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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쑥이 Apr 05. 2024

이혼 속에서 이혼소개서

동료들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




직장 동료들에게 싱글맘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A동료는 이혼 사유가 궁금하지만 애써 묻지 못하는 표정이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반면에 B동료는 요즘 시대에 코 닿으면 이혼하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물어왔다.



이혼 사유가 뭐야?





싱글맘인건 밝혔지만 이혼 사유는 밝히고 싶지 않았다. 나로 인해 밝았던 분위기가 우중충해지는 그 어색한 공기가 싫었다. 그렇게 나는 이혼이 참 쉬웠던 것처럼 얼렁뚱땅 대답해 버렸다.


" 성격차이로 이혼했어 "


사실 단순한 성격차이로 시작된 가정폭력, 수차례의 경찰 방문. 가정폭력 상담소, 부부상담 센터까지 다니면서 5년이란 시간을 유지해 오다가 고작 5살 된 아들한테 손 지검이 전달되는걸 눈앞에서 본 이후로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이혼하고 2년이 지나다 보니 왜 이혼했냐는 질문에 내성도 생기더라. 싱글맘이라는 것과 더불어 내가 이혼 사유를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날이 오다니!


1년 전만 해도 누군가에게 나의 이혼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복받쳐 오르는 감정과, 눈물부터 쏟아냈는데.. 이렇게 또 한 번의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이혼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Q. 왜 이혼했어?

Q. 이혼한 거 후회 안 해?

Q. 네가 혼자 애들 다 키울 수 있겠어?


보통 기혼인 친구들은 왜 이혼했냐는 말에서 끝났지만 미혼인 친구들은 나보다 나의 이혼을 더 걱정하고 궁금해했다.


이혼이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기였던 만큼 질문이 깊어지면 나는 그 시기의 아픔을 고스란히 회상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늘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최선의 방법으로 상대가 더 이상 묻지 않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 결혼하고 살다 보니 서로 힘들어서 성격차이로 이혼했어, 그렇지만 이혼하고 지금이라도 내 인생 찾았으니 다행이야. 애들은 결혼 생활 중에도 내가 혼자 키워와서 걱정 없어, 오히려 아이 아빠와 함께 살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은 여유가 생겨서 난 지금이 너무 행복해 "


마치 마음속에 준비해 둔 일방적인 이혼소개서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는 잘 못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고자 아이 아빠를 내려 깎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을 내려 깎는 것과 나의 행복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면 분명 그 사람도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들의 친아빠이지 않은가?






동료들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


단순히 성격차이라고 하기엔 난 사실 많이 힘들었어. 내 나이 29살에 우리 아이들 지키려고 동사무소 복지 창구 가서 애원하듯 도움 요청도 해보고,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다니면서 기초수급자로도 살아봤어. 이 과정들이 있었기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지금의 회사를 다닐 수 있었고, 마음 맞는 너희를 알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그리고 너희는 헤어진 남자친구의 연락을 차단하면 그만이라 하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행사했던 남자를 아이들의 아빠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티를 낼 수 조차 없고 인연을 끊을 수도 없단다. 아침부터 불금이라며 퇴근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한다는 너희 삶이 오늘따라 유난히 부러워진다.




퇴근 길, 내가 부렸던 가장 큰 여유


늘 그랬듯 우리 집 아이들은 나의 퇴근만 기다리고 있으니 퇴근길에 여유를 부릴 수도 없다. 언젠간 나에게도 마음 편히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는 퇴근길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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