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 May 19. 2024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리뷰

자연과의 공존

 

모든 장면을 아날로그틱한 수작업으로 만든 게 눈에 보인다. 지브리 영화를 꽤나 본 지라 이런 영화를 처음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터라, 펜 선이 보이는 화면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역시 그래픽이 따라올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감성이 있다.

 영화가 환경을 바라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영화는 계속해서 자연을 정복하려 들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며, 나우시카라는 캐릭터를 앞세워 공존의 필요성과 가치를 역설한다. 이러한 영화의 톤은, 나우시카가 정신을 잃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어린 나우시카는 새끼 오무가 발각되면 죽임을 당한다는 생각에 그를 감추지만 곧 들키게 된다. 어른들이 새끼 오무를 데려가려고 하자, 그녀는 오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저항한다. 이에 어른들은 "곤충과 인간은 한 세상에 살 수 없어."라고 말하며 오무를 데려간다. 이렇듯 인간이 살려면 다른 존재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들과 공존하고자 한 나우시카.

 나우시카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크샤나인데, 그녀는 기술과 힘을 이용해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려 든다. 크샤나가 맹신하는 거신병과 철로 만든 무기, 비행선은 인간의 문명 혹은 이로 인한  파괴를 상징한다. 거신병이 내뿜는 폭발은 핵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것이 자연인데, 거기에는 심지어 오무나 포자와 같은 독과 곤충도 포함된다. 독이나 곤충이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해로운 존재이지만, 거대한 자연 사이클을 놓고 보면 필요한 존재라는 시각. 아니, 오히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만의 번영을 위해 거대한 자연 사이클을 파괴하는 인간들이야말로 해로운 존재라는 시각. 부해의 나무들이 생겨난 이유도 오염된 인간세계를 정화하기 위해서다. 나무들은 땅의 독을 흡수해 깨끗하게 만든 후 죽어서 모래가 되며, 곤충들은 그 숲을 지킨다. 나우시카는 독이 있는 식물의 포자를 채취해서, 그 식물을 신선한 공기와 지하 우물에서 나온 물이 있는 지하공간에서 키운다. 독이 있는 식물이 오염되지 않은 지하공간에서는 독을 뿜지 않는다. 즉, 땅이 오염된 것이 문제라는 거다. 그리고 땅이 오염된 것은 자신들의 번영만 생각한 이기적이고 경솔한 인간들 때문. 자신들도 결국 거대한 자연 사이클 속에서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당신들도 물을 마시잖아요? 누가 물을 깨끗하게 하는지 알아요? 인간들이 오염시킨 강과 호수를 부해의 곤충들이 정화시키는 거예요. 그런데도 숲을 태울 건가요? 거신병 따윈 다 소용없어요!"라는 나우시카의 대사는 확실히 뼈가 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요약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의 관점이 너무 올드하다고, 결국 인간들은 문명을 이용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쓴 댓글을 봤다. 그리고 그 댓글에 공감한 사람들도 꽤나 많더라. 하지만 글쎄.. 이제 시작이 아닐까? 아직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문제는 서서히 쌓여서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환경 파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닌가? 요즘 뉴스만 보더라도 심심찮게 미세 플라스틱 어쩌고 하면서 나오는데.. 오히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제시하는 주제는,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 더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여담으로, 오무의 황금 촉수는 <아바타>의 시냅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종족이 다른 생명체들 간의 교류와 공존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이 공주님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꽤 오래전 작품인데도 여성에 대한 편견 없이 멋지고 능력 있는 소녀가 활약한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우시카가 혼자서 거의 5~6명의 적을 무찌르는 씬도, 오염된 공기에서 마스크 벗고 사람들 회유하는 씬도 멋있었다. 나우시카뿐만 아니라, 빌런 없는 영화지만 세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토르메키아의 사령관 크샤나도 여자이다. 여자 주인공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루비 스팍스》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