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들의 레스토랑은 예약 마감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고, 경기침체의 여파로 추운 겨울을 맞이했다는 소리가 들리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도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와 그의 말, 심사평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국내 유일의 셰프라는 명성과, 심사에서 보여준 그야말로 면도날 같은 판단력은 왜 안성재 셰프가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부족함이 없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저는, 안성재 셰프의 여러 심사평 중 하나에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 볼까 싶습니다. 접시에 식용 꽃을 올리면 안 될까요?
하나하나 섬세하게 공들여 올린, 비엔나 미슐랭 2스타 콘스탄틴 필리푸의 요리.
사실, 소위 '인스타그램을 위한 음식'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각 식당의 음식을 촬영해서 SNS에 공유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합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고든 램지는 헬스 키친에서, 이제 음식은 더 이상 맛있기만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야 한다며 SNS에 공유할 수 있는 멋진 외관을 가진 음식을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램지가 예로 든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전설적인 세기의 셰프, 조엘 로부숑의 이 음식입니다. (조엘 로부숑은 생전 20개가 넘는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셰프였으며, 현재도 그의 이름을 건 3스타 레스토랑이 3곳 이상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세태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셰프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어떤 셰프는 아예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셰프는 사진을 찍는 것을 말릴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음식 자체를 즐겨 주기를 바란다고 강력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주방에서 테이블까지 음식이 이동하는 동선까지도 최소화하여 그 짧은 시간에 음식이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데, 기껏 빠르게 가져다 놓은 음식이 사진을 찍는 동안 식거나, 말라가거나, 형태가 망가지는 모습이 보인다면 셰프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노릇일 것입니다.
이 사진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Mraz&Sohn의 메인 메뉴입니다. 다채로운 무국적 요리를 지향하는 므라즈 셰프는 아예 메뉴판에 '우리 음식은 예쁘지는 않지만 맛있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실제로, 이 음식은 참치를 튀긴 것인데 굉장히 맛이 좋았습니다. 잠시 연재를 중단한 '나의 유럽 미식 여행기'에서 언젠가 소개할 예정입니다. 사실상 메인인데 정말 접시에 덩그러니 저것 하나만 나왔습니다.
한편, 므라즈 셰프처럼 맛이라는 요소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어떤 식당, 셰프의 경우에는 맛을 더 좋게 만들기에 집중하지 않고 음식을 더 '예쁘게' 보이게 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성재 셰프의 식용 꽃에 대한 경계는 바로 이 지점을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맛은 그저 그렇더라도 사진에 예쁘게 나올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고객을 최대한 유치하겠다는 전략이죠. 심지어, 먹는 데 방해가 되는 장식물을 올리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은 다음 바로 포크로 치워 버려야 하는 것들을요.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대부분은 한 번쯤 '모양은 참 예쁜데 맛은 그냥 그렇네' 하는 식사를 하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식사죠. 저는 이러한 식사는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한번 더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맛'은 오직 입으로만 느껴지는 것일까요?
아마 여기서는 대부분의 분들이 고개를 가로저으실 것입니다. '냄새'라는 강력한 감각이 빠졌기 때문이죠.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인 후각 상실을 경험하셨던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코를 막고 라면을 먹으면 도무지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후각은 이 음식이 맛있다, 혹은 맛없다고 판단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감각입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 중 엄격한 식당들의 경우 과도한 화장품이나 향수 사용을 제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후각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시각은 어떨까요?
미슐랭 가이드의 심사기준에 따르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요리'에 높은 점수를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계절감이란, 단순히 제철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셰프들은 이 계절감을 오롯이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그릇부터 세심하게 선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음식은 24년 기준 베이징의 미슐랭 3스타(25년 2스타로 하락) 레스토랑이었던 King's Joy의 여름 메뉴입니다. 스페인의 전통적인 요리인 가스파초를 재해석한 요리인데, 원래 토마토와 오이, 양파 등을 한꺼번에 넣고 갈아 차갑게 먹는 수프의 각 요소를 보기 좋게 재배열했습니다. 베이징의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 입맛을 잃기 십상인 고객들의 입맛을 식사 전 회복시키기 위해, 차갑고 새콤한 맛의 가스파초를 낸 것은 아주 적절한 선택입니다. 셰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투명한 유리그릇에 빨간 토마토를 맑은 국물 위에 배치함으로써 시각적인 시원함을 더욱 살렸습니다. 다 같이 갈아버렸다면 주황색 빛이 나는 가스파초인데, 빨간 토마토와 녹색 오이, 노란 올리브 오일을 시원하고 투명한 유리그릇에 배치하였습니다.
한편, 이 음식은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자 역시 거장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달고기와 새우 요리입니다. 역시 8월에 만나본 메뉴입니다. 킹스 조이와 동일한 색 조합을 사용했는데요, 붉은색을 강조해 조리한 새우와, 흰색의 달고기, 그리고 배경을 구성하고 있는 짙은 녹색의 완두콩과 투명하게 익힌 양파는 짙은 녹음의 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완두콩, 새우, 달고기, 양파라는 각각의 식자재를 어떻게 조합하여 맛을 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셰프의 역량인데, 가니에르 셰프는 거장의 칭호가 무색하지 않게, 맛은 서로가 잘 어우러지도록 하면서도 그 색상과 모습은 각각의 존재감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이 두 요리 모두 시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하여,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음식에 대한 흥미와 기대감을 보다 고취시킵니다. 시각이라는 감각조차도 식사의 일부로 끌어들여, 식사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기 위함'이겠죠.
사실, 저는 파인 다이닝이란 단순히 영양의 섭취를 넘어 하나의 경험을 선사하여야 한다고(그리고 그래야 그 가격이, 그 식사를 위해 소모된 인력과 재료와 시간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각과 청각의 예술이었던 영화도 경험의 확장을 위해 4D를 도입하여 물을 뿌리고, 향을 피워 촉각과 시각을 공략하듯, 요리도 미각과 후각을 넘어 시각, 청각, 촉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앞서 논했던 '주객전도형' 요리는 곤란합니다. 영화가 4D효과에만 몰입한다면, 그것은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지 어벤져스 시리즈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예술작품 수준에 가까운, 마카오 디 에잇의 딤섬. 분명 이 모양은 미각과는 관련이 없지만, 셰프는 수많은 칼질로 모양을 냈다.
사실, 이런 외국의 멋진 요리들을 굳이 가져올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선조들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정확히 이 지점에 들어맞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요리가 보기도 좋다면 더욱 만족스러울 것이며,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겉보기가 영 별로라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테니까요. 굳이 파인 다이닝의 멋진 플레이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어른들도 음식을 담을 때 이왕이면 먹음직스럽게, 보암직하게 담으라고 하시는데 경험적으로 이러한 심리가 반영된 것일 것입니다. 즉, 식사의 만족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시각적인 요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만, '플레이팅'과 '장식'은 또 다른 부분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예로 든 킹스 조이나 피에르 가니에르의 음식을 보면, 색을 내기 위해 재료를 고른 것이 아니라, 음식의 맛을 위해 재료를 구축해 놓고 요리를 접시에 담을 때 플레이팅을 통해 시각적인 만족을 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완성된 요리에 불필요하게 완두콩을 깔아 녹색을 낸 것이 아니라, 완두콩의 맛이 필요해서 완두콩을 썼고, 마지막에 배치할 때 녹색을 더욱 살리기 위해 배경으로 깔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킹스 조이의 경우에도, 가스파초를 하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시원한 맛을 낼 때 음식도 시원해 보이면 더 좋으니까 다 같이 갈지 말고 각각 고체 형태로 배치해서 투명함을, 시각적인 시원함을 살리자고 생각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흑백요리사에서 문제가 된 '식용 꽃'은, 맛의 측면에서 요리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시각적인 즐거움 이상의 역할은 없으며, 아주 어쩌면 요리의 맛을 저해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난 주말에 먹었던 리코타 치즈 샐러드인데요, 꽃을 먹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꽃을 옆으로 덜어 내고 먹게 하거나, 그냥 입 안에 넣으면서도 왠지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맛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붉은 접시에 하얀 리코타 치즈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꽃을 올림으로서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던 치즈 샐러드를 좀 더 화사하게, 시각적으로 흥미를 끌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준 것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란 꽃을 치즈 위에 올려 색채 대비를 더 강렬히 끌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모든 꽃이 맛이 없지는 않습니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호박꽃 요리인데요, 튀겨서 올린 호박꽃이 요리의 한 요소로 맛의 측면에서 분명히 기여합니다.)
결국, 셰프의 입장에서는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객은 이 식사에서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맛있는 식사였어'라고 간단히 요약할지언정, 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각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험적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는 점에서 시각적인 요소는 분명 중요합니다. (다만, 아무리 보기 좋아도 먹고 나서 '뭔 맛인지 모르겠어. 보기만 좋아'라는 말이 나온다면 식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지 못한 것이므로 이는 논외로 합니다.) 따라서, 본인의 접시에 식용 꽃을 올리는 것이 맛을 넘어,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 종합적으로 평가되는 이 '식사'라는 경험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저는 꽃을 올리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흑백요리사에서는 오직 맛을 기준으로만 평가하기 위해 두 심사위원의 눈을 가려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습니다만, 그 누구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가서 검은 띠를 눈에 두르고 '자 이제 음식을 가져와!'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정말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싶었던, 타이베이 조엘 로부숑의 디저트.
조금 거친 결론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한번 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는 저로서는 이왕 간 식당에서 단순하 '맛' 뿐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경험을 요구하게 됩니다. 한 끼에 20만 원이 넘는 식사는, 다른 식사와 경쟁하기보다는 다른 문화활동과 경쟁하게 되기 때문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마트의 경쟁상대는 (여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는 점에서) 야구장이라는 표현을 했었는데, 이와 동일한 관점입니다. 20만 원이 넘는 비용, 세 시간 가까운 시간은 제 기준에서는 대형 뮤지컬 VIP석과 비슷한 가치입니다. 지킬 앤 하이드를 보러 갈까, 아니면 모수에 갈까? 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총괄 셰프들은 단순히 미각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제시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각적인 만족을 고려한다는 것 또한 공감각적 경험의 완성을 위한 셰프의 고려일 것이고, 마치 단맛과 신맛을 조율하여 가장 이상적인 맛을 내는 것이 셰프의 역할이듯, 시각과 후각, 미각, 때로는 촉각까지 조율하여 최고의 경험을 만들어 주기를, 음식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꽃을 올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험'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꽃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