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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29. 2024

멸치 대가리를 따며

엄마와 함께하는 미션

어렸을 때 살던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항구가 있었고  그 근처에 수산물시장이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고 시끌벅적 흥정이 일어나는 그곳은 호기심 많던 어린 내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얼음에 쌓여 가지런히 정돈된 갈치, 고등어 같은 바닷고기들, 고무 대야에서 빠져나오려 흡착기 달린 다리를 마구 뻗어대는 낙지, 삼각형 모양의  오리, 모양은 가오리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더 큰 홍어, 오징어와 똑같이 생겼지만 몸통 안에 큰 뼈가 있는 갑오징어, 전복,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이 있었다. 시장을 조금 더 걷다 보면 건어물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이곳에서는  오징어, 쥐포, 문어 말린 것이 있었지만 단연코 멸치가 제일 많았고 찾는 이도  많았다. 어릴 때라  값은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밥상에 자주 올라온걸 보니 그리 비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반찬을 하기 위해 주로 중멸치를 샀다. 멸치를 사 온 날에는 엄마와 나는 멸치 대가리를 따야 했다. 대가리와 함께 내장까지 제거해야 쓴맛이 없고 맛있다고 했다. 이해는 했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다. 금방 제거할 것 같은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고 단순·반복 행동이라 지루하기도 했다. 하기 싫었지만 엄마의 수고를 덜어드려야 한다는 효심과 맛있게 올라올 멸치반찬을 생각하며 묵묵히 했다.     

멸치대가리와 내장을 다 제거하고 나면 성취감도 있었고, 멸치대가리는 모아놨다가 개밥을 줄 때 섞어서 줬다. 그러면 개도 좋아하고 잘 먹으니 기분도 좋고 보람도 있었다.     


멸치를 사면 자동적으로 대가리를 땄던 나는 원래 멸치반찬을 만들 때는 씁쓸한 맛을 없애기 위해 무조건 대가리를 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싸 온 도시락의 멸치는 대가리가 있었다. 친구들의 대가리 있는 멸치반찬이나 대가리 없는 내 멸치반찬이나  양념에 너무 뒤범벅이 되어서인지 맛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이상했다. 왜 엄마는 맛의 차이도 별로 없는 멸치반찬인데 수고스럽게 대가리를 따려고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조금이라도 더 맛이 좋겠지 하는 생각으로 애써 대가리를 땄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합리화하려는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멸치를 사 올 때마다 대가리를 따는 나의 수고는 계속되었고, ‘이래야 더 반찬이 맛있어’ 하는 자기 암시도 계속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멸치반찬이 대가리를 딸 필요가 없는 작은 잔멸치로 바꿔지고 있었다. 가끔씩 중멸치 반찬도 만드셨는데 대가리가 붙어있었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면서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하는 것이 귀찮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왜 대가리를 따지 않았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만약 물어보면 다음부터는 대가리를 따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리가 이상하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처럼, 있을 땐 관심이 없다가 막상 없어지면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다. 대가리가 없는 멸치반찬을 먹을 때는 대가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대가리가 있는 멸치반찬을 먹으니 대가리가 없는 멸치반찬이 생각났다.     

그래서 중멸치 3kg 1박스를 사서 내가 직접 대가리를 제거한 후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다. 어머니는 대가리를 따기가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나는 어릴 적 엄마랑 같이 멸치 대가리를 딸 때처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웃으며 좋아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대가리 없는 멸치반찬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대가리를 따니 더 맛있다고...     

그 말을 들으며 왠지 엄마와 멸치대가리를 따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무슨 이유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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