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무익+1
집을 내놓은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그동안 집을 보고 간 사람이 30명도 넘는데 아직 사겠다는 소식이 없다는 것에 나는 살짝 당황스럽다. 지난 20년 사이 대 여섯 번의 경험에 의하면 모두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잘 팔아왔기에, 이번에도 별문제 없이 당연하게 일주일 안에 팔릴 것으로 기대했었다.
사실 이 집의 소유자는 딸네다.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우리 부부에게 내어주고 딸네는 새 집으로 이사를 나갔었다. 이제 손자들은 커서 예전만큼 챙기지 않아도 될 정도라 육아도우미를 마치려고 하는데, 손자육아를 끝내고 나면 굳이 딸네 집 근처에 살 이유도 없어진다.
해서, 남편과 나는 원래 살던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고,
딸과 사위는 대출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집을 팔기로 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은 이사철도 아닌 11월이고, 집 값은 완전 바닥인 데다가, 내년에는 기준금리가 더 내려간다는 전망도 있고 해서 여차하면 오래도록 팔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2주가 넘었는데, 그 사이 30명 이상이 보고 갔는데, 이토록 입질조차 없는가 말이다.
아, 물론, 주방 캐비닛이 좀 낡긴 했다. 하지만 집 연령이 있는데 그 정도는 적당한 낡음인 것이고,
아, 그리고, 건평수가 넓은 편은 아니어서 거실과 주방이 넓지 않다. 면적이 넓으면 집 값도 당연히 높은 것이니 그 가격에 그 평수면 역시 적당한 넓음이다.
예상했던 모든 염려들을 제치고 의외의 말이 중개인으로부터 들려왔다. 사람들이 집을 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집에서 담배냄새가 난다는, 이 무슨 난데없는, 노란 당근이 무게가 더 나간다는(황당무계) 것과 같은 해괴망측한 소리인지.
남편은 심각한 흡연자다.
'심각하다'는 나의 기준은 하루에 한 갑을 말하지만, 남편에게 '심각하다'는 하루에 두 갑 이상을 의미하므로 남편은 나와 달리 전혀 '심각하지' 않다. 내가 아무리 간접흡연이 어떻고 읊어봐야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본인의 폐 건강 또한 안중에 없다.
그간 어쩐 일로 몇 번의 금연 결심과 함께 패치를 붙이기도 하고, 처방약을 먹어보며 금연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으나 일주일을 못 넘기고 매번 무산되었다. 급기야 이혼을 운운하기까지 이르렀지만 역시나였다. 그럴수록 남편은 담배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고, 나와는 점점 소원해졌다. 이제는 누가 '담배'라는 말만 해도 그냥 성질을 끄집어내니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하루 세 번 식사 후마다 한 대씩 피우고, 커피 마시고 한 대 피우고, 아이스크림 먹고 한 대 피우고, 땅콩 까먹고 한 대, 군고구마 먹고 또 한 대, 한 대, 한 대, 또 한 대..... 자는 시간 빼고 피우니 거의 45분마다 한 대꼴이다. 아무리 밖에서 피운다고 해도 입고 있는 옷에 자연히 담배냄새가 밸 것이고, 드나들면서 냄새도 집안으로 따라 들어올 것이다.
일전에도 사위가,
'아버님, 죄송하지만 담배냄새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으니 전자담배로 바꾸시면 안 될까요?'라며 정중하게 수박향 전자담배를 권했던 것을, 남편이 담배맛이 안 난다며 슬쩍 이틀 만에 개피 담배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런 시기에 이런 모습으로 남편의 심각한 끽연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이다.
딸과 사위는 차마 남편에게 중개인이 말한 그대로를 전하지 못하고, 단지 '조심해 주세요, 감사합니다.'로 끝내고 만다.
집이 안 팔리는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닌 담배냄새라는 것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남편이 미웠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니, 담배는 미워해도 남편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나? 아무튼 밉다.
두 눈을 세모나게 뜨고 입을 비쭉거리며,
'담배냄새 때문에 안 산다잖아! 앞으로 집 팔릴 때까지 담배 좀 줄이든지, 다른 동네에 가서 피고 오든지 해욧!'
.............
근데, 어째 이상하다. 남편이 성질도 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워낙에 미안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모든 것에 늘 당당했는데, 예전 같으면 '집 값 깎으려고 별 똥 발른 소리를 다 하네.' 하며 툴툴거리고 최소한 변명이라도 늘어놨을 텐데, 이번엔 내 눈을 피하며 옹색한 표정으로 쩔쩔맨다. 게다가 딸에게 사과 문자까지 보내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이불 쓰고 누워 잠에 든다.
아빠가 담배 때문에 여러 모로 피해를 주네, 미안하다.
아... 차라리 뻔뻔하지. 저렇게 찌그러진 모습이라니. 마음이 아프면 안 되는데 아팠다.
하고 많은 취향 중에 왜 하필 흡연을 배워서 백 개도 넘는 유해독소를 45분마다 몸 안으로 삼키고, 그것도 모자라 옆의 사람(주로 나)에게 넘겨주고, 더 나아가 생판 모르는 집 보러 오는 남들에게 푸념 아닌 푸념을 듣는 것이며, 집을 팔아야 하는 중차대한 이 시점에 이토록 곤란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입바른 소리를 하며 금연을 권했던 의사와 약사,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꿋꿋하게,
‘담배 피우면서 명대로 살고 싶다.'
말했던 우리의 철면피는 어디 가고, 갑자기 초라한 죄인이 되어 얼굴도 못 내밀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죽은 듯이 누워있는 행색이 오히려 보기 싫었다.
냄새가 덜 나는 비싼 고급 담배를 사줘야 하나....
매일 2시간 동안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에센셜 오일을 군데군데 뿌려놓고, 침대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밥솥과 그릇을 안쪽에 집어넣고, 칫솔과 샴푸를 치우는 등 생활 흔적들을 없앤 후 집을 나선다. 마음속에 기도손을 세우고, 입으로 주문을 외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은 팔려라, 오늘은 팔려라....
대문사진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Alexa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