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가
어려서나, 젊어서나,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인기와 거리가 멀다.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담임선생님의 '소극적이고 조용하며 온순한 성격'이라는 나에 대한 한 줄 평이 6년 내내 인쇄한 듯이 적혀 있기도 했지만, 내가 봐도 나는 지극히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다. 당연히, 인기 있으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인기가 치솟은 때가 있었는데, 바로 2주 전 토요일이었다.
원래 주말에는 손자육아를 하지 않지만 그날은 달라서, 오전에는 둘째 손자와 사위가 와서 늦은 아침을 먹고 두어 시간 놀다 갔고, 오후에는 큰 손자가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4시간을 놀다가 갔다. 말하자면 오전반, 오후반 나누어서 거의 하루종일 육아를 한 셈이다.
이야기를 풀어보면 대충 이렇다.
큰 손자를 오전에 한글학교에 데려다주고 그 사이 인터넷 설치를 위해 내 집에 들르겠다는 사위의 문자에, 그럼 작은놈을 데리고 와라, 했었다. 작은 손자가 나를 잘 따르기도 했고, 딸에게 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은 친정 엄마의 마음이기도 했다.
오자마자 주전부리 먹을 것을 찾는 작은 손자에게 밥을 차려 먹이고, 일을 마치고 난 사위를 위해 남편은 고기를 구웠다.
사위는 밥과 국만 있으면 된다지만 장인 장모는 어디 그럴까!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모조리 꺼내어 상을 차렸다. 사위가, 잘 먹겠습니다~하며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큰 놈 픽업할 시간이 되어 둘째 손자를 데리고 돌아갔다.
큰 손자가 이런 이야기를 제 아빠에게 들었는지 저도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며 딸에게 졸랐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며,
'배가 아픈데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으면 나을 거 같으니까 나도 할머니 집에 보내주~.'.
동생에게 샘이 나서 배가 아픈 건지, 정말 배가 아픈 건지, 아니면 진짜 할머니 집에 오고 싶어서였는지는 큰 놈 본인만이 안다.
어쨌든 큰 손자는 왔고, 나랑 놀았고, 밥은 반쯤 먹었으며, 과자는 많이 먹었다. 아프다던 배는 제 집을 출발하면서 이미 다 나았다.
스티커북도 사주고, 좋아하는 칩스도 사주고, 놀이터에 데려가서 놀아주는 할머니..... 사실 딱히 안 좋아할 이유가 없다.
저녁시간이 되어 딸이 큰 손자를 데리러 왔는데, 손자 놈은 오히려 할머니 집에서 하루 자고 내일 가겠다며 제 엄마와 딜을 하려 한다.
딸과 나는 '갑자기, 얘가 왜?'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밤에 제 엄마와 떨어져 잘 수 있을 만큼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귀여워 죽겠다는 느낌을 주고받는다.
아직은 밤에 풀업을 입어야 하고, 파자마도 안 가져왔으니 다음에 슬립오버 준비해서 오자, 하는 제 엄마의 말에 손자는 풀 죽은 얼굴로 돌아갔다.
인기와 멀리 살던 내가 갑자기 아침저녁 사랑받는 인기 있는 할머니가 되고 나니 손자가 돌아간 후에도 한동안 어리둥절, 기쁨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라며 좋아했는데,
한 주가 지나고 엊그제 토요일에 큰 손자는 하룻밤 잘 준비를 챙겨 들고 다시 왔다.
처음에는 놀기만 하고 집에 간다더니, 저녁을 먹고는 할머니와 같이 자겠다고 하다가, 밤이 되자 집에 가고 싶다며 결국 돌아갔다. 덕분에 나의 인기도 오르락내리락 순위가 뒤바뀌더니 역시나 곤두박질치며 제자리로 내려왔다. 쳇! 좀 더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