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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식 Feb 27. 2024

경제적 자유의 종말이 온다.

의심할 것 없이 경제적 자유로의 시대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노골적인' 경제적 자유로의 시대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많은 것들이 자본, '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완벽하게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구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돈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다지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다. 속물적이고 세속적이라는 인식이 따라왔다. 물론 그 당시에도 돈은 중요한 것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점점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본화가 깊이 침투하게 되었고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재화, 서비스, 안전, 자아실현 등 기본적인 생활 속의 욕구부터 고차원적인 욕구까지, 돈이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게 된 것이다. 결국 ‘돈’은 더 솔직하고 더 직설적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 누군가 돈이 좋다고 말하면 솔직한 매력으로 평가받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위선적이라는 평가받는 시대이다.


서점에 가보면 요즘의 트렌드를 알 수 있는데 자기 계발 코너의 대부분 섹션은 돈과 관련한 서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자기 계발서가 곧 경제적 자유를 다루는 서적이 되었다. 몇 년 전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시작으로 자청의 ‘역행자’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우리는 얼마나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는가.


유튜브는 더 극단적이다. 경제적 자유를 주제로 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는데 그 영상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온 사람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들까지도 월 천만 원을 번다고 그 비법을 알려준다. 감히 짐작하건대 우리나라의 미래는 걱정할 것이 없다. 월 천만 원 버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아지고 있으니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는 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경제적 자유의 달성 여부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잣대를 넘어서 모두가 나아가야 할 공동의 ‘선’,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노골적인’ 경제적 자유로의 시대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이고 획일적인, 극단화된 경제적 자유로의 시대.


사실 국가적 차원에서는 개인들이 경제적 자유를 쫓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능력을 기여하며 활발하게 재화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함’에 있다. 경제적 자유를 향한 과도한 집착은 돈을 최우선 순위의 가치관으로 올려놓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인생은 돈의 노예로 전락한다. 돈은 그들만의 위대한 ‘신’이 되고, ‘신’을 모시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요즘 자기계발 분야에서 ‘성공팔이’가 새로운 이슈이다. 성공팔이란, 자신의 성공을 이용해 다시 그 비밀 레시피를 판매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것이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대부분의 성공을 강의하는 강사들의 성공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가짜 부자들은 진짜 부자를 흉내 내어 진짜 부자가 된다."라는 세이노 작가의 말처럼 말 그대로 가짜 성공팔이 인생인 것이다. 그들은 본인들의 성공을 위해서 거짓과 불법의 유혹을 뿌리지지 못한다. 역행자의 자청까지도 그 덫에 걸렸다.


이제는 이 ‘성공팔이’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들의 신용 문제나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프레임 자체에 질려버린 것이다. 같은 식사 메뉴를 이틀만 먹어도 금세 질려버리는 우리인데, 몇 년 동안이나 경제적 자유랍시고 매번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는 진부한 틀을 벗어나지를 못하니 그럴만하다.


얼마 전 충격적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공감하게 했던 뉴스가 있었다. ‘신경 끄기의 기술’로 유명한 저자 마크 맨슨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로 꼽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원인을 지나친 경쟁과 과열된 자본주의라고 보았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의 철저한 물질 만능주의의 사회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어 행복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가장 먼저 건강과 대인관계를 차례로 답했는데, 한국은 경제적 자유를 답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행을 염세주의 철학으로부터 위로받는다. 전쟁에 지친 병사들에게 사기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의 외침처럼,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쇼펜하우어라는 질문에 위로를 받고 사기를 한껏 끌어올리며 다시 ‘경제적 자유’라는 무한한 전쟁터에 뛰어 들어간다.


나 역시 그 전투에 참여하는 일개 보잘것없는 병사로서 비장한 각오다진다. 터져 나오는 행복을 향한 수많은 욕구들을 겨우겨우 눌러두려는 찰나, 김경일 심리학 교수님의 말이 들려온다. “지금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


우리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성공을 위한 필수 신화로 여긴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면 ‘누군가’ 손에 두 개를 쥐여주었던 것처럼, 인내와 고통으로 가득한 인고의 삶으로 채워가다 보면 먼 미래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성공을 쥐여주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에서 그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미래의 행복은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물론 이 말이 당당하게 ‘Yolo Life’를 외치며 고급 스포츠 카와 명품 백으로 가득한 인스타를 꾸미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나에게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허상’에 나를 갈아 넣지만 말고, 지금 우리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미루지 말자는 것이다. 가족과의 식사, 아이들과의 여행, 애완동물과의 산책, 취미활동 등 순수 그 자체로의 행복.


무엇이 되었든 우리의 지나가버린 인생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인고의 불행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무작정 미루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우리에게 가난을 물려주며 “너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라는 뼈저린 말씀을 해주셨다. 먼 미래에는 우리도 자식에게    수도 있다. 경제적 자유만을 쫓다가 많은 것을 놓쳐버린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뼈저리게 후회하며 말이다.


오늘부로 나의 인생에 경제적 자유로의 종말을 고한다. 




얼마 전에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은 있는데, ‘정신적 자유’라는 말은 없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내가 그 정의를 내릴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욕망과 불행에서 자유로운 유토피아적 행복 정신 상태, 그것을 정신적 자유라고 부르고 싶다.




오늘도 오백 원을 아끼기 위해 베이컨이 추가되지 않은 햄버거를 시키며 아쉬워하는 나는,


정신적 자유를 간절하게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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