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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Mar 12. 2024

1. 아이들은 왜 미술을 배우는가?

아동미술은 예술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아동미술과 예술은 얼마나 멀리 떨어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갔겠다, 미술학원 보내려고.” “왜?”

“사생대회니 뭐니 하는데 혼자 완성 못하면 자존감 떨어지잖아.” “그게 다야? 그게 목적이야?”

“응.” “그럼 파란색으로 다 칠하고 하늘이라 그래. 아니면 파랑 위에 흰색 떨어뜨리고 하늘의 구름이라 하면 더 좋고.”

미간을 찌푸린 아이 엄마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한숨 쉬듯 말을 툭 떨군다. “장난하냐?”


나는 진심이었다, 시간 내에 완성이 목적이라면, 자존감 안 떨어질 정도로 남 앞에서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게 목적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바렛뉴먼은 되고 왜 우리 아이들은 안되는가?

“아이가 만화만 그려서 속상해요.” 어른 팝아티스트는 되고 왜 우리 아이들은 안되는가?

에곤쉴레는 바탕을 칠하지 않은 작품이 많으며 드로잉과 채색회화의 경계에서 자유롭다. 왜 아이들은 바탕을 꼭 칠해야만 하는가?

아이들은 평면작업과 입체작업의 경계를 흔쾌히 깨뜨린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말고 물건을 마구 가져다 붙인다. 예술 역사에선 현대에 들어서나 가능해진 혼합기법, 어쩌면 수 세기 전부터 아이들이 구사했던 기법을 현대에 들어서야 겨우 납득한 건 아닐까? 


어른 눈에 보기 좋은 그림을 가르치고, 어른의 의식에 훌륭하다 판단한 주제 속에 아이들을 가둔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들 눈에 띄지 않는 은폐된 공간에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와 그림을 ‘낙서로 몰래' 풀어낸다. 그렇게 어른들 보기에 좋은 그림형식과 내용을 취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만의 예술적 색채를 잊는다, 잃어버린다, 영원히. 독일로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이 제일 많이 듣는 얘기는 이러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어쨌든 작가로 데뷔해도 충분해. 근데 자네의 이야기가 없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존대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와 학생이 서로 반말하는 독일 문화는 차치하자, 교수에게 반말하는 문화적 충격에 놀랄 겨를이 없었으니.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고, 어떤 이야기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고,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려웠으니. 나는, 우리는 본래 그랬던가? 아니면 잃어버린 것일까? 


아이들의 풍경화에는 어떠한 전형이 있다. 상단 구석에선 붉은 해가 있고, 아래엔 사람과 나무와 집과 동물 등이 등장한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그러한 삶을 보내고 있나?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 아래 콘크리트 아파트 풍경이 아니던가? 우리 어른은 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가? 정해진 외곽선에 꼼꼼히 색칠함으로써 발달되는 소근육을 위해? 고작 그러한 것을 위해 창의력과 예술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너무도 안타깝지 않은가?


주제를 주고 고민의 폭과 깊이를 스스로 넓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도 많은 주제가 쉴 새 없이 던져지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존중받는 여백이 아이들에게 펼쳐지지 않는다. 공룡에 관심 많은 아이는 공룡을 그리고, 졸라맨을 좋아하는 아이는 졸라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오늘 싼 똥이 재밌었던 아이는 똥을 그리고 만드는 거다. 그렇게 자신의 사소한 감정과 이야기를 자신의 어법으로 담아내는 아이가 사춘기 속에서 ‘삶과 죽음과 존재’따위의 고민을 거치며 깊고 넓어진 이야기를 자신만의 예술로 풀어낼 수 있다. 일상의 수필을 아담하게 담아낼 수도 있고 철학적 질문을 거칠게 담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해오던 예술작업의 연장선 위에서.


“예술이 제 본디 힘과 가치를 가지는 조건은 쓸모가 아니라 ‘쓸모와의 거리’다. 

인문학의 힘은 인문학적 사유와 통찰로 최대한의 쓸모를 뽑아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제 정신적 고양을 쓸모에만 바치거나 그런 태도에 함락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요약하자면 예술과 인문학은 인간이 돈 되는 일보다는 돈 안 되는 일을 위해 살도록, 돈이 아닌 다른 소중한 가치에 좀 더 정신을 팔고 용감하게 좇도록 한다.” - 김규항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선생의 글이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 보았지만 우리 삶에서 예술의 역할을 이토록 명료하게 정의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이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르침을 받지 않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작업은 예술의 본질적 역할에 상당히 닿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동미술 수업,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예술에 대한 아이들과의 대화'라는 것을 대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아이들이 지금 하는 작업을 역사 속 예술가들은 어떤 유사한 방법으로 풀어 나갔는지, 그 방법적 문제에 대하여, 느낌과 생각을 형상화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증폭시킬 것인지에 대한 선생의 역할에 대하여, 10여 년 간 아이들과의 수업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볼까 한다.


[소금쟁이] 2015년 임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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