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사수 인터뷰 | 곡성 자자공 정착자 핸내 (2)
에디터 승선의 말
핸내의 마을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삶과 환경을 추구하고, 농사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본주의로부터 멀어지고, 도울 수 있는 것을 돕고, 함께 먹는다. 개인적으로 동네 친구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던 3년의 시간이 있다. 3년을 거쳐 가까스로 2명의 친구를 사귀었는데, 핸내와의 인터뷰를 통해 친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동네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 인터뷰를 읽는 여러분은 어떤 곳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궁금하다. 그럼, 핸내 마을 이야기 시작-
edited by 승선
핸내 : 안녕? 자자공은 처음이지! 자자공은 자연, 자립, 공유의 첫 글자를 따온 '자자공'은 지구에 덜 해로운 방식으로 자급 농사를 짓고, 시골살이에 필요한 자립 기술을 익히는 한해살이 과정이야. 2019년부터 매년 5명 내외의 참여자를 모집해 현재는 18명의 청년이 인근 마을에 정착해 농사짓고 살아가고 있어! - 자자공 홈페이지 소개글 중에서 -
자자공은 어떤 곳일까?
‘자자공’은 자연, 자립, 공유의 줄임말로 생태적으로 살고 싶고 귀농을 꿈꾸는 청년들이 자립 기술과 농사를 배우는 1년 프로그램이에요.
처음 곡성에 온 건 ‘청춘작당 스핀오프'라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곡성군에서 지원받아서 숙소, 차량,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해 주고 식비도 일부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대학교 홈페이지에서 보고 ‘이건 날 위한 프로그램이다-!’ 하고 곡성에 와서 두 달을 살았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논에서 벼를 수확하는 일일 농사 체험하는 날이 있었거든요? 그 체험으로 자자공이 활동하는 마을에 오게 됐는데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이 농촌에 청년들이 한 명만 있어도 놀랐을 텐데 여러 명이 살고 있었거든요. 그게 새로워서 이 마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여기에 살게 됐는지 물어보고, 그 뒤로도 두세 번 더 만났어요. 얘기하다 보니 저랑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들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다들 되게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달살이가 끝나고도 생각이 났고, 생각난 김에 안부차 연락했다가 그 친구가 자자공에 신청하라고 저를 꼬셨어요. 그렇게 지원서를 냈고, 붙어서 1년을 살았고, 이제 자자공 프로그램이 끝나서 옆 마을에 제 집을 구해서 독립하게 됐어요. (웃음)
5년 동안 운영된 청년 자자공은 ‘항꾸네 협동조합'에서 운영했어요. ‘항꾸네 협동조합'은 2013년에 귀농인들이 설립한 조합이에요. 셰어하우스를 직접 만들어 청년들이 농촌에서 살아볼 수 있도록 했어요.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 책담, 공방, 셰어하우스도 조합에서 노동력과 돈, 힘을 보태 직접 만든 공유공간이에요. ‘항꾸네'가 함께라는 뜻의 사투리인데, 이름 그대로 서로 도우면서 즐겁게 살아요.
구성원의 비율은 30대 여성이 많아요. 물론 남성분들도 많이 계시고, 40대~50대도 계세요. 자자공으로 온 사람들 말고도, 소농학교라는 농사 배우는 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이나 귀농하신 분들도 계세요. 대부분 도보권에 있어서 서로 친밀하게 지내요.
자자공은 사회적 농업 지원을 받아서 시작한 프로그램이에요. 3월부터 12월까지 주 프로그램이 진행하는데요. 자급자족하는 농사, 그리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활 기술을 배워요. 예를 들면 용접, 목공, 데크 만들기, 퇴비간 만들기 같은 기술들이요.
시골 음식 만들기, 시골에서 된장 장 담그기 같은 것들을 배우는 것도 있고, 농사 토론, 농가 탐방 같은 프로그램도 있고요. 농사를 짓기 위해서 뭘 알아야 하는지, 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등을 배우는 과정을 거쳐요.
12월까지는 꿈엔들 셰어하우스에서 살면서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이 숙소도 먼저 정착하신 분들이 지으신 거예요. 먼저 귀농하신 중장년층들이 청년들도 여기서 살면서 이런 생활을 일찍 알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직접 짓고, 프로그램을 운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정착한 친구들이 저랑 제 친구들이고요.
작년까지 받던 사회적 농업 지원 사업은 끝났는데요. 친구들이 ‘우리가 받은 게 있고, 이 경험이 너무 좋으니까 이 프로그램을 이어가 보자’ 하면서 청년 자자공을 직접 운영하기로 했어요. 주민참여예산이랑 마을공동체지원사업을 받아서 계속 운영한다고 해요.
자자공 운영진은 총 4명인데요. 작년에 저와 함께 자자공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2명과 그전 기수 2명이 함께 운영해요. 다들 농사 지으러 곡성에 온 친구들이고요. 운영계획은 시기에 맞는 논농사와 밭농사인데, 매주 주간회의를 통해 다음 주 농사나 프로그램 일정을 정할 거예요.
올해 운영진 중에 기존에 도시농업 했던 분도 있고, 직조를 하시는 분도 있어요. 제가 보기에 책임감도 넘치고, 농사에 진심이신 분들이셔서 새로 오신 분들을 잘 이끌어주실 것 같아요.
자자공 셰어하우스 꿈엔들은 저의 세 번째 셰어하우스예요. 꿈엔들은 주 1회 주간회의에서 공동 농사일정을 정하고, 농사 지을 땐 주로 같이 밥을 먹는 문화가 있는데요. 물론 힘든 적도 있었죠. 꿈엔들의 경우에는 같이 살며 일까지 같이 하니깐, 쉽지 않았어요. 농사 근육이나 경험, 성향, 생활방식 다 너무 달라서 서로 맞춰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결론적으로는 맞췄다기보다는 다들 내려놨던 것 같아요.
저는 힘들면 친밀한 이웃들에게 고민을 털어놨거든요. 자자공 수료하고 이미 정착한 이웃들이요. 저뿐만 아니라 자자공 다른 기수에서도 갈등이 있었던 얘기를 듣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어요. 덕분에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힘이 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이 살아서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많았어요. 특히 룸메이트 중에 제철 음식을 건강하게 잘 해먹는 분이 있었는데, 요리나 건강한 식재료를 선택하는 법 같은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면단위 마을 살이는 어떨까?
모임 주최자는 다 다른데, 멤버의 중복률은 아주 높아요.(웃음) 이장님인 바람이 주최한 ‘틈 모임'이라고, 기후 위기 시대에서 농사의 가치, 우리가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같이 고민하는 모임이 있어요. ‘철든 밥상’이라는 제철 재료로 같이 밥 먹는 모임도 있고, ‘탐조 모임'도 있어요. 새를 좋아하는 청년이 작은 도서관의 강의비 지원을 받아서 숲해설가 선생님을 모셨어요. 숲해설가님께 강의도 듣고, 탐조도 같이 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쌍안경을 하나둘씩 사 오더라고요.
제가 만든 ‘모두의 항꾸네’라는 모임도 있는데요. 공유공간 중에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계단이 좀 높아요. 마을에서 생태 화장실을 쓰는데 오고 갈 때 불편한 곳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게 ‘농사 지으러 귀농하러 와라’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어르신들을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여기서 오래 살고 싶은데 몸이 불편하게 됐을 때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많은 장애물들이 떠올랐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개선해 나가 보자, 내가 더 오래 안정적으로 살 수 있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바꿔 나가 보자라는 생각으로 모임을 시작했어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활동은 마을 도서관의 노후화된 데크 수리, 생태화장실 손잡이 설치와 마을 안내 표지판을 수리, 추가 계단 및 경사로 설치 등이 있어요.
이 외에도 농한기 때 같이 난로 피워놓고 뜨개질하자고 시작한 뜨개질 모임도 있고, 그림 모임도 있어요. 가지각색의 관심사를 가지고 같이 하자 했을 때 잘 모이는 분위기거든요. 항꾸네 협동조합 밴드가 있는데, 거기 글을 올리면 관심 있는 분들이 댓글 달아서 정기적이든 일회성이든 모임이 열려요.
사회복지학과 친구 두 명과 사회복지 공부를 위한 스터디 모임을 했었고요. 고등학교 친구들과 책 모임을 하며 주기적으로 일상도 나누고, 책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어요. 멀리 살거나 시간이 없어 주로 온라인으로 만났고, 느슨한 연결로 함께 했어요.
곡성에서는 가까이 살다 보니 더 자주 만나게 돼요. 그리고 한 가지 목적으로만 만남을 갖지 않고, 여러 이유로 만나게 돼요. 이웃으로서, 모임참여자로서, 농사 선생님으로서, 우리 마을 이장님으로서, 멘토로서 등등.
마을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곳에 올 생각도 못했을 테고, 계속 살아가지도 못했을 거예요. 커뮤니티가 있기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더 안정될 수 있어요.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무언가 물어볼 수도 있고요.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돼요. 이를 테면 이사할 때 조합의 트럭을 운전해서 짐을 옮겼어요. 이웃의 도움도 받았고요. 커뮤니티의 공유재를 사용한 것이죠.
사는 곳은 정체성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는 곳이 바뀌면서 정체성이 바뀌었거든요. 직업도 바뀌고, 주로 하는 일도 바뀌고, 집의 형태도 바뀌고, 만나는 사람도 바뀌고, 또 관계를 맺는 형태도 바뀌고요.
저는 이웃이라는 개념 자체가 되게 낯설었어요. 도시에서의 관계는 주로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었고, 이웃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곡성에 와서 이웃은 어느 만큼의 관계여야 되는 건지, 친구랑 이웃은 또 다른 게 뭔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이웃들과 언제든지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의지가 되는데, 그런 관계가 생긴 것도 큰 변화고요. 안정감이 생겼거든요.
제가 국악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서울에서는 국악 전수관 같은 공간 자체가 없잖아요. 시끄럽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요. 사는 곳이 정체성을 결정하는 거라면, 곡성은 지금의 저를 만든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곡성 살이의 현실은 어떨까
지역 만족도는 3.5점이에요. 원래 4점을 주고 싶었는데 1.5점을 깎은 이유는 군의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많이들 청년들이 시골에 내려가면 다 지원금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근데 곡성군은 1년간 월세 10만 원씩 지원해 주는 정도가 전부예요. 청년 창업농 이런 게 있는데, 땅이 300평 이상 있어야 돼요. 저희처럼 조그마한 밭에서 자급자족하는 친구들은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나라가 인정하는 농업인은 아닌 거죠.
정착해서 살고 싶지만 집이 없어서 떠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래서 빈집들을 조사하고, 군이 매입해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빌려주는 식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잘 마련을 해주면 좋겠어요. 아니면 농민 기본소득 얘기를 많이 하던데, 청년 농민 기본소득처럼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농촌에서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도록 지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수입 만족도는 제가 아직 수입이 없어서요. 점수를 매기기 어렵네요. 이제 막 에디터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수익 만족도가 크게 의미 있지도 않아요. 굳이 계산을 한다면 농사 만족도? 이번 연도에 내가 잘 기르고, 잘 돌보고, 잘 먹었는가? 이런 걸 돌아보고 싶어요. 최대한 자급자족하는 삶을 지향하고, 덜 소비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적당히 제가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을 마련하고 있어요.
지금도 돈이 없으면 쪼달리기도 하죠. (웃음) 서울에서는 ‘돈이 최고다, 돈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살았으니까 저도 수익이 정말 중요했어요. 기업에서 판매를 하려고 만든 광고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자급자족 농사를 배우면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문화가 환경과 생태계에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가 체감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무엇보다 여기서는 단순히 화폐로서의 돈 말고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너무 많거든요. 이웃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공유하는 문화가 익숙하니까, 개인이 하나씩 다 사야 해결됐던 것들을 마을에 하나만 두면 되는 거예요. 같이 쓸 수 있는 환경이 불필요한 낭비를 막게 해 주고 또 서로 잘 돕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돈 말고도 다른 것들로 이 마을에서 교류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구나 느끼고 내가 먹고살 수 있는 정도로 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잘 말하고 다니진 않지만요. 일단은 곡성군에 청년이 정말 별로 없거든요. 곡성에도 회사가 있긴 하니까 일할 사람이 필요할 텐데 그럼 나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요.
그리고 제가 사회복지사 자격이랑 경력이 있잖아요. 곡성에는 농촌의 노인복지를 포함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요. 정말 돈이 필요하면 사회복지 일도 잘 맞았으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에디터로 지원하려고 했는데 풀타임 근무로 PM업무까지 해보는 건 어떤지 제안을 받았거든요. 처음 해보는 일이어도, 같이 해나가면 되고 리모트근무나 파트타임 근무도 가능하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요. 정말 일할 청년이 부족하구나, 느끼면서 언제든 갑자기 빚이 생겨서 일을 해야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왠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은 자연스럽게 경험치도 쌓이고 할 일도 생기고 그러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기대도 있어요.
대체할 수 없는 존재요. 서울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는 내가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자리는 누구든 할 사람이 있고, 대체할 수 있잖아요. 근데 여기는 물리적으로도 대체 가능한 사람의 수 자체가 적고, 각자가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뚜렷한 색을 가진 사람들을 잠깐 보는 게 아니고, 계속 보고, 계속 관계를 맺다 보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색이 더 짙어졌는데요. 그러면서 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저를 알게 되면서, ‘난 정말 여기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네.’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에서는 저를 ‘쓸모'로 존재 가치를 결정했고, 곡성에서의 저는 ‘고유함'으로 존재 가치를 결정하게 됐달까요? 한 명이라도 이 마을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너무너무 슬픈데, 나도 그런 존재구나 느껴지면서 더 그렇게 생각해요. ‘대체할 수 없는 존재구나.’
저는 앞서 말했다시피 곡성에 오기 전까지 정말 걱정이 많았거든요. 콘서트도 자주 갔는데, 곡성에 오면 그런 기회들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다들 자신의 지역에서 어떤 문화생활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사수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수집해 답변글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질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작성 부탁드려요 :)
핸내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hannahohyeah/
청년 자자공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ajagong_gokseong?igsh=MTJrMGI2N2N6dmoxYg%3D%3D
서사수는 서울 밖 사수를조명하기 위해 춘천, 강릉, 전주, 곡성에 직접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만으로는 아쉬워서 우리의 다음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서사수 인스타그램에서 다음 소식을 기다려주세요!
에디터 소개
로컬생활자 소피 | @local.sop
사람이 필요한 지역과 기회가 필요한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기획자 & 에디터를 꿈꿔요. 정착할 곳을 찾아 여러 지역을 넘나들고 있고, 궁금한 이야기를 찾아 3년째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최승선 | @choi_welcome
지역과 공간이 주는 경험과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전공의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도시재생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지역에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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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원이 서울로 몰리는 나라에서 서울 밖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서울 밖의 자리를 사수하는 사람들을 찾아 더 많은 서사가 다양한 지역에서 흘러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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