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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Feb 21. 2024

만년필, 너 좀 설레는구나?

생각보다 쉽게 만년필을 구매하고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자. 


예쁜 종이들이나 영수증을 수집해 다이어리를 꾸미는 일명 '스크랩 다꾸'에 한참 몰입하고 있을 때다. 


당시 내게는 몇 명의 다꾸 친구들이 생겨 있었는데 그 친구들 중 하나가 어느 날 디자인 문구처럼 젊은 감성의 만년필을 들고 나와의 약속에 나온 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내게 만년필이란 뭔가 고풍스럽고 어른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 친구가 들고 나온 튀는 색깔의 플라스틱 만년필은 내게 신선한 충격에 가까웠다. 


"이게 만년필이라고?"


아마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친구는 내가 관심을 갖자 기뻐하며 계속 내게 그 만년필을 구매해 한 번 사용해 볼 것을 종용했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시의 나는 그 만년필 자체보다는 '문구' 로서의 디자인에 홀렸던 것 같다. 그만큼 내 맘에 들게 예뻤으니까. 


어쨌든 나는 집에 가서 그 만년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진짜 이유는 그거였다. 친구가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행사 중' 이라고도 했다. 


검색을 일단 하고 나니, 구매 버튼을 누르는 건 결국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모나미사에서 출시한 라인 만년필을 2만 원 이하의 가격에 내 첫 만년필로 구매하게 됐다. 



로이텀 다이어리 (갈색), 모나미 만년필 (좌측부터), 카쿠노 만년필 



'난 다이어리 꾸미기도 열심히 하고 있고, 새해 들어 기록도 꾸준히 할 예정이니까 만년필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합리화를 하며 구매한 만년필인데, 이게 웬걸. 필감이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다이어리에 사용하기에는 생각보다 글씨가 너무 두꺼웠고, 각도를 맞춰 글씨를 써야 하는 것도 버릇이 들지 않은 탓인지 처음에는 몹시 귀찮게 느껴졌다. 


게다가 헛발질 현상이라고 해서, 신나게 쓰는 중에 글씨의 잉크가 끊어지는 현상까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펜촉 뽑기가 영 잘못된 듯 싶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말 그대로 사진 찍기의 '소품'으로만 몇 번 사용한 후 얌전히 연필꽂이에 꽂아만 두었다. 


그런데 나와 만년필과의 인연은 그걸로 끊길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 친구와의 약속이 다시 잡혀 나간 자리에 그 친구가 자신은 해당 만년필이 너무 좋아 두 자루를 더 샀다며 내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내민 노트에 그걸로 필기를 해 보니, 말마따나 필감이 좋았다. 


"이상하다. 내 건 왜 그랬을까." 


내가 궁시렁거리자 친구는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이 되더니 나를 서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내게 조그만 로이텀 다이어리를 하나 사주었다. 


"만년필에는 만년필에 맞는 종이를 써야 해."


친구가 알려준 말이다. 


"만년필 놓지 마! 얼마나 매력적인데."


이런 말도 같이 했다. 


아니, 만년필 놓지 말라고 다이어리까지 사주는 정성이라니. 

게다가, 종이를 타는 펜이라니. 이 얼마나 까탈스러운 녀석이란 말인가. 


가격이 2만원 이하였을 뿐이지, 이 녀석의 성격까지 막 다뤄도 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거기에서 나는 묘한 매력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사물에서 성미 같은 것을 감지해 버리면 이미 끝난 것이다. 소통해 버린 것과 마찬가지여서.


집에 가서 친구가 사 준 로이텀을 곱게 펴고 몇 마디 적어보았다. 


사각사각. 귀에는 실제로 듣는 ASMR이 들려오고, 

부드럽게 펜촉이 종이에 미끄러지는 느낌이 손끝과 손아귀를 통해 전해져 온다. 

펜촉이 상할까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뺐다, 다시 넣으며 조절했다. 섬세하다.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감각에 집중하는 것도 참 기분좋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낀다. 

이게 매력이구나. 자꾸자꾸 쓰고 싶어지는 이 느낌이. 이제야 뭔가 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같은 EF닙이라도 만년필 종류에 굵기가 다르다. 뒤에 붙은 이름은 잉크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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