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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소설] 그리움이 있다는 건

유달산 철거민탑을 보며

by 하늘소망

"종윤아 ~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며 귓전을 때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종윤은 꿈나라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눈꺼풀은 감겨있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어 몸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열린 방문사이로 유달산의 상쾌한 아침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며 잠을 조금씩 밀어냈다.

세수를 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자동차 윈도 브러시처럼 꼬리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며 흰둥이가 다가왔다.

종윤은 혀를 길게 빼내며 웃고 있는 흰둥이의 머리를 움켜쥐고 눈을 보며 말했다

'흰둥아~ 잘 잤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잠잠하던 꼬리를 다시 세차게 흔들었다. 종윤은 마당 한편 수돗가에서 손에 물을 묻혀 흰둥이 얼굴을 씻었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흰둥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흰둥이는 흰색 진돗개로 목수일을 하는 종윤의 아버지가 10년 전에 진도에서 일할 때 읍내 장에 갔다가 강아지가 너무 예뻐 사가지고 왔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종윤이와 나이가 비슷했다.

종윤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둥이가 왔으니 둘은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한 샘이다.


종윤의 집은 유달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산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유달산 여기저기를 누비기도 했지만 가끔은 흰둥이와 등반을 했다. 흰둥이는 산책을 아주 좋아했다. 산책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종윤이의 마을에는 집집마다 개가 많이 있었다. 낯선 사람이 오면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로 요란했다. 흰둥이도 산책할 때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면서 친구도 사귀고 때로는 으르렁 거리며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유달산 자락은 목포 도심과 인접해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유달산을 올라왔다. 목포시에서는 더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이 유달산을 방문할 수 있게 공원화사업을 계획했다.

그 사업을 위해서는 유달산 기슭에 형성된 마을을 철거해야 했다. 목포시에서는 철거민들과 이주 보상협의를 했다. 보상협의를 끝내고 이주할 집을 마련한 세대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았기에 이웃 간 정도 들고 추억도 많이 쌓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더 나은 터전을 기대하며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떠나는 사람들에게 기르던 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데리고 가면 됐지만 공동주택이나 마당이 없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개 삽니다"

이런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에 한 번씩 1톤 트럭에 철장을 싣고 개장수가 왔다.

차량 위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소리는 온 동네를 엄습했고 그 소리는 개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꼬리를 내리고 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개집 안에서 주인을 바라보는 눈에는 애처로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사납기로 소문났던 희철이네 누렁이마저 개장수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얌전했고 목줄에 끌려갈 때는 오줌을 싸며 두려워했고 깨갱대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구슬픈 표정으로 희철이를 바라봤다.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철장 속에 갇혔을 땐 자기의 운명을 체감한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자기의 집을 바라보았다. 그 눈 속에는 원망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이별의 아쉬움만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누렁이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희철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종윤의 집으로 내달렸다.

"종윤아~ 누렁이가 떠나서 너무 슬퍼"

"어디로 떠났는데"

"개장수에게 팔렸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에 종윤은 시선을 떨군 채 말을 잊지 못했다. 누렁이는 사나웠지만 종윤이를 좋아했다. 희철이네 집에 갈 때면 목줄이 끊어질 것처럼 당기며 종윤이에게 다가오려 했다. 누렁이를 생각하며 흰둥이를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조용히 앉아 쉬고 있었다. 흰둥이의 얼굴에 누렁이가 겹쳐 보이면서에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


옥수수 알맹이가 빠지듯 집집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던 마을에 하나 둘 빈집이 늘어났다.

밤이면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던 골목길은 정적에 잠긴 산속이 되었고 간간히 개 짖는 소리만이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종윤아~ 너희는 어디로 이사 가니?"

학교에서 짝꿍인 정희가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 부모님이 알아보고 계시고 있어. 너는?"

"우리 집은 양동으로 이사 간데. 그래서 북교국민학교로 전학을 가야 된데."

내심 정희를 좋아했던 종윤은 자기도 같은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었다.

"아버지~ 우리는 어디로 이사 가요?"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종윤이 물어봤다

"양동에 있는 집을 알아봤어. 집이 넓고 큰 길가에 있어서 이사하기도 편해. 그래서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직 확실히 결정한 건 아니야."

양동이라는 말에 종윤은 정희와 함께 북교국민학교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다.

"아버지~ 그곳으로 이사 가요. 친한 친구도 양동으로 간다고 했거든요"

흥분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집이 마당이 없어서 흰둥이를 데리고 갈 수 없어"

타오르는 심지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들뜬 종윤의 마음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머릿속에는 팔려가는 누렁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던 희철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흰둥이는 어떻게 해요?"

"그래서 고민이야..."

아버지도 흰둥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개장수에게 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그럼 흰둥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났다.

"아버지 ~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갈 순 없어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철거민 보상금으로는 마당이 있는 집을 살 수가 없어"

돈이 부족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지 못하는 게 자신의 책임인 듯 말하는 아버지의 기죽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종윤이도 괜스레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마당이 있는 집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늦가을 유달산 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588세대였던 마을 사람들이 나뭇잎 떨어지듯 하나 둘 떠나고 빈집은 헐리기 시작했다.

앙상한 가지처럼 종윤의 집을 포함해 일곱 세대만 떠나지 못한 마을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시청과 약속한 이주 시한이 다가왔지만 종윤이네는 떠날 수가 없었다.

흰둥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오던 개장수도 이젠 오지 않았다. 수많은 개가 개장수의 트럭에 실려가는 상황을 흰둥이도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런 충격 때문인지 흰둥이가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눈에 초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개와 사람의 나이는 다르기 때문에 사람 나이로 치면 흰둥이는 거의 90대 노인이었다. 그래서 자연적인 노화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시기가 절묘하게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개들이 팔리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충격으로 몸이 약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흰둥아~ 너와는 같이 이사 갈 수가 없데. "

종윤이가 흰둥이를 끌어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말을 알아들은 듯 초점 잃은 눈으로 꼬리만 흔들었다.

흰둥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고 다리에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산책도 힘들어했고 계단을 내려올 때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흰둥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만 하면서 하루 이틀 지나고 겨울 초입에 들어섰다. 이젠 마을에 종윤이네 한 가구만 남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종윤의 집 앞에 울타리 나무로 심긴 탱자나무에도 노란 탱자 한 개가 달랑 달려 있으면서 종윤이네와 운명을 같이 하려는 듯했다.


"종윤아~ 흰둥이는 달성동에 사는 아빠 친구에게 일단 맡길게"

이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아버지는 유달산 아랫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조금만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했다.

"그 집에도 개가 있잖아요.. 그 개에게 물리면 어떻게 해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요"

종윤이는 다시는 말하려 하지 않았던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말이었다.

"일단 맡기고 나중에 마당이 있는 집으로 가면 다시 데리고 오자"

차분하고 조용히 아버지는 대답했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는 말이 또다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네"

아버지를 졸라봤자 바뀔 것은 없다는 생각에 짧게 대답을 했다.

이제 종윤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흰둥이에게 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의 운명을 아는지 힘이 없어 축 쳐져 있으면서도 꼬리를 살짝살짝 흔들었다.


이사하기 이틀 전날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종윤은 여느 때와 같이 잠에서 깨어 마당에 나왔는데 흰둥이가 보이지 않았다.

"흰둥아, 흰둥아"

흰둥이 집을 향해 크게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이상한 예감에 마음이 불길해졌다.

조심스럽게 흰둥이 집을 들여다보니 웅크린 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을 뻗어 흰둥이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움과 온기대신 뻣뻣함과 차가움이 손 끝으로 전달됐다. 종윤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 손의 진동이 눈물샘을 자극해 두 뺨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흰둥이와의 추억이 생각났다. 밥그릇을 보면 맛있게 먹던 기억이, 마당을 보면 함께 뛰어놀던 이미지가 계속 그려졌다.

아버지와 함께 마당 한편 탱자나무 아래를 파서 묻었다. 그동안 기쁨과 행복을 주고 간 흰둥이가 너무 고맙고 그리울 것 같았다.

그렇게 흰둥이와 이별을 하고 이틀 후 이사를 가면서 추억의 장소와도 이별을 했다.

종윤이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떠나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탱자가 떨어지며 데구루루 흰둥이가 묻혀 있는 곳으로 굴러갔다.


종윤이는 마을이 다 철거되고 말끔히 정비된 이후 대학생이 되어 10년 만에 옛 집터를 찾았다. 그곳에는 철거민 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기념탑은 철거민들의 집을 철거하면서 나온 돌을 모아서 세웠다. 그 돌들 중에는 종윤이네 집 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하나하나에서 철거민 가족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따뜻했던 흰둥이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참 동안 철거민 탑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는 사이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태양이 저물기 시작했다.

철거민 탑을 가득 채웠던 태양빛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철거민 탑이 지나가는 하루를 아쉬워하며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태양빛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종윤은 그 모습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도 과거가 되어가는구나. 그리고 그리운 날이 되는구나"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자 종윤은 또다시 혼잣말을 했다

"그리워할 수 있는 과거가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움을 소환해 주는 이 탑이 있어 감사하다 "

그리곤 불빛이 있는 시내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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