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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Mar 17. 2024

영화 《친절한 금자 씨》 리뷰

복수의 무의미함

 처음 보았을 때는 잔혹하게만 느껴졌던 영화, 《친절한 금자 씨》. 하지만 한번 더 보고 나니 그 이면에 계속 자리 잡고 있던 공허한 서글픔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둠에 익숙해지면 보이지 않던 물체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처럼.

 마녀이자 친절한 금자 씨로 불린 이금자. 그녀는 별명처럼 양면적인 인물이다. 복수에 있어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가리지 않지만 복수심의 근원에는 그저 본인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책임지지 못했던 아이에 대한, 그리고 피해자가 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사죄의 마음. 애초에 아이가 생긴 것도 백 선생 때문이고 자신의 딸 제니를 책임지지 못했던 것도 백 선생 대신 감옥에 갔기 때문이며, 피해자인 원모라는 아이도 백 선생이 해를 입힌 것인데도 자신이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을 보면 이금자는 실은 대단히 양심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모든 일의 근원인 백 선생을 처단했지만 이금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마침내 복수를 끝낸 이후 하얀 눈이 내리자 근식과 제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리는 눈을 받아먹는다. 하지만 이금자는 슬픈 표정으로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어 허겁지겁 손에 든 하얀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러나 아무리 취해도 충족되지 않는다. 아무리 구원을 받고자 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순백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해도 돌아갈 수 없다. 복수는 문제를 리셋시키지 못한다. 죽은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백 선생이 죄를 뉘우쳤을지도 알 수 없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났으며 과거를 회상하며 상처가 덧난다. 복수는 그 무엇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끝은 공허할 뿐이다. 그 짧은 씬이 백 마디의 말보다 효과적으로 다가왔다.

 복수라는 키워드 말고도, 여성 영화로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영애라는 배우의 이미지의 전복이 곧 여성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의 모성애를 떠올려보면 포용, 희생, 따스함 등이 먼저 연상되는데, 이 모성애 때문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되려 거칠고 강인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금자가 제니와 함께 있을 때 백 선생이 잠복시킨 스파이(?)들과 맞서는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김원모 학생 외에도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부모님들을 폐교로 모았을 때, 이전에 김원모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차를 내어주는 장면에서 기존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전복시키기도 한다. 요즘이야 꼭 여자가 차를 내어 올 필요가 있나,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남자가, 그것도 형사가 차를 내어 올 생각은 못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처음에 《친절한 금자 씨》를 봤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근데 다시 보니 너무 재밌어서 이렇게 또 리뷰를 남겨본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전부 표현하지 못한 거 같아 조금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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