 유명한 규장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합루 옆 부용정은 열 십자 모양의 작은 정자인데, 모두 일직선 또는 대칭을 이룬 것이 아니라 연못 근처로 흩어지듯 위치하고 있어 인공적이라는 느낌이 덜합니다.


여기서 다시 걸음을 옮기면 또 작은 연못인 애련지가 나옵니다. 애련지 옆으로는 단청이 없는 수수한 의두합과 역시 작은 문인 불로문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궁궐 내라고 보기 어려운 한적한 공터에 여러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이 공간을 통과하면 연경당이 나옵니다.


연경당은 이 궁의 소박한 정취를 더욱 고취시키는 것 같은 공간입니다. 궁의 건축양식이 아닌 일반 사대부 저택과 같은 수수한 양식으로 지어진 연경당은 연회를 위해 지어진 공간입니다. 연회를 위한 공간이라고 하면 거울의 방 같은 화려한 양식의 공간이 생각나는데, 오히려 수수한 사대부 저택의 형식을 따랐습니다.



아쉽게도 옥류천 일원은 현재 방문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발길을 돌립니다. 예전 단풍철에 후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하늘을 뒤덮는 듯 한 단풍의 절경에 미처 보지 못했던 비원의 건축물과 자연환경의 조화가 오히려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존덕정과 관람정 영역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 유명한 정조의 '만천명월주인옹' 현판이 존덕정에도 걸려 있습니다.


만 개의 시내가 있지만 달은 오직 하나뿐, 자신이 바로 하늘의 달이며 시내는 바로 신하들과 백성들이라는 생각이 드러나 있습니다. 화려한 정자의 단청과 주위의 환경이 잘 어우러지는 듯 한데요, 단청은 화려하지만 정자의 크기는 주변 경관을 해칠 만큼 거대하지 않습니다.


이 후원에서 건축양식 면에서는 가장 화려하다고 하는 관람정입니다.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어 일반적인 형태와 크게 다른데요, 그 형태로 인해 지붕도 넓게 펼쳐진 듯 한 풍경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관람정은 과도한 화려함으로 인해 오히려 왕조의 쇠퇴를 상징하는 듯 하다는 평을 남겼는데, 그러한 관람정도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의 신록 앞에서는 그 화려함이 돋보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존덕정 영역에서 다시 연경당 쪽으로 하여 후원을 나섭니다. 사실 창덕궁 후원은 이 수려한 길 또한 일품인데요, 이 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세계적인 규모의 대도시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권역이라니, 믿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슬슬 후원을 둘러보고 나오다 보면, 그 유명한 향나무가 후원 관람의 끝을 알립니다.

이 향나무는 용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인데, 태풍 곤파스로 인해 훼손되기 전에는 10m 이상 큰 나무였다고 합니다. 수령이 700년 이상 된다 하니 창덕궁 건설 시기부터 있었던 셈이죠.


이렇게 후원만 둘러보기는 아쉬워 궁 곳곳을 돌아봅니다. 언뜻 보기에는 질서있지 않게 흩어져 있는 전각들이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를 느끼게 합니다.


멀리, 높이 있는 꽃나무 말고 이 작은 틈,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발 밑에도 이렇게 소리없이 봄은 찾아왔습니다.



봄의 꽃들은 어떻게 이렇게 저마다 화려한 색을 갖게 되었을까요.

매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맘때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자연의 색은 어떤 말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선의 고궁 정원이라면 빠질 수 없는 화계입니다.

사실 궁궐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원의 중요한 포인트인데, 보통 산이나 언덕을 등지고 집을 짓기 때문에 뒷동산의 경사를 활용하여 이렇게 정원을 계단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과도하게 인공적이지 않으면서도 잘 정돈된 느낌을 주는 것이 그야말로 이 궁이 주는 느낌을 집약시켰다 싶습니다.


사실 이 화계는 실용적인 용도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요. 배산임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선조들은 뒷동산이 있는 자리에 집을 짓곤 했는데, 문제는 비가 와서 이 뒷동산의 흙들이 쓸려 내려오면 피해가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단을 쌓기 시작했고, 쌓은 김에 흙도 붙들어 둘 겸 미관도 살릴 겸 이런 화계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화계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꽃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왕조가 종말을 고했던, 마지막 황족들이 살았던 낙선재. 황족은 돌아오지 않지만 어김없이 봄은 돌아와 이렇게 화려한 꽃을 피워냅니다.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창덕궁 꽃구경이었습니다.

창덕궁의 비원이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만, 비원을 보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꽃나무들이 궁궐 여기저기에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궐내각사 관람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나들이가 될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많지만 궁도 그만큼 넓기 때문에,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한갓지게 산책하기에도 좋구요. 굳이 이 전각이 무엇이라더라, 어떤 역사적 가치가 있다더라 하면서 관람할 필요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들, 꽃과 나무, 물과 산, 전각과 사람을 자신의 느낌 그대로 즐기기만 해도 좋은 계절입니다.



꽃구경 명소가 전국에 많이 있지만, 멀리 떠나기 부담스러울 때,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곳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사실 어디에나,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발 밑의 조그마한 틈새에도 봄은 이미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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