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 불행 n 단 콤보의 서막 : 예상치 못한 불행의 연속
적을 알아야 싸울 수 있다. 다시 시작하는 공부.
불행이 콤보로 찾아온 것도 부족해서 추가 옵션으로 몇 단 콤보 정도로 내게 찾아왔다.
사람의 살고 싶은 의지는 참으로 징글징글한 것 같다.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나의 의지가 징글징글했다. 나는 입에 독 거품을 물고 그것을 내 남편에게 뿜어내고 그것도 모자라 그날 저녁엔 술을 마셨다. 징글징글한 삶의 의지는 나의 스트레스를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가장 나쁜 표현으로 풀어내는 것과 그것도 부족해서 나 자신을 학대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6년 반을 술을 끊었다. 2016년 12월부터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암은 찾아왔다. 그렇다면 나의 암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고 많겠지만 술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알코올이 분해될 때 많은 에스트로겐이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또한 연관성을 찾자면 얼마든지 많겠지만 다 부정하고 싶었고 그저 내가 택한 명제는 “아무리 술을 안 마셔도 암은 찾아온다.”라는 것이었고, 그 반대 명제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암에 안 걸릴 사람은 안 걸린다.”였다.
양측 유방과 유두가 다 없어질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그날 저녁, 나는 6년 반 만에 취했다. 그리고, 담배도 한 개 피 피웠다. 미친 짓인걸 알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서 죽거나 집에 들어가서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암을 선고받은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더 화가 나서 6년 반을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셨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적이 없다. 그래도 내가 유일한 사람은 아니겠지.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딘가에 있겠지.
6년 반 만에 마신 술은 반가웠다. 처음엔 그렇게 취하게 마시려고 마신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고 한 잔 두 잔만 마시려던 것이 어느새 맥주 500을 6잔가량이나 마신 것이었다. 나의 알코올 용량은 줄지 않았다. 엊그제 마신 술처럼 쫙쫙 들어갔고, 기분은 오전보다는 훨씬 좋았으며 하늘을 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술이 들어가니 전에 했던 나쁜 버릇들이 슬슬 올라왔다. 담배도 피우고 싶었고, 노래방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었다.
어쩌면, 너무 오래 참아서 내가 암에 걸린 것은 아닐까? 내가 나의 뇌동정맥 기형 때문에 술을 끊지 않았더라면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있어서 암에 안 걸릴 수도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너무 옭아매고 나의 뇌 건강을 위해서 모든 것을 끊어내고 참아 버린 인내가 오히려 내게는 독이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다음 날이 되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숙취인가. 6년 반 만에 술을 마셔도 숙취는 올라왔다. 약간의 후회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미친 짓을 한 것은 분명했다. 중요한 것은 숙취로 인해서 컨디션이 영 꽝이었고, 그러다 보니 나의 루틴대로 오전 북악산 말 바위를 가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나 양치와 세수를 대충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가 햇살을 맞으며 말 바위 앞에 섰다.
“ 감사합니다. 제발, 끝까지 전이되었다는 말만 듣지 않게 해 주세요. 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겠습니다. 설마 전이가 되었다고 해도 저는 최선을 다 할게요.”
어젯밤의 나의 비행으로 인한 죄스러움이 나를 모닝 산책으로 이끌었고, 그 사이 나의 마음은 또다시 리셋이 되어 있었다. 24시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은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작은 풍선 안에 긍정을 넣고, 조금씩 불어 대는 기분.
나는 작은 풍선을 가지고 그 안에 긍정이라는 씨앗 같은 것을 넣고 손에 쥔 것 같았다. 그리고 절망이 나를 휘갈겨 칠 때 그것을 불어서 부풀렸다. 언젠가는 불다가 터질지도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불어대고 있었다. 나는 대체 앞으로 얼마만큼 더 긍정적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내일 죽는다고 해도 나는 긍정의 풍선을 불 수 있을까? 아직은 그 정도의 절망까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긍정의 생각을 더, 더, 더 크게 불 수 있었을 것이다.
산에서 마음을 다 잡은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나의 서재를 훑었다. 이미 유튜브에 많은 정보들이 있었고 이제는 맘먹고 공부하자 싶으면 어디서든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처음 엄마의 암을 알고 난 후 대형 서점에서 구매했던 수많은 책들이 아직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나는 절대 암 따위에 걸리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그 책들을 모두 버릴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책도 모으는 편이었지만, 암이라고 쓰인 표지가 무시무시하기도 했고, 그 책을 다시 읽을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먼저 꺼냈다. 그 책의 내용은 현대의 의료와는 조금은 다른 이론이 펼쳐져 있어서 당시에는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와서 다시 읽기 시작하니 저자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왜 암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공부했다.
결국은, 아무리 병원을 믿고 주치의를 믿는다고 한다한들 내 병에 대해서는 내가 확실히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라는 것은 아무리 주장해도 틀리지 않는다. 의사말만 들으라는 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무엇이라도 질문을 하려면 책을 펴던 유튜브를 보던 공부가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나의 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