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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Apr 11. 2024

우유를 사수하는 아버지

막내아들을 위한 우유 지키기

국민학교 2학년 때  남자 짝꿍은 집이 잘 살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우유급식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유가 너무 흔해 학교에서 무료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를 버리는 아이들도 있는데, 1970년대 후반에는 우유가 귀했고 우리 집 형편에는 매일 배달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음료가 아니었다. 오전 2교시 후 쉬는 시간에 교실로 우유가 배달되었던 것 같은데 우유 급식을 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얀색 비닐봉지 위에 녹색바탕에 하얀색으로 우유라고 써져 있었고 그 안에  담긴 흰 우유는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함과  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짝꿍에게 조금만  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줄 마음이 없는 이에게 얻어먹는다는 게 비록 어린 나이임에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혹시 준다고 하더라도 매일 얻어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유는  맛도 좋지만  칼슘이 많아 키가 큰다는 광고가  있어  더욱 먹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우유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우유 배달을 신청했고 며칠 후 집으로 매일 한 개가 배달되었다. 그리고 그 우유를 아침마다 아버지가 챙겼다가 나와 함께 동네 산에 운동 갈 때 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런 사실을  삼 형제 중 큰형이 알게 되었다. 형도 우유가 많이 먹고 싶었는지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대문 앞에서  우유가 배달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우유가 배달되자마자 마셔버렸다. 그리고 아침에 나온 아버지와 나에게 자랑하듯 우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날 우유를 못 먹은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아버지도 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교회 새벽기도회를 다녀온 후 방에서 잠깐 쉬었다가  아침 6시경  나를 깨워 함께 산으로 아침운동을 갔다. 그런데 형이 내 우유를 먹어버린 사건  이후에는 교회를  다녀온 후 우유가 배달될 때까지 마당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혹시 나올지 모르는 형보다  먼저 우유를 사수하기  위한  경쟁과 노력이  시작되었다.  아침잠을 못 이긴 형은 그 이후로 나오지 않았기에  '동생우유 탈취사건'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렸고  배달되던 우유도 한 달 정도 되다 끝나버렸다. 우유를 신청할 때부터 한 달만 먹기로 한 것 같았다. 나는 덤덤히 이런 상황을 받아들였기에 우유를 계속 먹고 싶다고 아버지를 조르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우유를 즐겨 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게에 진열된 우유를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릴 적  먹고 싶었던 우유를 많이 먹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아침 일찍 나를 위해 우유를 챙겨 주던 아버지가 그리워서인지, 두 심리가 복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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