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하던 일을 그만뒀어요! 때려쳐 때려쳐!!
퇴원을 하고 집에서 요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의 딸은 어느덧 7살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 코로나라는 무서운 역병이 지나가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코로나를 3번을 앓았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고, 야외 활동은 자제 했으며, 유치원 입학 및 행사는 참석도 못한채 온라인으로 딸의 첫 유치원 입학 마저 직접 보지를 못했다. 그런데 나는 왜 3번이나 걸렸던 걸까. 답은 간단했다. 남편의 직업이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그랬던것 같다. 원망은 없다. 왜냐하면 이상하게 나는 아프지 않았으니까. 아팠다면 나는 "아니 여보, 집에 암환자도 있고, 어린 자식도 있는데 코로나 환자를 꼭 보고 그래야해?" 그랬겠지. 나도 환자이기에 환자의 마음을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염병 환자를 돌보는 남편이 못마땅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해야지. 직업아닌가. 그리고 누가 그러는데 한번 걸리면 안아프다고 하는 유언비어도 있고. 다시 안걸린다는 유언비어도 있었으니 뭐 큰일 있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처음 받은 남편은 백신 접종 보름 뒤 코로나에 걸려 무지막지하게 아팠다. 백신이 다 맞는건 아닌가 보다.
그리고 난 뒤 내딸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 해에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도 해외여행이 가능한 나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봤지. 나는 미접종잔데, 갈 수 있는 영어권 나라를.
열심히도 검색했다. 언젠가 미접종자도 갈 수 있게 국경이 열리면 언제든 가보기 위해서 말이다. 먼저 미국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외삼촌이 살고 계신다. 그래서 미국을 검색해 보고 있었는데 남편은 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를 원했다. 남편이 대학생때 텍사스로 교환연구생으로 다녀온 적이 있는데, 별로 자기와는 맞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다음 캐나다를 검색했다. 캐나다는 시럽과 눈의 나라 아닌가. 오우! 바로 여기다. 청정 자연의 나라. 눈도 막 무릎 높이 허벅지 까지 쌓인다 하고 막 와우. 눈썰매도 탈 수 있다 하고, 문열고 나가서 쌓인 눈 한국자 퍼서 시럽을 뿌려 먹으면 천연팥빙수가 된다 하고 막. 그래서 여기 어떨까 생각을 하며 학교를 검색했다. 그냥 벤쿠버가 마음에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벤쿠버에 있는 공립과 사립학교를 검색했다. 유학생이 적응하는데 학교 분위기가 어떤지, 버디 프로그램, 유학생을 위한 따로 영어 클래스가 있는지, 방과 후 프로그램의 존재 유무 등등. 유튜브에서 캐나다 유학관련 검색도 했다. 그런데 캐나다를 가지 않은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 학원은 없지만 학교 자체가 공부를 시킨단다. 그래서 탈락! 나는 해외 학교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언젠가 티비에서 보았던 핀란드 교육이었던것 같다.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학교를 원했다. 커리큘럼이 빡빡하지 않고 책상과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듣는 학교생활을 하는 곳 말고 캐쥬얼한 분위기의 자유로운 곳. 그래서 다시 검색을 했다. 그외에 기타 사이판, 괌, 하와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조호바루, 싱가폴, 방콕, 발리 등 여러 나라를 검색했다.
그러다 찾아낸 곳이 바로 뉴.질.랜.드.! 뙇!!! 그렇다면 뉴질랜드 어느 도시로 가야 할까? 유튜브 검색, 뉴질랜드 유학 관련 서적 구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곳에서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내린 결정은 오클랜드, 웰링턴은 아니다. 크라이스트 처치와 타우랑가의 치열한 접점 끝에 내린 결정은 타우랑가다. 뉴질랜드 은퇴자들의 선호하는 도시, 다 그렇겠지만 여기가 인구가 제일 작단다. 그래서 조용하고, 사람 많이 없고, 바다가 있다는 점이 와닿았다. 그래서 곧장 여기로 가보자. 그렇다. 내가 남편과 찾은 도시는 뉴질랜드 타우랑가다.
타!우!랑!가!
이름도 마음에 든다. 결정을 내린 그날 밤 바로 타우랑가로 가는 표 3장을 끊었다. 그리고 남편은 다음날 병원에 가서 그만둔다 이야기를 했다. 병원일이 그렇듯 내가 그만두고 싶다해서 한달안에 그만 둘 수 있는 곳이 아니다.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3개월 안에 새로운 직원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우리는 뉴질랜드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뉴질랜드에 가는 날짜를 설명 하고, 승인을 얻었다.
그렇게 우리는 뉴질랜드로 떠나기 하루 전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건가. 그 전날 부터 아니다. 몇일 전부터 부산에는 비가 미친듯이 내리고 있었다. 어마무시하게 많은 비가 내렸다. 설마 내일 비행기가 못뜨는건 아니겠지 했는데, 아뿔싸! 김해 공항에 비행기가 못뜬단다. 그것도 당일날 연락이 왔다. 연착이 아닌 결항! 그래요. 떠나기가 어디 쉽나요. 그렇죠 뭐. 그래서 부랴부랴 기차표를 사고 생각보다 일찍 허둥지둥 부산역으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김해공항 국제선-인천국제선에서 6시간 정도 대기-오클랜드행 비행기-타우랑가비행기 일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이 되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공항철을 타서 인천국제 공항에 도착하는 복잡한 일정으로 변경 되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길은 막히고 시간은 없고. 다행히 부산역 주차장에서 내려 짐을 끌고 비를 맞으며 부산역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사이 나의 딸은 물먹은 쥐가 되었고, 내 머리카락은 물먹은 미역이, 남편은 안경이 뿌옇게 된채 웃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기차를 탔다. 그리고 대한항공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무사히 가나 싶었는데 아휴. 남편의 모니터가 고장이란다. 아직 도착하려면 6시간이나 남았는데. 대한항공에 빈 자리가 없어 자리 교체도 안된다 하고. 비싼 프레스티지석인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멍때리다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출발전 서울에서 오클랜드에서 타우랑가로 가는 비행기표는 취소 했다. 비행기가 늦게 출발 하는 바람에 타우랑가로 가는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 유학원 원장님의 차를 타고 타우랑가로 가기로 했다.
뉴질랜드에 착륙전 하늘에서 아래를 보니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하는군! 하늘에서 보는 뉴질랜드는 아름다웠다. 나는 푸르른 나무가 끝도 없이 보이는 뉴질랜드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공항을 나오자 우와. 파란하늘이 보이고. 공기는 맑고. 온통 영어와 중국어가 들리고. 이곳이 바로 뉴질랜드구나 싶었다. 뉴질랜드의 첫인상은 합격! 그리고 원장님을 만나 3시간 50분 정도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아니다. 내가 차 안에서 졸지 않은 동안 본 창문 밖의 풍경은 끝없는 소와 양, 잔디밭, 나무들이었다. 와우! 아파트, 꼬마 빌딩, 고층 빌딩이 안보여 살 것 같았다. 온통 사방이 초록초록. 눈과 마음이 편안해 지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사히 타우랑가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숙소는 복층 구조의 주택이었다.
이 집에서 두달 동안 우리 가족이 지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짐을 풀고 집안을 뛰어 다니는 딸의 모습에 흐믓했다. 나의 딸은 "엄마, 집안에 계단이 있어. 그리고 이층 창문에서 보니까 아파트가 안보여. 다 이런 집인가봐. 나무도 많이 보여." 라고 말하는 상기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 다니. 생각해보니 나의 딸은 친가, 외가 우리가 사는 곳 모두 아파트다. 심지어 나의 딸의 친구집도 아파트. 주위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뿐이니 주택을 가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딸에게는 주택에서의 생활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주거 생활과 주거 환경, 학교 생활이라니. 앞으로의 뉴질랜드 생활이 기대가 되었다.
마당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생각했는데, 내 집은 아니지만 어쨌든 2달동안은 나의 가족이 머무는 공간이니 내 집 아닌가! 그 꿈을 이루다니! 창문 너무 보이는 야외 테이블을 보며 저기서 밥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빨리 앉아 밥을 먹어 보고 싶었다. 창문을 열고 나가니 와우. 의자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나가서 먹지는 못하겠지만 눈으로 라도 보니 아주 만족 스러웠다.
어쨌든 우리 3식구가 타우랑가의 마당있는 복층집에서 살게 되다니!! 게다가 마당에 주차도 할 수 있고 차고도 있고, 레몬이 주렁주렁 열린 레몬 나무가 있다니!! 멋지다!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나다니!!
병원때려 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돈벌어 아파트 사고, 좋은 학군지 이사가고, 비싼 차 사고, 비싼 명품사고. 다 좋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버는 동안 해외 살이도 한번 해봐야지! 인생이 길지가 않다. 아이가 크는 시기도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