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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Mar 04. 2024

고여있는 삶, 흘러가는 삶

살다가 문득 든 생각

 가끔 내 삶이 너무 고여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입사 초기쯤에 만나고 연락이 끊겼으니까 한 10년 만인가? 

오랜만에 만나면 하는 얘기는 언제나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지내’라는 친구의 물음에 나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그냥 똑같이 지내고 있어.’

친구에게 내 삶을 숨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정말 변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하다못해 연애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큰 변화는 없다. 늘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변화 없는 삶에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가 많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가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앞으로 10년 뒤도 기대되지 않는 삶이 과연 옳은 삶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도 던져보게 된다. 

언제나 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생활. 큰 성공은 없지만 크게 실패하지 않는 삶. 

이런 삶이 너무 평화롭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도전 없이 살아가는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기도 한다. 


 가끔 내 삶이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아무런 장애물 없이 목적도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평탄한 삶. 남들이 명문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에 입학해서 큰 성과는 없지만 그래도 적당한 성적을 받았고, 남들은 몇 년씩 고생하는 취업길에서 첫 면접 후 바로 입사했다. 계약직으로 시작했지만, 운이 좋아 정규직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정규직 면접도 스스로 준비했다기보다는 얼떨결에 당시 직장동료들과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운이 좋게 바로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대기업만큼의 연봉은 아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생활에서 시련은 있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해결할 만한 시련만 있었을 뿐이다. 큰 시련 없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래서 내 삶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말 그대로 그냥…


 내가 고민하고 결정해서 결론 낸 것이 아니라, 그냥 주변에서 그 순간에 맞춰서 변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의지로 바다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다른 사람이 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SNS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도전하라고 말한다. 도전하고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가 책으로 나온다. 나는 언제나 그들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질투가 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있는 시냇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흘러가는 시냇물이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시냇물의 목적지가 바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루이제 린저의 소설 [삶의 한가운데]에서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언니와 격정적인 삶의 풍파를 견디고 있는 동생이 오랜만에 만나 살면서 겪은 이야기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언니는 동생 니나가 겪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격정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가끔은 좀 덜 이성적이 되고, 아주 커다란 어리석은 행위를 범하고, 미친 듯한 혼란 속에 빠져들어 갈 수 있다면, 얼마쯤의 희생은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

가끔은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모든 것을 던질 정도로 무엇인가에 빠져보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희생하는 삶이 진짜 삶이 아닐까. 나는 너무 평온을 바라고 한 곳에 고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의지 없이 그냥 남들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이든 출산이든 인생의 큰 고비를 하나씩 해처 나가고 있는 친구들을 볼 때면 나는 아직 10대 어린애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겁이 난다. 변화는 무섭고, 변화가 없는 삶에 가끔 싫증 느끼고,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는 모순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잘 살아가는 게 맞는가?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다른 사람들 삶은 반짝이는 거 같은데 내 삶은 왜 벌써 60대 노인의 삶처럼 희미해 보일까? 모험과 격정이 없는 30대의 삶이 진짜 살아가고 있는 삶인가? 언제나 답도 없는 고민을 안고 잠들 곤 한다.


 스스로가 이런 우울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나는 나 자신을 바쁘게 만든다. 약속을 잡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만남은 오히려 나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런 고민들은 타인과의 시간보다는 나와의 약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스스로의 삶에 루틴과 작은 도전을 채워 넣는다. 루틴은 하루를 가득 차게 만든다. 이 일을 하고 난 후에 다음 일정이 정해져 있으니, 내 삶에 대해 고민할 틈이 없다. 루틴에 작은 도전을 섞기도 한다. 올해 도전은 글로 브런치 작가되기였는데, 벌써 성공했으니 다시 작은 도전을 찾아야 한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이런 작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내 삶이 너무 낡은 것 같아서 우울해 지다가, 하루의 마무리로 수영을 하고 나면 모두 그 감정을 덜어낼 수 있다.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글을 토해내면 후련함을 느끼기도 한다. 


삶에는 정답이 없지만, 나의 정답은 이거였다. 현실을 다이내믹하게 바꾸기에는 나는 고요함을 좋아한다. 고요한 스스로가 걱정되는 순간에는 나름의 작은 일정들을 채워 넣는다. 그 일정 틈틈이 새로운 장소로 떠나본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 본다. 내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본다. 새로운 것에 빠지면 다시 일상에 흥이 생긴다.


그 순간 내가 했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다시 내일은 똑같이 반복되겠지만, 뭐 그래도 즐거운 순간은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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