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 우선 그 과정이 고되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서 재료를 준비하려면 장부터 봐야 한다. 외출 후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와서 대충 정리를 하고,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는데 적게는 1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까지도 걸린다(‘해감을 위해 한나절 동안 물에 담가 두세요.’와 같은 조리법을 보면 맥이 빠진다.). 그런데 삼십 분 만에(이것도 넉넉잡아) 다 먹고 나면 허탈하다. 출근하면 4시간 후 점심을 먹는다. 식판에 1국 3찬을 담을 때마다 끼니를 준비하는 것보다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 나는 4시간을 들여도 이렇게 완벽한 식사를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모두가 인정하는 나만의 음식이 있다. 바로 요구르트이다.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심지어 별도의 조리 기구도 필요 없다. 마트에서 무첨가 요구르트를 산다(액상 또는 떠먹는 요구르트 모두 가능하다). 그리고 깨끗이 씻은 유리병에 1/5 정도 넣는다. 저지방 우유가 아닌 일반 우유로 나머지를 채우고 뚜껑을 닫는다. 그러고는 큰 냄비에 유리병을 넣고 병뚜껑 아래까지 뜨거운 물을 붓는다. 유산균이 고온에서 활발하게 발효하기 때문에 중탕으로 우유를 데우는 것이다. 이때 물의 온도가 중요한데 너무 뜨거우면 유산균이 죽거나 병이 깨질 수 있다. 가장 뜨거운 쪽으로 수돗물을 틀어서 넣어주면 적당하면서도 간단하다. 보온을 위해 냄비 대신 스티로폼 상자를 사용해도 좋다.
물이 식으면 다시 뜨거운 물로 갈아준다. 이 과정을 두세 번 정도 반복하면 찰랑거리던 우유가 찐득한 요구르트로 바뀐다(24시간 이상 두었는데도 그대로면 온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다 된 요구르트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더 쫀득해진다.
요구르트가 얼마나 됐는지 뚜껑을 열어볼 때마다 설렌다. ‘왜 아직도 우유지?’ 하며 걱정했었는데 어느 순간에 단단해진 모습을 보면 봐도 봐도 신기하다. 생명을 키우는 기분이 들어서 ‘반려견’ 못지않은 ‘반려균’이라 부르고 싶다.
다 된 요구르트는 예쁜 그릇에 담아 그냥 먹어도 좋지만, 취향대로 잼이나 꿀, 견과류를 넣으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요즘 우리 가족은 망고 요구르트를 즐겨 먹는다. 건망고를 잘라서 요구르트에 섞어두었다가 반나절쯤 둔다. 그러면 건망고는 물기를 먹어 통통하면서 쫄깃해지고, 요구르트는 달콤하면서 꾸덕꾸덕해져 카페 메뉴로도 그럴듯한 수제 망고 요구르트가 된다.
요구르트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식품이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분들도 요구르트는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주말에 잔뜩 만들어서 직장에 가지고 간다. 업무를 마친 후 요구르트를 핑계 삼아 동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요구르트 몇 병을 공용 냉장고에 넣고, 문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Enjoy the Yogurt! 안에 있는 요구르트는 마음껏 드시고, 빈 병은 그냥 두세요.’
나는 오가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빈 병을 가져갔다가 다시 채워둔다. 덕분에 다 같이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들으면 뿌듯하다. 요구르트와 동료들을 같이 키우는 느낌이다.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 램지는 ‘훌륭한 요리사의 척도는 요리법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유리병을 씻으며 사람들이 모여 같이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들이 좋은 음식과 함께 좋은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