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유효기간
좋은 인연을 만나려면 자리를 비워둬야지
팬더믹 기간에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아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동안 일하느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터라, 친구들이랑 하하 호호 수다 떨고 밥 먹는 것을 생각도 못해봤었다. 더군다나 또래의 주부 친구는 없었으니.. 너무 재밌고 좋았다. 팬더믹이 준 선물이라고 할까. 여유를 배웠다.
미친 듯이 일하고 살지 않아도, 괜찮구나를 깨달았으니.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말처럼 팬더믹의 장점을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을 즈음 위드팬더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4년 남짓을 새로운 인연들과 시간을 보냈고, 기존에 알던 지인들을 더 깊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좀 더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사람에 대해 깐깐하고 예민한 나의 성격을 보았다고나 할까.
어떤 이는 넓고 얕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이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순간의 재미를 위해 시간을 때우면서 사는 사람이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잔머리를 쓰고 이간질을 일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자꾸 보여서 사람이 싫어졌다. 인류애를 잃어간다고 표현해야 할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호구 삼는 친구를 먼저 손절했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고 정신승리하며 태어난 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고민한 한 사람이.. 바로 내가 모두 손절하고 거리 두기를 한 사람들을 소개해준 친한 언니. 의심 없이 좋아하고 잘 지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깨달았다. 늘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항상 챙겨주던 언니와 나의 관계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구나. 가장 성격 좋고 괜찮아 보였던 언니가 폭풍의 눈일지도 모르겠다..
씁쓸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우리의 관계의 유효기간이 다해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날지도 모를 좋은 인연을 위해 옆자리를 비워두기로 했다. 이런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반나절동안 칭얼거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 인내도 필요했다. 그리고 나의 잡념을 지울 수 있는 책과 밀린 일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