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Jul 16. 2024

그때 피아노를 사길 참 잘했다

친구가 되어준 피아노

어릴 적 교회에 가면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신이 나고 재미있었다. 나도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 앉으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한 손가락으로 치는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학교종이나 산토끼등 계이름을 알고 있는 노래를 한음씩 한음씩 치는 정도였다. 이런 정도의 연주로는 나 스스로 만족이 되지 않았다. 나도 반주자처럼 두 손으로 치고 싶었다. 그런데 악보를 볼 줄도 모르고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어 하얀 건반의 계이름과 검은건반이 반음이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통기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갔다. 기타는 6개의 줄이 있는데 누르는 위치에 따라 계이름이 다. 그리고 코드라는 것이 있어서 여러 개의 음을 동시에 누르고 기타 줄을 치면 부르고자 하는 노래에 어울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게 교과서로만 배웠던 화음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 체험하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유레카’ 나에겐 대단한 깨달음이었다.      


코드를 이용해 피아노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가서 피아노를 쳤다. 교회 복음성가는 음이 단순하고 악보에 코드가 표시되어 있어서 왼손으로 코드음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멜로디음을 누르면 대충 연주가 되었다. 그때부터 많은 연습을 했고 쉬운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연주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

피아노를 조금이나마 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심심할 때나 마음이 공허할 때 피아노를 치면 마음이 안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렇게 나와 피아노의 친구 같은 인연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자주 치치는 못했다. 집에 피아노가 없기 때문이었다. 가끔 교회에서 칠 뿐이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신혼집을 마련했다. 상가주택이었고 정확지는 않지만 30평 정도 되는 전셋집이었다. 부부 2명이 살기에는 넓었다. 그곳의 구조에 맞춰 아내 될 사람은 살림살이를 구입했다. TV, 냉장고, 침대 같은 가전제품과 가구가 들어오며 어느 정도 신혼집으로 구색이 갖춰졌다. 모든 살림살이가 다 들어온 후 가장 기뻐해야 할 그녀가 조용히 한쪽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당황하기도 하고 놀라서 왜 우느냐고 물었다. 자기가 살림살이를 많이 해오지 못해 거실이 휑하니 비어있는 걸 보니  슬프다고 했다. 나는 거실이 비어있든 채워져 있던 아무 생각이나 느낌도 없고 아내의 말에 공감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내게 있는 모든 돈을 다 털어 피아노를 샀다. 연한 고동색에 나뭇결 무늬가 예쁘게 살아있고 전면에 나무줄기 비슷한 문양의 장식이 고급스럽게 보였던  피아노는 휑했던 거실을 멋지게  채웠을 뿐만 아니라 행복으로도 온 집안을 채워줬다. 아내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그 무엇을 하는 것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때 피아노를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에 앉혔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예전에 내가 그랬듯  손가락으로 한음씩 치게 했다.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선생님을 집으로 불러 가르치게 했다. 아이도 재밌어하고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곤 했다. 아이가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고 행복해졌다. 그때 피아노를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피아노는 거실 가운데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자기 앞에 와서 앉으라고 속삭이고 있다. 예전에는 피아노가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학창 시절의 친구 같았다면 지금은 편안함과 따스함을 주는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곁에 있는 좋은 친구 같은 피아노가 있어 행복하다. 그때 피아노를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삶의 과자 연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