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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단편소설) 줄 사랑, 받을 사랑

할머니와 손자의 애달픈 사랑 나누기

by 하늘소망

봄향기를 한껏 나눠주던 벚꽃 잎이 꽃샘바람에 우수수 날려 내려앉은 레일 위로 육중한 기차가 덜커덩 덜커덩 가뿐 숨을 내쉬며 미끄러진다. 기차소리를 더 가까이서 들으려는 듯 기찻길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외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민수네 집이다. 역무원 사택으로 사용되다 노후되어 방치된 건물을 민수네가 무상으로 살고 있다. 그마저도 머지않아 곧 헐릴 예정이다.

"민수야~ 집에 있니?"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동글동글한 얼굴의 민수가 살짝 미소를 짓는 얼굴을 내밀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

"민수 집에 있었구나. 할머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니?"

"네~"

짧게 대답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세 번째 민수집을 찾아왔지만 민수는 아직도 이들을 만나는 것이 어색한 듯 말이 없다.

교육청에 근무하는 경수는 마음이 통하는 3명의 동료들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조부모 가정을 방문하여 집안 청소도 하고,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에 한 곳이 민수네다.

"어서 들어오세요"

민수 뒤로 칠순의 몸으로 어린 손자를 홀로 키워야 하는 굴곡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지고 가는 듯한 창백하고 몸이 수척한 할머니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반겼다.

“어서 들어와”

두 명이 들어가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좁은 방에 경수와 함께 온 동료 3명이 들어갔다. 서로 포개어 앉는 모습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앉았다. 직사각형 형태의 방 한쪽에는 TV가 있고, 그 위에는 인근 교회 달력이, 그 옆에는 학사모자를 쓴 민수 유치원 졸업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고 그 외 공간에는 민수 책,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가족간의 추억이 민수 유치원 졸업과 함께 끝나버린 분위기가 감돌았다.

"민수 아빠는 자주 와요 "

"일 년에 두어 번 와"

민수가 걸음마도 시작하기 전 이혼을 한 민수 아빠는 민수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몇 개월에 한 번씩 온다고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라. 변변한 직장도 없어"

한숨 섞인 목소리로 푸념하듯 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원망이 느껴졌다.

"민수 엄마와는 연락이 돼요?"

"전혀 연락을 안 해.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민수는 너무 어릴 때 헤어져 얼굴도 몰라"

민수 엄마 이야기에 곁에 앉아 장난감을 만지고 있는 어린 손자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없이 자라는 민수가 안쓰러워. 내가 몸이 아파서 민수를 잘 돌보지도 못하고...."

말을 계속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떨궈진 할머니의 시선 끝에는 이틀에 한 번씩 혈액 투석을 위해 찔러대는 주삿바늘이 남긴 상흔으로 시퍼런 멍이 든 야윈 팔뚝이 있었다.

혈액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갈 때는 거동이 불편해 9살 민수가 할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같이 간다고 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저 어린것이 도리어 나를 돌보고 있으니 투석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더 아파"

"그러니 빨리 건강해지셔야죠"

할머니의 이야기가 경수의 마음을 후벼 파는 듯했다.

경수와 동료들은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들의 작은 손길이 민수와 민수 할머니의 일상에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생각을 했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은 납덩이를 한 아름 안은 듯 무겁기만 했다.

따스한 봄이 지나고 장마가 끝난 후 경수와 동료들은 다시 민수네를 찾았다. 옷깃을 여미게하는 꽃샘바람이 가득했던 민수네 집 마당엔 푹푹 찌는 한여름 열기와 무성히 자란 잡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 비가 많이 내리는 긴 장마로 인해 천장에 비가 샜다. 벽지 여기저기에 물자국이 있었고 그 위로 검은곰팡이가 둥지를 틀어 방안은 벽지를 너덜너덜하게 했다. 이들은 도배를 했다. 마침 미숙하지만 도배를 해본 직원이 있어 직접 해보자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도배와 청소를 하여 한결 분위기가 좋아진 집안을 둘러보는 경수와 동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깨끗한 방안 모습에 경수와 동료들을 대하는 민수의 마음도 많이 열린 듯, 이제는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수건도 가져다주면서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했다.

계절이 바뀌고 만남의 시간들이 한 겹 두 겹 쌓이면서 민수와 경수의 만남에도 정이 쌓이고 있었다. 매번 경수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약속을 잡고 했는데 최근엔 민수가 먼저 경수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말하고 할머니의 건강상태도 알려주는 횟수가 많아졌다.

민수가 5학년이던 추석 때 경수는 혼자 민수를 찾았다.

"영화 보러 갈래 “

"네~ 좋아요 “

극장 매표소에는 명절이라서인지 엄마 손을 잡고 영화 보러 온 아이들도 있었고, 팝콘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경수는 그 모습을 보며 민수의 표정을 살폈다. 팝콘이 먹고 싶었는지, 엄마랑 같이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는지 민수의 시선은 팝콘을 파는 곳에 고정이 되어있었다.

"팝콘 사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팝콘이 먹고 싶어서 그곳을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일까? 경수는 머릿속으로 민수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그 말에 민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 눈만 끔벅이다 바짝 마른 목소리로

"엄마를 본 적이 없어요."라고 한마디만 겨우 내뱉는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의 이혼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리움도 없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엄마랑 같이 있는 모습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나도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요. 부럽기도 하고, 뭐 그냥 그래요." 라며 툭 한마디 더한다.

“엄마가 곁에 있으면 어떤 것이 좋을 것 같아?”

"학교 운동회 때 응원하러 올 수도 있고, 할머니도 나 때문에 힘 안 들고, 할머니 병원에 갈 때 같이 가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요."

겉으로 보기에는 의젓하고 어른스러워도 본마음은 제 또래 아이들과 같이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웃으며 답하는 민수의 환한 눈망울 저너머로 한창 보살핌 받고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도리어 할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삶의 짐이 버거워 느껴져 민수를 바라보는 경수의 맘 한 구석이 아려왔다.

할머니의 사랑과 주변의 손길과 도움으로 민수는 한해 한 해가 갈수록 건강하게 성장했다.

반면에 민수 할머니는 점점 약해지셨다.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 있고 음식도 많이 드시지 못했다.

석 달에 한 번씩은 방문하던 경수와 동료들의 방문도 뜸해졌다. 일 년에 한 번 갈 때도 있었고 일 년이 넘어갈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민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민수야"

오랜만에 방문한 민수집에는 문이 잠겨져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민수야 어디니?"

"요양병원이에요" 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민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양병원에서 경수와 동료들을 반기는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오랫동안 걸을 수 없다고 했다. 그 곁에는 민수가 미소를 지으며 함께 있었다.

"민수야 매일 오니?"

"네. 학교 끝나면 이곳으로 와서 할머니를 간호해요"

"많이 힘들겠구나"

"괜찮아요. 할머니가 더 힘드시죠"

우리들은 너무 철이 일찍 들어버린 민수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가만히 어깨를 두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몇 달 후 민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무거운 침묵이 잠깐동안 흐른 후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목 메인 목소리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울음이 터져 뒷말을 잇지 못하는 민수를 경수는 겨우 달랜 후 동료들과 함께 급하게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검은 상복을 입은 민수가 경수 일행을 맞이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였다.

영정사진 속 할머니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민수만 홀로 두고 눈을 감으셨을 할머니 맘을 생각하니 경수 눈에 왈칵 눈물이 올라왔다.

아픈 몸으로 혼자 손자를 키우며 살았던 할머니의 삶이 너무 애처로워 흘러 내는 눈물을 한 손으로 훔치면서 이제는 살아있을 때 믿던 하늘나라에 가서 안식을 취하길 간절한 맘을 담아 기도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음이 많이 아프지?"

"네.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살아계실 때 너무 힘들어하셔서 이젠 아픔이 없는 곳에 가셨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위로가 돼요~"

"이젠 혼자 살아야겠네"

"네~ "

"집에 있으면 할머니가 많이 생각나겠다"

"할머니가 몸이 많이 아프면서도 나를 잘 키워주신 그 사랑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이 말을 하며 민수는 고개를 떨궜다. 눈에 맺힌 눈물이 뺨으로 흘렀다.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었던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큰 것 같았다

이제 누가 민수에게 사랑을 주는 샘물이 되어 사랑에 목마른 민수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엄마를 만났어요"

너무나 반가운 말이어서 흥분이 되어 큰소리로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민수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고모가 연락해서 만나게 해 줬어요. 엄마랑 고등학교 동창이어서 알음알음으로 연락처를 알았데요"

"엄마를 보니 기분이 어땠어?"

"그냥 눈물이 났어요. 엄마도 울었고요. 왜 눈물이 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 말을 하는 민수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지며 눈물이 흐르고 이제는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그동안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설움과 엄마를 만난 기쁨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대신 준 할머니를 잃은 감정들이 뒤엉켜 민수의 눈물샘을 계속 터뜨리는 듯했다.

"그래 오늘은 맘껏 울어" 다독이며 민수를 한참 동안 말없이 안아줬다

그런데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한 여인의 흐느낌이 경수의 귀를 타고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그 흐느낌에는 아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던 설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민수 엄마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민수야 저기 계신 분이 엄마야?"

"네"

그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민수 엄마가 일어서서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경수는 그 모습을 보며 표정이나 말로는 나타낼 수 없었으나 너무 기뻤다. 민수에게 새로운 사랑의 샘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에게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많은 사랑이 나오길 기도했다.

그리고 서로의 눈물이 그동안 마음속 깊이 묻혀있던 그리움이라는 씨앗을 싹 틔워서 사랑의 열매를 맺길 바라며 장례식장을 나왔다.

민수할머니의 환한 웃음처럼 밤하늘의 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을 벗 삼아 한참을 홀로 걸었다. 장례식장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근처 교회에 불이 켜져 있었고 피아노 반주에 맞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고요,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자도 없어요' 이 노랫가사에 경수는 큰 감동이 되어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서로 떨어져 있어서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했던 민수와 민수엄마가 생각나고 그 세월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이제부터는 그들이 사랑에 가난하지도 부요하지도 않길 바라며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하늘의 별들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 유난히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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