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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수 Apr 03. 2024

서울에선 사회복지사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농부?

서울 밖 사수 인터뷰 | 곡성 자자공 정착자 핸내 (1)

에디터 승선의 말

청년의 귀농을 떠올리면 장노년의 농업과는 다른 세련되고, 획기적인 농업을 상상했는데 핸내와 친구들의 농업은 제법 느긋했고 정직했다. 농산물의 유통 과정이 얼마나 농업의 노동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생각해 보지 못한 세계, 동시에 반가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안고 인터뷰 시작-






네 번째 서울 밖 사수

자자공 정착자,

곡성에서 자급자족 농사짓는 핸내

edited by  승선


마을 논 앞에서의 핸내 (사진 제공_핸내)


안녕하세요, 핸내님 반가워요! 핸내님의 하루 일과를 소개해주세요!


농사를 짓고 에디터로 일하면서, 요일별로 스케줄은 조금씩 다른데요. 월요일엔 뉴스레터를 마무리하고, 발송하는 날이에요. 화요일엔 마을 풍물패 연습으로 장구를 치고, 수요일은 옆 마을에서 요가 교실에 참여하고, 목요일에는 국악문화센터 농악반에서 장구를 쳐요. 금요일, 토요일을 쉬고요. 일요일에 교회에 갔다가 나살핸 뉴스레터를 쓰고요. 그 외에도 한 달에 한두 번씩 광주에 가서 태평소를 배우기도 하고, 농한기에는 탐조 모임이나 뜨개 모임, 그림 모임 등에 참여하기도 해요.


(좌) 장구 연습하던 핸내 (우) 태평소 연습하는 핸내 (사진 제공_핸내)


장구와 태평소라니, 정말 힙하고 멋진 취미네요! 특히 태평소를 배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해요.


태평소는 실외 악기예요. 소리가 정말 크거든요. 그런데 그 큰 소리에서 나오는 위엄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또, 태평소는 한 사람이 불거든요. 그 희소성에서 나오는 매력도 있어요.


호흡을 내뱉는 악기인 점도 좋은데요. 비슷한 원리의 서양 악기들하고는 또 달라요. 리코더 같은 서양 악기를 배우면 주로 기술을 배우잖아요. 운지나 호흡 위주로요. 그런데 국악에서는 소리를 잘 내는 기술 말고도 감정선이 되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연주자가 얼만큼의 경험이 있느냐에 따라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고요.


사실 서울에 살다가 시골에 오면서 문화생활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요. 그런데 제 걱정과 다르게 막상 곡성에서 살아보니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더라고요. 난생처음 '국악전수관'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면서 장구나 태평소 같은 풍물 악기를 배우고, 마을 영화제나 마을 음악회를 경험해 보았죠. 무엇보다 문화를 즐길 여유가 생겨서 가능한 변화라 이런 곡성의 삶이 좋아요.


농사를 짓고 글을 쓴다고 했는데,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듣고 싶어요.


농사는 작년에 ‘자자공’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배우게 됐어요. 자자공에서는 공동논밭에서 벼, 들깨, 모종 등은 같이 기르고 개인 구역에서 각자의 농사를 지었는데요. 판매를 위한 농사는 아니고, 자급자족 농사인데요. 제가 먹기 위한 농사를 짓는 거예요. 그래서 농번기의 일상은 농사를 짓고, 농한기의 일상은 삼시세끼를 잘 챙겨 먹는데 집중합니다. (웃음) 올 해부터는 독립해서 농사 홀로서기를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에디터 일도 시작했는데요. 회사에서 뉴스레터를 쓰고 SNS 홍보를 해요. 작년에는 ‘청년 자자공'을 통해 셰어하우스에 거주했던 터라 월세 4만 원에 공과금만 내면 됐는데, 올해부터는 독립을 하면서 월세가 비싸져서요. 물론, 글을 꾸준히 쓰는 연습이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고요.


생계와 별개로도 글을 쓰는데요. ‘나로 살기로 핸내'라는 뉴스레터로 농촌에서 살아가는 제 일상을 담고 있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짓는 삶이 되게 멀게 느껴지잖아요. 제 레터를 통해 막연하게 느껴지는 농촌에서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더 나아가서 많은 이들이 ‘농촌에서 한 번 살아볼까?’하는 가능성을 열 수 있길 바라요.


흔히 청년 농부에 대한 기대는 농사로 큰 부가가치를 내는 스마트팜에 가까운데요. 자급자족 농사를 짓고 계시고, 그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정착까지 하셨잖아요. 그 계기가 궁금해요.


곡성 오기 전까지 제가 농사짓는 삶을 살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요. 곡성에 오기 전에 서울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었는데요. 9시부터 6시까지 하루종일 일을 하는 삶이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주체적으로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대안적인 삶을 찾아서 곡성으로 왔어요. 어쩌면 귀촌이 제 삶의 대안이 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요.


곡성에 와서 처음 농사를 배웠는데, 제가 알고 있던 농사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로 돈을 벌기 위해 부지런해야 하고, 많은 양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배운 농사는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땅을 살리기 위해서,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농사였어요. 그 철학에 먼저 홀렸어요. (웃음)


(좌) 탈곡하는 핸내 (우) 핸내와 마을 사람들 (사진 제공_핸내)

한 해 살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도 큰 결심이었을 텐데, 정착은 더 큰 결심이었을 것 같아요. 곡성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제 고향이 제주도예요. 대학이랑 직장 때문에 서울에 5년 정도 살았던 거였는데요. 처음 자자공을 신청할 땐, 곡성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제주도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곡성에 살아보니 제주도에서는 농사를 짓고,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는 삶을 살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대부분 돈으로 이뤄지니까요.


그리고 농사를 1년 간 배웠는데 독립적으로 농사를 지어보지 않는다면 그 감각을 잃을 것 같아서, 더 지어보고 싶었어요. 더불어 이곳에는 마음 맞는 이웃들과 함께 마을살이를 할 수 있어 행복해요.


1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장점은 뭐가 있나요?


농사를 지으면 직접 기른 씨앗에서 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가 직접 한 생명체를 길러낼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보통 식탁에 올라오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오는지 모르잖아요. 과정이 다 분절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는 식탁 위에 올라온 것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오는 과정에서 어떤 착취가 있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됐어요.


직접 농사를 지으면 씨앗을 심고, 기르고, 씨앗을 또 받고, 건강하게 기르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게 많아요. 농사는 흙에서 짓고, 흙은 미생물이나 곤충, 다른 동물들과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농사를 짓다 보면 이 세상이 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과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크게 느껴요.


구매를 통해 얻은 농작물과 달리 조그마한 씨앗부터 기른 농작물은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커다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고 참 신비로워요.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게 흙을 살리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건강한 흙은 산소 포집 능력이 되게 크고요.


농사가 단순 작물을 기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요리해 먹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변화도 있어요. 요리를 잘해 먹는 과정에서 나를 돌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고요. 이전에는 요리하고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어요. 그 시간을 아끼면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자본주의에서 조금은 떨어져,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면서 조금은 비효율적인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좌) 인터뷰하러 갔더니 밥을 해준 핸내 (우) 함께 밥 해주고 밥 먹은 핸내의 친구들 & 승선과 소피 ⓒ서사수


이 셰어하우스에서 지낸 또래 이웃들이 도보 거리에 다들 집을 마련하셨어요. 시골에서 집을 구하는 건 서울에서와 차이가 있는지 궁금한데요. 집 임대는 잘 나오는 편인가요?


아니요. 매물이 잘 안 나와요. 저도 운이 좋게 인근 마을에 집을 구하긴 했지만요. 마을에 빈 집은 많지만 도시에 사는 집주인들이 집을 안 내주려 하더라고요. 나중에 와서 살 생각이시거나, 자녀들과의 이해관계도 얽혀있기도 해서 임대가 쉽지 않나 봐요. 제가 구한 집도 제사 지낼 때 잠깐 지내는 용도여서 안 내주겠다고 했는데 사정사정해서 구한 거였어요. 대신 제사 때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제가 집을 비워줘야 돼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계약 조건이죠? (웃음)


이 마을의 임대료는 보통 어느 정도인가요?


제가 구한 집은 넓은 거실에 방 하나가 있어요. 보증금은 없고, 월세가 25만 원이에요. 이 지역 시세로는 비싼 편이에요. 5만 원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둘이서 20만 원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있어요. 혹은 수리할 곳이 많아서 수리 비용을 월세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사는 친구들도 있고요.


서울 살 때 임대료는 얼마였나요?


서울에서는 여러 군데에서 살았는데 가장 최근에 산 곳은 주거용 오피스텔이었는데 8평 원룸 전세 보증금 1억 3천에 관리비 15만 원이었어요. 사정상 친구랑 둘이 살았고요.


그래서 지금이 만족스러워요. 셰어하우스에 살 때도, 월세 4만 원에 공과금을 내면 독립된 제 방과 넓은 거실과 부엌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요. 삶의 질이 서울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어요.


서울의 원룸에 있으면 되게 조심조심 걷고, 싱크대도 되게 좁아서 요리를 할 맛도 안 나고 이게 너무 답답했는데 여기는 같이 사는 공간이어도 주방과 방 이런 식으로 구분은 되어 있으니까 확실히 너무 좋고 잘 살아가는 느낌이 들고 넓어서 좋아요.


서울에서 5년을 살다가 시골에 와서 낯선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떤 점들이 있었나요?


물론 있죠. 농사를 지으니까 흙을 묻히고 오잖아요? 그래서 쓸어도 쓸어도 매일 더럽다는 게 처음엔 힘들었어요. 그 외에도 쥐가 나타난다던가, 벌레가 많다든가 거미줄이 있다든가 (웃음)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좀 불편했지만 살면서 익숙해지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쥐는 예상 못했고, 적응할 수도 없을 줄 알았는데요. 서울에서 본 쥐랑 곡성에서 본 쥐가 느낌이 아주 다르더라고요. 곡성에서 쥐를 처음 본 게 일일 농사체험할 때, 논에서 봤거든요. 근데 그 쥐가 서울에서 본 더럽고 음침한 존재가 아니라 되게 복실복실하고, 나름 깨끗하고 귀여웠어요.


도시에서는 더럽고 습한 곳에 쥐가 있지만, 농촌에서는 지렁이가 있는 곳에 쥐도 있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는 두더지굴도 있고, 도롱뇽이나 뱀도 만나보니까 다양한 생명체들에 익숙해져서 괜찮아진 것 같아요. 환경에 따라서 저의 관점이  달라진다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핸내님이 자랑하는 곡성의 사람, 장소, 맛을 소개해주세요


사람은 ‘농사짓는 이웃’들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 같아요. 보통 농사를 1년에 30~40 종 넘게 짓는데, 시기에 맞춰서 잘 돌보고, 잘 해먹는 성실한 애정이 자랑스러워요. 특히 대부분 씨앗 종자 회사들이 계속 쓸 수 있는 씨앗 종자를 딱 1년만 쓸 수 있게끔 유전자 조작을 한다고 하는데, 이웃들은 토종 씨앗을 계속 보존하고 기르고 있거든요. 그런 이웃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핸내의 자랑스러운 '농사 짓는 이웃' (사진 제공_핸내)


장소는 두 군데가 생각이 났어요. ‘마을 당산나무 아래’랑 ‘우산각이에요. 시골에는 우산각이 꼭 있더라고요. 우산각은  정자처럼 비도 막을 수 있으면서, 문도 있는데요. 날이 따뜻해지면 어르신들이 우산각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세요. 저도 오전에 농사짓고 밥 먹은 뒤에 우산각에 누워 바람을 쐬기도 하는데요. 햇살이 잘 들어서 따뜻하고 노곤노곤 하답니다. 자연스러운 공유 공간의 분위기가 참 좋더라고요. 한 번은 밤에 가서 이웃들과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같이 플랭크도 했어요. 조용히 춤도 추고요. (웃음) 단풍 떨어질 때 당산나무 아래서 책 읽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좌) 핸내가 플랭크한 우산각 (우) 당산나무 아래 핸내 (사진 제공_핸내)


맛은 ‘제철마다 바로바로 따서 해 먹는 음식들이요. 그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모든 채소들을 마트에 가면 늘 구할 수 있었으니까 제철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노지에서 자라는 애들은 계절마다 나는 채소가 다르잖아요. 그 제철 재료로 바로 요리를 해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당근은 직접 캐서 구워 먹으면 정말 좋아요. 향도 참 좋고요. 겨울철에는 무랑 배추로 국을 끓여 먹는데 너무 시원해요. 농사를 지으면서 먹는 게 정말 다양해진 것 같아요. 도시에 살 때는 늘 먹던 것만 먹었는데, 여기서는 나는 것들이 매번 다르니까 식생활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어요.

(좌) 가지 음식 모음 (사진 제공_핸내) (우) 핸내와 친구들이 차려준 제철 밥상 ⓒ서사수


곡성으로 이주해 오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인가요?


자자공 프로그램이죠. 이렇게 한해살이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잖아요. 다른 지역살이 프로그램도 참여해 봤지만 대부분 마을과 분리 돼있거든요. 그런데 자자공은 마을 안에서, 마을 사람들이랑 마주칠 수밖에 없는 장소에 셰어하우스가 있어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유 물품을 두는 곳도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시고요. 덕분에 한 해동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계가 쌓이면서 마을을 충분히 탐색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먼저 살았던 분들 중에 이 마을에 사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새로 온 사람들도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먼저 다가와주시고 먹을 것도 챙겨주시곤 했는데요. 돈 주고 사온 게 아니라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주시고, 직접 만든 빵을 주시고 하는 일들이 많아요. 그런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매번 주시니까, ‘난 뭘로 보답하지? 난 드릴 게 없는데’ 싶을 정도로 너무 풍족하게 먹었고 이웃들이 든든했어요.


(좌) 이웃들과 빵 만들던 날 (우) 직접 만든 데크에서 수제 맥주 시식하던 날 (사진 제공_핸내)


듣기만 해도 정말 든든해요. 마을 분들의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한데, 다음 편에 더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다음 콘텐츠가 궁금한가요?

한 해를 살아보려 왔던 곡성에 정착까지 하게 만든 이웃들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가요? 자자공에 더 알고 싶고, 공동생활과 공유라이프에 관심이 더 생긴다면 이번주 금요일 밤 10시!


 사수에게 질문해요!

✼사수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수집해 답변글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질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작성 부탁드려요 :)

서울 밖 사수 핸내에게 묻다.


핸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hannahohyeah/



에디터 소개


로컬생활자 소피 | @local.sop

사람이 필요한 지역과 기회가 필요한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기획자 & 에디터를 꿈꿔요. 정착할 곳을 찾아 여러 지역을 넘나들고 있고, 궁금한 이야기를 찾아 3년째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최승선 | @choi_welcome

지역과 공간이 주는 경험과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전공의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도시재생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지역에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 서울밖사수
모든 자원이 서울로 몰리는 나라에서 서울 밖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서울 밖의 자리를 사수하는 사람들을 찾아 더 많은 서사가 다양한 지역에서 흘러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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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outofseoul.sss@gmail.com
인스타그램 @seo4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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