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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자기 Mar 25. 2024

인생은 타이밍

서울대 vs 홍대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한다. 그 작고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서 현재의 나의 상황과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는 큰 뜻이 있어서 혹은 엄청난 고민 후에 결정을 하기도 하지만, 타이밍이 맞아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에게는 타이밍이 참 중요한 요소이다.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인 나는 갑자기 미술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꿈꾸던 대학교에 가는 것이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을 받고서 불발되었고, 나는 무얼 할지 고민하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그토록 반대하던 예체능이 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운동과 음악은 꾸준히 취미처럼 하게 해 주셨지만, 미술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이유는 모두가 그렇게 예상했듯이, 미래가 불확실하고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라서 그렇다. 맞다. 투자대비 수익률이 아주 낮은 분야임에 틀림없긴 하다. 그래도 꿈이 좌절된 자식이 하고 싶다는 걸 극구 말릴 수는 없기에, 부모님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나의 미술대학 준비를 허락해 주셨다.


내가 사는 동네는 작고 허름한 동네다. 물론 그럴싸한 미술학원 하나도 없었다. 욕심 많은 엄마는 나에게 용돈 3만 원을 쥐어주며,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학군이 좋다는 동네에 가서 학생들이 제일 많이 나오고 큰 미술학원을 찾아보고 상담받고 오라고 하셨다. 엄마는 일을 하셔야 하니까, 내 학원을 알아봐 주러 다닐 시간도 인맥도 없었다. 받은 용돈으로 떡볶이도 사 먹고 학군 좋은 동네를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 학원가를 찾아보았다. 눈에 뜨이는 대형 학원들도 있고 작고 알차 보이는 학원들도 많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서성이며 사람들의 동선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니.. 선화 아이가?"

나는 고3 때 3개월 정도 소묘를 배우고, 수채화를 조금 배워서 입시미술을 했었는데, 그때 수채화반 선생님이셨다. 부산에 있는 미술대학에는 장학금도 받고 합격을 했지만, 욕심 많은 우리 엄마성에 찰 리가 없었고, 나는 재수를 해야 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서울의 괜찮은 일반 대학을 갈 수 있는데, 굳이 미술을 해서 지방대학을 가겠다니 그걸 허락할 부모가 있을까 싶긴 하다. 여하튼... 수채화 선생님이 나를 기억하셨다.


"아.. 네. 저 재수하려고요. 미술학원 알아보러 왔어요."

"니 대학 잘 붙었지 않았나? 여쨋든 이리 와봐라."


수채화 선생님은 이전에 있던 학원에서 나와서 대형 미술학원 전임으로 이직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대형 미술학원이 일대에서 제일 크고 좋은 거라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그 미술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원장선생님은 내 성적이 좋으니 서울대입시를 하라고 적극 권유를 하셨다. 그런데 수채화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대는 홍대지. 홍대반 들어가서 홍대 가라. 우리나라 최고 미대는 홍대다."


처음 들어보았다. 홍대. 서울에는 서울대가 있고, 부산에는 부산대가 있다고 단순히 생각하는 나에게 정보가 입력되었고, 나는 홍대반을 선택했다. 그리고 원장선생님과 사모님의 미움을 한 몸에 받으며, 8개월 입시미술 준비로 홍대에 수시로 합격했다. 미술학원에서 홍보용으로 내거는 건물 전체가 가려지는 커다란 현수막에 이름을 올리며 부산을 떠났다. 그리고 순진했던 그때는 몰랐었다. 서울대반 수익은 원장선생님이 가져가고, 홍대반 수익은 수채화 선생님이 가져가는 파트너 시스템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원장 사모님의 표독한 말과 퍼붓던 저주. 유독 나를 미워하셨던 이유를 나중에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었다. 그 수채화 선생님은 본인 모교의 교수님이 되셨고, 나는 미국에서 갤러리스트가 되었다. 그때 길에서 수채화 선생님을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있을까. 그때 원장선생님의 권유대로 서울대를 준비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 인생이 바뀌는 중요한 시작점의 타이밍은 기가 막혔고,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 믿으련다. 오늘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날일까. 어떤 기가 막히게 찰떡 콩떡인 인연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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