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덕후와 다꾸덕후들의 축제 일러스트레이션페어
나처럼 작은 종이 위에 예쁜 스티커들을 사부작거리며 붙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축제, K-일러스트레이선 페어가 지난 목요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나는 전날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간식을 준비한다고 야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SNS로 소통하던 몇몇 분과 실제로 얼굴을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기존에 뵀었던 분들도 있었지만 처음 뵙는 분들도 있었고, 페어에 부스를 여는 작가님들도 있어서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다.
다만 ‘다이어리 꾸미기’ 취미로 소통하던 분들이었기에 내 낯가림이 발동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다꾸’ 라는 건 말 그대로 ‘다이어리’ 즉 일기가 포함된 본인들의 일상을 필연적으로 공유하게 되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온라인상이라 한들, 그리고 그래서 일기를 가려 쓴다 한들. 사람과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기본적인 품위와 향기를 숨길 수 없다고나 할까.
그렇게 온라인으로만 봐 오던 나와 결이 맞는 친해지고 싶은 분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기대가 될 수밖에.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식 주머니를 만날 사람들 갯수만큼 챙겨 가방에 바리바리 쌌다.
아이를 등원시키자마자 전날 온 폭설로 질척이는 거리를 아장거리며 걸어 코엑스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코엑스에서는 수많은 전시회와 박람회들이 때마다 열리곤 하는데, 나는 그것들을 꽤 많이 관람하러 가곤 한다.
그러나 구매 목적으로 참가한 적은 별로 없다.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 때문이다. 소시민인 내겐 공예 페어의 작품 하나 정도도 큰 마음을 먹어야 결제할 수 있는 가격이니까. 인테리어나 아트 페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일러스트 페어는 어떤가. 물론 그림 액자는 고가이겠지만, 그림을 줄여 만든 엽서 한 장 정도는 1000원, 2000원이면 소장할 수 있다.
내 다이어리에 끼워 넣어, 내가 추억하고 싶을 때 두고두고 꺼내보고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님들의 고뇌를 짜낸 스티커도, 잘그락대는 키링들도, 내 수준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것들. 마치 만찬장에 온 기분이다.
먼저 와 있던 다꾸러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간식 주머니를 건네자 뛸 듯이 기뻐한다. 이 친구와는 인연이 1년 정도 되어 이제는 마음을 많이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길게 서 있던 줄이 줄고 입장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전략적으로 갈라진다. 같이 보러 다니면 많이 볼 수 없고 속도만 느려지기 때문.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먼저 찜해놓은 브랜드의 작가님께 돌진한다.
작가님도 페어가 시작된 첫날, 가장 첫 손님이 의미하는 바를 아실 터!
반갑게 맞아주신다. 팬으로서 정말 짜릿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정말이지, 나도 이제 어엿한 다꾸 덕후(매니아), 스티커 덕후 다 됐다.
부스 네 개 정도를 돌며 SNS 로 소통하던 작가님들께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구경도 하고 구매도 한 후, 나는 두 시간 정도 더 천천히 내부를 돌며 관람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두 개나 더 발견했다…!! 이렇게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 역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여러 곳에서 모여든 다꾸 친구들에게서 아직도 보고 있냐고 연락이 오고, 저절로 한 곳에서 모여 산 아이템들을 풀어놓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화하다 보면 참 여러가지 삶을 사는 친구들이고 나이대도 제각각인데, 서로의 공통점이 문구와 기록으로 통한다는 게 신기할 때가 있다.
이번에 만난 다꾸 친구들 중 한 명이 이번에 작업실을 내게 됐다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이미 우리 사이엔 오간 커피와 스티커가 여러 개. 초대받아 몹시 기쁘다. 또 여러가지 듣고, 여러가지 배워야지.
작은 취미일 뿐인데 내게 여러가지 좋은 온기와 배울 것들을 가져다 주고 있으니, 참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