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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ul 01. 2024

피고 지고 또 피는 그리움

아버지가 그린 무궁화

어릴 적 아버지 서재에는 철재 캐비닛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의 눈높이로 봤을 때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으나 높이는 꽤 높게 느껴졌다. 캐비닛 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4개의 가로 선반으로 칸이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버지가 보시는 책과 서류가 듬성듬성 채워져 있었다. 캐비닛 안에 있는 책은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으므로 나는 캐비닛 안이 궁금하지도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가끔씩 캐비닛을 열어서 보여주었는데 책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캐비닛 중간정도에 붙여놓은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그림은 엽서 한 장 크기였고 색연필로 그린 무궁화 한송이였다. 그림 속 무궁화는 여러 장의 분홍색 꽃잎에 밑부분(단심이라고 함)은  붉은색이었고, 그곳에서 뒤엉킨 암술과 수술이  꽃잎 길이만큼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 그림은 캐비닛 중간정도에 붙어 있었지만, 캐비닛 공간을 가로로 나누는 선반에 막혀 있어 어릴 적 내 키의 시선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뒤에서 안아 들어 올려 그림을 볼 수 있게 했다. 아버지가 그린 무궁화는 단순하지만 꽃잎, 줄기, 잎, 암술, 수술이 세밀하게 잘 묘사되어 있었고 꽃을 맴도는 나비도 방금 날아온 것처럼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었다. 실제 꽃과 비슷하게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감상이 끝나면 아버지는  무궁화를 그려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잠깐 본 기억에 의지해 그려야 하므로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다시 보여주라고 했고 그때마다 나를 들어 그림을 보여주셨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아버지가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더 재밌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수고스럽게 하며 그림을 여러 번 자세히 보고 여러 번 그려봐도 아버지 그림처럼 사실적이고 예쁘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형편없는 나의 그림에도 아버지는 칭찬해 줬다. 그런 칭찬 덕분인지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는 미술시간에 아버지의 무궁화를 많이 그렸고, 심심할 때면 공책이나 책 한편에 무궁화를 그리곤 했다.


점점 키가 크면서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캐비닛 중간에 있는 무궁화 그림을 볼 수가 있었다. 그 그림을 자세히 차분히 오랫동안 보며  똑같이 그려봤지만 역시나 아버지 그림의 경지를 따라가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 이후론 아버지의 그림을 똑 같이 그려보는 보다는 감상하는데 만족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캐비닛을 처분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캐비닛 속의 무궁화를 봤기 때문에 지금도 무궁화하면 아버지가 그린 무궁화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다.

우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이 무궁화이기 때문인지 주위에서 무궁화를 쉽게 볼 수 있다. 실물뿐만 아니라 TV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예전에는 TV방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에 나오는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후렴구에서 무궁화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TV에서 보는 무궁화와 아버지가 그린 무궁화는 매우 흡사했다.  그런데 학교나, 공원, 길거리에 피어있는 무궁화에서는 아버지의 무궁화를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무궁화는 꽃잎이 분홍색이고 단심이 붉은색인 홍단심계 종류인데 주위에서 흔히 보는 무궁화는  꽃잎이나 꽃이 하얀색인 백단심계  무궁화이거나, 홑꽃이 아닌 하얀색 꽃잎이 많이 있는 겹꽃 무궁화가 대부분이었다. 많이 아쉬웠다.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소환해 줄 무궁화가 캐비닛 속 무궁화와 달랐기 때문에 추억이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출근길에 길가에 핀 무궁화를 봤다. 내 키를 훌쩍 넘기는 크고 무성한 나무였지만 더위에 지쳐 꽃을 피우기 힘들었던지 겨우 한송이가 꽃잎 끝을 살짝 구부린 채 수줍게 피어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었고 그리워했던 홍단심계 무궁화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와 무궁화를 그리던 어릴 적 모습이 아른거렸다.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무궁화처럼 아버지와의 따뜻한 추억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기억나고 잊히고 또다시 생각이 난다. 그리고 새로운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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