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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Aug 25. 2024

인생은 한 그릇의 프렌치 수프

Pierre gagnaire in Seoul, 2024

(이 글은 영화 '프렌치 수프'와, 이 영화의 음식 자문을 맡은 세계적인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이 영화의 요리를 모티프로 구상한 코스 요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영화와 관련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교양 강의로 듣고 있는데요, 영화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인정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미지의 의미화' 라고 합니다. 단순히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방법(단절과 연결)을 통해 새로운 의미 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인위적인 구성을 지닌 하나의 창작물, 그리고 그 창작물이 새로운 의미 체계를 창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영화는 예술의 한 갈래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음식은 어떨까요?


이미 예술 장르로서 인정받은 '영화'인 '프렌치 수프'는 영화의 소재로서 음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는데요, 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는 아니지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등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과 같이 프랑스 음식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는데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프랑스의 유명한 셰프인 '피에르 가니에르'가 직접 음식과 관련한 자문을 맡았습니다. (단순히 자문에 그치지 않고, 특별 출연까지 했습니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외제니와 도댕은 20여년간 함께하고 있는 사이입니다. 함께하고 있는 사이라는 표현은 다소 모호하죠. 남자 주인공인 도댕 부팡은 벨 에포크 시대의 미식가입니다. 교외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대 저택을 가지고 있으며, '주방의 나폴레옹' 이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수식어(본인도 겸연쩍어하는)로 소개되는 미식가이기도 합니다. 직접 요리를 구상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지만, 본질은 미식가에 가깝죠.


반면, 여자 주인공인 외제니는 도댕 부팡의 요리사입니다. 그녀는 도댕의 거대한 저택에서 함께 머물며, 20여년간 도댕의 요리사로서 그가 원하는 음식을 구현해 왔습니다. 그녀의 요리 실력은 'Art' 라고 표현될 정도로 숙련되어 있죠. 실제로 도댕이 외제니 외의 요리사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알려 주면, 이런 요리는 너무 어려워서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도댕은 요리사로서의 그녀를 대단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이 조리법을 읽으면, 그녀는 마법을 부린다' 고 표현하죠.



외제니와 도댕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그려지지만, 그 사랑은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불꽃 튀는 청춘남녀의 사랑은 아닙니다. 20년간 함께하며 숙성되어 온, 그 세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잔잔하지만 깊은 사랑입니다. 외제니는 도댕의 청혼을 여러 번 거절하지만, 이는 도댕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농담 삼아 '결혼은 디저트부터 시작하는 코스'라는 말을 하면서요. 하지만 결국, 아픈 자신을 위해 정성 들인 요리와 함께한 도댕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미식가인 도댕과, 미식가 도댕의 미식을 구현해내는 요리사 외제니, 둘의 연결고리는 '음식'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음식'이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됩니다. 실제로 초반 30여분에 가까운 장면이 도댕과 외제니의 요리 장면으로 채워질 정도죠. 그리고 이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은 부분 중 하나가 이 고전적인 프랑스 요리들을 조리 과정부터 결과까지 아름답게 담아낸 것이죠. 제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부분은 이 지점입니다. 



이 영화의 이 장면에서, 왜 이 음식이 쓰였을까?


다시 말하면, 이 음식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단순히 감독이나 작가가 화면을 위해 음식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셰프인 피에르 가니에르가 직접 자문을 맡았습니다. 따라서, 이 음식이 이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릴 것이라는 셰프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의미있는 대사로 언급되기도 하는데요, 외제니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즐긴 도댕의 미식가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드시는 음식을 통해서 대화해요'


대화란,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도 감독이 던지는 대화라고 할 수 있죠. 소설은 소설가가 던지는 대화입니다. 외제니는 음식 또한 이러한 대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음식들이 전하는 메세지가 있을 텐데요. 그 메세지가 궁금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그려지는 복잡한 음식의 조리 과정들을 보고 있자면 그 맛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구요. 특히나, 소스를 만들기 위한 그 지난한 과정들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표현 말고는 할 말이 없었는데요, 큰 생선 두 마리를 살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소스의 재료로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왜 프랑스 요리가 소스의 예술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영화의 배경인 벨 에포크 시대의 고전적인 프랑스 요리들인지라, 어디 가서 먹어보기 어려운 음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자문을 맡았던 가니에르 셰프의 레스토랑인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이 영화를 기념하여 '프렌치 수프 코스'를 한정 기간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다운 가격대는 솔직히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마침 찾아온 기념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겸사겸사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과연 이 영화와 이 음식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롯데호텔 서울의 유일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었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아쉽게도 올해 그 별을 잃었습니다. 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메뉴의 구성이나 피에르 바의 재오픈, 서비스 분위기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서비스 자체는 늘 좋았는데, 좀 더 친근한 느낌의 서비스로 변화한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인 식사의 모든 흐름보다는, 영화에서 느낀 감정이 이 코스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반대로 이 영화의 음식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코스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24년 7,8월 두 달간 판매한다고 합니다. 프렌치 수프 코스를 주문하니, 직원 분이 다시한번 확인을 합니다.


'이 코스는 영화에 나온 음식들을 구성한 것이라 전체적으로 가정식 분위기의 식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메인은 스테이크 류가 아니라 일종의 스튜가 나오는데 괜찮을까요?'


저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메인으로 스테이크보다는 다른 요리가 나오는 것을 늘 선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정도 금액대의 식사라면 스테이크보다 더 정교한 요리가 메인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수준과 가격대의 레스토랑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주는 경우는 우리나라 말고는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파리의 피에르 가니에르 본점에서는 닭 요리가 나왔었고, 타이페이의 조엘 로부숑에서는 메추리가 나왔었습니다.

 

처음으로 준비된 코스는 본 코스에 포함되지 않은 간단한 한 입 거리들입니다. 대부분 손으로 집어 먹거나 작은 스푼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요리들은 본래 식전주와 함께 즐기도록 내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피에르 가니에르의 다양한 요리들은 각각의 맛의 개성이 살아 있어 마치 꼼꼼하게 준비운동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면, 작은 글라스에 담긴 그라나타는 차가운 토마토의 감칠맛과, 약간 떫은 부분도 사용함으로써 맛의 포인트를 줍니다. 옆의 넙적하고 낮은 그릇에 담긴 장어 타르트는 장어의 기름진 맛을 부드러운 소스를 활용하여 감싸 식전 음식의 범주를 넘지 않도록 합니다. 사각형 접시의 네 가지 음식들은 각각 신 맛, 하몽의 가공된 육류의 감칠맛, 자몽 젤리의 새콤하면서도 살짝 쌉사름한 맛, 튀긴 면과 살짝 새콤한 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인 새우의 갑각류 특유의 향과 맛까지 각각의 맛이 겹치지 않도록 하면서 하나씩 미뢰를 건드린다는 느낌을 줍니다. 


다만, 이 푀이유테는 코스와 관계없이 제공되는 음식들이므로 이 영화와 연관짓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유럽에서는 이런 요리들을 아예 메뉴판보다 먼저 주면서, 식전주와 같이 먹도록 합니다.)


빵은 총 세 가지. 전 세계에 있는 가니에르 레스토랑은 모두 같은 빵 레시피를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스타일로 만든 호밀 빵과 이탈리안 스타일의 부드러운 사각형 빵, 그리고 무화과를 넣어 만든 얇은 빵까지. 나오자마자 버터를 발라서 한입씩 먹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따뜻할때 가장 맛있거든요.


다만, 식전빵이라는 설명이 약간 미묘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는 한, 프랑스나 유럽에는 식전빵이라는 개념은 없거든요. 식사 내내 계속 곁들여 먹는 것이라는 표현이 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굳이 식사 하기 전에 뜬금없이 빵을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미각을 깨우는 역할은 앞서 등장한 푀이유테가 다 했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식전빵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을 곁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큰 호밀빵과 이탈리안 브레드는 식사 중간 중간 소스들과 함께 곁들여 드시면 더 좋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아마 고객이 익숙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도, 빵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안내해 주기 위한 타협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인터넷 후기에서 이 빵을 절대 다 먹지 말라고 합니다. 코스의 양이 많기 때문이죠. 제 개인적으로도 이 빵들은 버터를 발라 한 입씩 먹은 다음, 나오는 음식 중 소스가 마음에 드는 요리가 있다면 그것과 같이 천천히 먹는 것을 권합니다.)

 

첫 번째 코스입니다. 역시 이 코스는 영화와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적상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좌) 아티초크 아이스크림, 24시간 수비드한 다음 기름을 걸러 낸 갈치 리비그, 렌틸콩   / (우) 가리비와 자몽 시럽, 살구 페이스트와 라다치오

아티초크 아이스크림은 우리 일상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유럽 레스토랑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아티초크를 사용했습니다. 아티초크 맛이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생소한 재료라고 해서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요리는 갈치 리비그에서 느껴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며 좋아하는 갈치의 기름진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차가운 아이스크림, 마요네즈 스타일의 소스와 결합하여 기름지고 부드러우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상쾌한 맛을 냅니다. 하나 하나 먹으면 사실 맛이 기묘한데요, 세 가지를 같이 과감하게 푹 떠서 먹으면 그 조합의 맛이 정말 좋습니다.


가리비 관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쫄깃한 느낌이 있는 가리비의 맛에,  새콤하면서 쌉싸름한 맛을 가진 자몽 시럽과 살구 페이스트를 곁들였습니다.


(좌) 삼베체 굴과 콩테 치즈, 에그 미모사와 캐비어 / (우) 굴을 못 먹는 사람을 위해 별도로 준비된 꽃게 수프

원래 코스에는 왼쪽의 굴 요리가 나옵니다만, 저는 굴 알러지가 있어 오른 쪽 수프로 대체해 먹었습니다. 꽃게 수프는 정말 맛이 좋았는데, 꽃게 특유의 향과 맛이 잘 살아 있으면서도 매콤한 후추의 맛이 음식을 보다 산뜻하고 경쾌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오독오독 씹히는 견과류까지. 층층이 그려지는 다층적인 맛의 향연이 입 안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영화와 연관된 요리가 등장합니다. 첫 요리는 '외제니'의 볼 오 방. 이 요리가 나왔을 때, 셰프님이 직접 이 크리미한 소스를 가지고 나와 부어 주셨습니다. 아쉽게도 설명에 집중하느라 소스를 붓기 전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볼오방은 루이 15세의 왕비인 마리의 아버지, 폴란드의 왕이 고안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폴란드에서 쫒겨나 이름뿐인 왕으로 파리에서 망명생활 중이었다고 합니다.) 루이 15세는 정비인 마리보다는 그 유먕한 마담 퐁파두르에게 더 관심을 가졌고, 마리의 아버지는 루이 15세가 다시 마리에게 관심을 갖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볼오방이었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루이 15의 마음을 돌려 보려 한 것이죠. (물론 잘 되지는 않았고, 나중에는 서로 소 닭 보듯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마리와 퐁파두르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하죠.)


이 요리는 영화의 첫 30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도댕과 미식가 친구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도댕, 외제니는 식사 준비를 하며 다양한 조리 과정을 선보이는데, 이 조리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 요리가 정말 다양한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초반부 조리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요리들이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외제니는 이 볼오방을 굉장히 크게 만드는데,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의 요리와 달리 큼지막하게 만든 다음 처음부터 크림 형태의 소스까지 가득 채운 다음, 다시 뚜껑과 같이 잘라낸 빵을 얹고 그 위에 푸른 허브류를 올려 마무리합니다. 물론 이 식사에는 맑은 콘소메나 송아지 갈비도 등장하지만, 역시 가장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이 볼오방입니다. 도댕이 인심 좋게 커다란 볼오방을 자를 때, 속에서 흘러 나오는 크리미한 소스와 갖은 해산물은 그야말로 식욕을 자극함과 더불어 프랑스 요리의 풍성함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일단 이 영화는 30분에 가까운 시간을 모두 음식의 조리에 할애한 만큼 음식이 맛있어 보여야 하는데, 이 음식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풍성합니다.


그리고 가니에르 레스토랑에서 1인분으로 변형된 이 볼오방은,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외제니를 떠올리게 하는 멋진 음식이었습니다. 맛을 먼저 그려보자면, 이 음식은 상당한 양의 크림 소스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상당히 무거울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꾸덕한 크림 소스 파스타를 잔뜩 먹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막상 맛을 보면 강렬한 크림의 맛 보다는 의외로 산뜻하고 살짝 새콤한, 쌉싸름한 맛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접시 주변에 채워 놓은 각종 허브들 덕분인데요, 단순히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요리의 주연과도 같은 느낌을 냅니다. 싱그러운 채소의 쌉싸름한 맛과 식감이 먼저 느껴지고, 그 다음 크림 소스와 전복, 양송이, 한우 프로슈토, 페스트리 등의 맛이 다가오니 입 안에서 역시 다양한 맛이 그려집니다. 살짝 새콤한 맛이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이 요리를 마지막까지 지탱해 주는데, 그린 올리브가 이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으면서도 한 입 안에서 처음, 중간, 마지막까지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는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남겨 두었던 빵을 이 때 활용하면 더 좋습니다.)


이 요리는 마치 외제니의 마법과 같은 요리는 물론,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외제니는 자신의 인생을 여름에 비유하며, 자신은 떠날 때도 한여름에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요리는 비주얼부터 푸릇한 허브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뒤에 나올 포토푀의 늦가을 내지 겨울과 같은 이미지와 대비되는 싱그러운 계절감을 연출합니다. 게다가 크림 소스는 분명 이 싱그러운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솔직히 말하자면 다양한 재료의 맛을 집어삼킬 가능성이 높은 강렬한 맛이 특징입니다만, 이 맛이 과하지 않도록 그 강도를 조절해 최대한 다양한 맛이 느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조리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외제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요리로 만들어 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영화에서의 푸짐한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먹다 보면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다음 요리도 외제니의 음식입니다. 영화 초반, 외제니는 (앞서 살짝 언급했던) 양상추와 송아지 갈비 요리를 볼오방과 동시에 조리하는데요, 이 요리는 그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먼 쪽에 있는 것이 바로 송아지 흉선과 외제니의 상추 브레이즈입니다. 가까운 쪽에 있는 노란 색의 접시는 오리 푸아그라로 만든 라비올리를 단호박 소스와 곁들여 낸 것입니다.


송아지 흉선은 '스윗브레드' 라고도 부릅니다. 파리의 가니에르 본점에서도 이 스윗브레드를 테이스팅 코스에 포함시켜 낸 것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요, 이 흉선은 생각보다 제법 큽니다. 겉은 살짝 바삭하게 조리했는데, 씹다 보면 약간 기름기가 느껴지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익힌 간 같은 식감과 맛도 살짝 납니다. 사실 내장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스윗브레드는 약간 거북할 수도 있는 맛을 내는데요, 이 맛을 잡아주는 것이 상추 브레이즈입니다. 밑에 깔려 있어 약간 모양은 없어 보이는데, 소스의 맛을 듬뿍 머금고 있는 이 상추와 함께 먹으면 내장 요리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스윗브레드의 독특한 식감과 녹진한 맛만이 상추와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고기라는 느낌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아마 상추를 오랜 시간 저온에서 조리하는 방식으로 소스를 충분히 머금게 한 것 같은 맛인데, 그러면서도 상추의 잎맥이라 할 수 있는 줄기 부분의 아삭함은 아직 남아 있어 두 가지 식감을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요리는 개인적으로는 영화와의 큰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외제니는 영화에서 볼오방과 함께 송아지 갈비 요리를 다채로운 조리법을 사용하여, 두 번 이상 오븐에서 고기를 꺼내 가며 익혀 냈는데요. 그리고 그와 함께 이렇게 익힌 양상추를 곁들여 냅니다. 그 요리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프랑스의 고급 식재료인 스윗브레드를 사용하여 어레인지한 것 같습니다.


색상이 아름다워 눈을 즐겁게 하는 단호박 벨루테와 오리 푸아그라 라비올리. 그 색감에서 저는 왠지 늦여름 혹은 초가을이 생각났습니다. 호박에서 나온 진한 노란색은 초여름의 싱그러움보다는 수확의 시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푸아그라 라비올리의 존재감은 생각보다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이 요리의 맛을 크게 지배하는 것은 단호박의 녹진한 단 맛과, 호두를 씹으면서 느껴지는 특유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입니다. 두 가지 재료 모두 요리의 색감에서 느껴지는 계절감과 어울리는 듯 합니다.



코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순서입니다. (물론 뒷 부분에 디저트가 남아 있습니다만)

도댕 부팡의 포토푀입니다. 이 영화의 부제이기도 하죠. 영화에서는 도댕이 유라시아 왕자라는 가상의 미식가를 대접하기 위해 고안한 메뉴이기도 합니다. 유라시아 왕자는 자신의 수석 셰프(피에르 가니에르가 카메오로 등장합니다)를 불러들여 장장 8시간에 걸친 호화롭기 그지없는 만찬을 도댕에게 선사합니다. 도댕은 이 과도할 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만찬에 대한 답례로 바로 이 포토푀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포토푀는 사실 특별하지 않은 요리입니다. 혹자는 프랑스인에게 된장찌개나 마찬가지인 요리라고도 하는데요, 조리법도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채소와 소고기 등을 큰 냄비에 넣고 푹 끓여 내는 스튜 요리인데요, 포토푀라는 말 자체도 pot을 불 위에 올려놓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의 유명한 사상가였던 미라보는 이 요리를 프랑스의 토대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또한 다른 나라와 프랑스의 음식을 구별 짓는 요리라고도 했습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프랑스 요리의 근원이 되는 요리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요리에서 느껴지는 계절감은 겨울입니다. 여름을 상징하는 외제니가 떠난 이후, 도댕에게 남은 계절은 삶의 후반부인 가을, 또는 겨울입니다. 도댕은 외제니 없이 만드는 첫 음식으로 이 포토푀를 준비합니다. 도댕의 인생은 더욱 원숙해져 이제 후반부로 달려갑니다. 더 이상 외제니는 없지만, 그에게는 그와 외제니의 후계자와도 같은 새로운 인물인 폴린이 등장합니다. 폴린은 아직 어린 아이라 도댕이 말하는 '미식가'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지만 (도댕은 40이 넘어야 비로소 경험과 연륜을 갖추어 미식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폴린이 골수 요리를 맛보고 이상한 맛이라는 감상을 남기자, 아직 이 요리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고, 도댕은 자신과 외제니의 후계자를 길러내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인생이란 또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사실, 이 포토푀는 상당히 고급진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트러플을 인심 좋게 잘라 내었고, 오래 끓였음에도 질겨지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을 갖춘 것으로 보아 상당히 좋은 등급의 송아지 사태, 우대갈비와 돼지 껍데기를 사용했습니다.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넣어 푹 끓여 낸다는 포토푀의 문법을 잘 지키면서도,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미식으로서의 본질을 놓치지 않은 것이 도댕의 이름을 붙이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이 요리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한데 넣고 푹 고아 내어 그 맛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했다는 점에서 외제니와 도댕의 20년간의 인연을 나타내는 요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그려지지 않았지만, 20년간 두 사람에게는 수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요. 기쁜 일, 슬픈 일, 힘든 일, 평온한 나날 등 수 많은 나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이 둘의 관계와 인생은 이런 모든 일들이 만들어 낸 결과일 것입니다. 마치 이 포토푀가 서로 다른 많은 재료들을 넣고, 오랜 시간 푹 끓여 만든 결과물인 것처럼 말이죠. 더구나 이 음식은 프랑스 요리의 상징적인 메뉴이기도 하니,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식입니다. 화려한 요리들로 포장된 유라시아 왕자의 만찬 메뉴에 맞서는 도댕의 깊이 있는 미식을 보여 주는 셈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화려한 메뉴를 만들 수 있는 가니에르 셰프가 이 영화의 마지막으로 포토푀를 선택한 것은 프랑스 음식의 원류에 바치는 헌사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일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요리는 세 가지 작은 요리들과 함께 준비되는데, 모두 포토푀의 국물, 콘소메를 활용한 요리들입니다. 각각 꽃송이 버섯과 계란을 버무려 트러플을 올린 요리, 오른쪽은 비트와 젤리를 활용하여 차갑게 식혀 새콤한 맛을 가미한 것, 가운데는 골수와 호밀빵을 활용했습니다. 가장 콘소메 자체를 즐기기 좋은 형태입니다. 비엔나의 타펠슈피츠도 비슷하게 국물을 같이 먹기도 하는 요리인데, 이런 스타일의 덤플링을 띄워 내어 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포토푀는 어느 스테이크보다도 더 인상적인 요리였습니다. 먼저, 푹 끓여 내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재료의 무너짐이 없습니다. 아마 국물에 재료를 넣는 타이밍을 조절하고, 또 국물을 낸 재료와 건더기로 내는 재료를 구분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삼계탕도 사실 비슷한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한 국물은 국물용 닭으로 내고, 뚝배기에 들어가는 닭은 그 국물에 한번 익혀서 내는 식으로.) 갈비는 말 그대로 정말 잘 만든 갈비찜에서 기대되는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간장 양념과 같은 강한 양념 대신 육수로 익혔기 때문에 고기의 은은한 맛도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갈비를 이런 형태로 익혀 먹어 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끓여 익힌다는 너무나 친숙한 조리법과 갈비라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부위가 만나 이런 부드러운 맛을 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사태는 약간 더 씹는 맛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충분히 맛있게 느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고, 오히려 갈비와 또 다른 식감으로 음식을 보다 다채롭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무와 당근 등 다양한 야채와 트러플은 보다 풍요로운 맛을 가져다 주었고, 돼지 껍데기는 특유의 쫄깃하면서도 살짝 들러붙는 것 같은 진득한 식감, 지방질에서 느껴지는 기름진 맛으로 자칫하면 슴슴한 갈비찜(?) 으로 느껴질 수 있는 포토푀에 다양한 맛을 선사합니다. 다만 같이 들어간 소시지는 사실 어디서 먹어본 것 같은 맛이라 약간 맛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부분이면서도, 살짝 매콤한 듯 하면서도 짠 맛이 적재적소에 투입되었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마지막 두 가지 디저트는 외제니와 도댕이 각각 하나씩 선보였던 디저트입니다.

도댕은 병석에 누운 외제니에게 청혼하고자 멋진 디저트를 선보입니다. 크림 위에 서양 배를 얹고, 다시 그 위에 이런 구겨진 종이 모양의 칩을 올리는데요, 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 있습니다. 외제니는 이 반지를 보고 기뻐하며 그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꽃을 조금 올린 디테일까지 영화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요, 배는 보이지 않지만 배와 바닐라, 초콜릿 등으로 만든 크림을 활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재료로 만든 셈입니다. 사실 여기쯤 오면 배가 굉장히 부른데요, 윗 부분의 칩을 부숴서 아래 크림과 함께 떠 먹으면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바삭한 식감이 포인트를 주는 인상적인 디저트가 됩니다.



하지만 오늘의 포인트는 바로 이 디저트, 외제니의 오믈레트 노르베지엔입니다.

일명 Baked Alaska라고 불리는 멋진 전통 디저트입니다. 영화에서도 외제니가 선보이는데요, 이 디저트는 요리와 과학의 결합이 초창기에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그 시초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지금에야 분자 요리를 대표로 해서 과학과 요리의 결합이 낯설지 않고, 또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본인 또한 화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이러한 분자 요리를 한동안 선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이 오믈레트 노르베지엔 또한 물리학자가 고안한 디저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흰 색의 케이크 안에는 사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케이크 안에 크림을 넣듯, 이 디저트는 안쪽에 아주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들어가 있는데요, 이 위로 불을 붙여 겉면을 저렇게 태우듯 구워 마무리합니다. 그러면 안쪽의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될까요?

전혀 녹지 않고 차가운 상태를 그대로 보존합니다. 심지어 불이 꺼진 후 반으로 잘라도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그 차가움이 유지됩니다. 그러니까 입 안에서는 겉면의 뜨거운 온도감과 내부의 차가운 온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정말 짜릿한, 관능적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결은 바로 계란 흰자로 만든 머랭 때문인데요, 이 머랭이 단열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과학 연구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렇다면 계란 머랭 안쪽에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밖은 불꽃으로 감싸는 디저트를 고안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온도감의 차이를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생각보다 대단히 만들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차가운 재료와 뜨거운 재료가 한 접시에서 만나면 필연적으로 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계란 머랭을 이용한 이 디저트는 그러한 어려움을 멋지게 해결합니다. 벨 에포크 시대, 아이스크림 만들기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이 음식은 그야말로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벨 에포크, 이 걱정 없는 시대의 미식가들은 이 음식을 먹으며 앞으로 과학이 가져다 줄 신세계를 예찬했겠죠.



이후 간단한 프티 푸와 차는 전형적인 식사의 마무리입니다. 역시 첫 단계와 같이 작은 음식들이지만, 대부분 과하지 않은 단 맛을 베이스로 다양한 변주를 주어 식사의 마무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실 이 정도 단계까지 오면 왠만한 성인 남성도 배가 가득 차는 것을 넘어서는 수준. 이렇게 해서 프렌치 수프 코스 메뉴는 마무리됩니다.







여담을 하나 해 볼까 합니다. 사실 이렇게 어떠한 예술 작품과 음식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아주 신선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유명 뮤지컬 극장인 샤롯데에서는 공연되는 뮤지컬에 맞는 음식 코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고, 홍대 인근에는 이 레스토랑의 본점이 있습니다. 본점인 이 곳에서는 주로 홍콩 영화 등을 모티프로 하여 그를 딴 음식을 제공합니다. 다만, 이는 소재가 되는 영화 또는 뮤지컬이 애초에 음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코스를 구성하는 데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의 모양만 작품에서 따 오고, 음식 자체는 작품과 별로 관계 없거나 다소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경우도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신 해당 작품의 팬이라면 더욱 감탄할 만한 요소일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프렌치 수프 코스는 애초에 작품의 소재 자체가 음식이기 때문에 억지로 가져다 붙일 필요가 없어 오히려 코스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스토랑에서도 영화에 나온 음식들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영화에서의 의미와 음식을 연결하는 시도를 특별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음식을 설명해 주기 위해 잠시 테이블을 찾은 셰프님이 '이 영화 보신 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구요'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영화와 억지스럽게 연관짓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 코스를 즐기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를 본 저희는 이 요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좀 더 잘 느낄 수 있어 보다 풍성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말 좋은 요리는 셰프의 의도까지 느낄 수 있는 요리라고 하죠. 단순히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조리법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소위 파인 다이닝이라 불리는 요리는 과거의 조리법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 셰프의 개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개성' 이란 결국 그 셰프가 가지는 독특한 특성을 의미하게 되는데, 셰프가 엔터테이너는 아니니 결국 그 개성은 요리에 드러나야 합니다. 


맛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셰프가 추구하는 맛이 있을 것이고 그 맛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잘 드러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사실 프렌치나 이탈리안 등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먹을 때는 이 의도를 이해한다는 부분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느껴졌는데요, 영화를 통해 그 요리가 자아내는 감정과 의도를 한번 경험한 후 식사를 하게 되니 이 부분을 좀 더 수월하게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외제니의, 싱그러움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볼 오 방의 푸른 야채와, 크림 소스의 묵직함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드는 은은한 산미와 쌉싸름함. 그리고 도댕과 외제니의 시간이 만들어낸 서로에 대한 원숙한 애정과, 인생의 후반부를 바라보는, 가을과 겨울의 이미지를 표현해 낸 깊이 있는 포토푀는 오랜 기간 제 머릿속에 남을 것 같은 멋진 음식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이 글의 제목인 프렌치 수프는 사실 '포토푀'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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