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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Jul 12. 2024

행복 이 원피스 같은 놈

어제 친구와 DM을 나누던 중 ‘ㅋㅋㅋㅋㅋㅋ너 때문에 행복이 뭔지 더 어려워짐 ㅋㅋ, ㅋㅋㅋㅋㅋ행복은 즐거움 같은 거였는데 너무 딥해짐‘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거에 나에게 행복이 무엇인가는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이었다(물론 지금도). 이게 감각인 건지, 감정인건지, 상태인 건지. 느낌은 알겠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단어였다.



행복

나에게 행복이란 마치 원피스같이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온 세상 사람이 열망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은데 정작 그 누구도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지를 못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주관적인 것인가? 혹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나 감정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떠한 상태를 지칭하는 것 인가? 사람들이 행복 ’하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를 행하는 행위 같은데 그럼 행복은 느끼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인가? 아니면 배고프다, 슬프다 같이 느껴지는 것 인가? 그렇다면 그 느낌은 행동을 해야 느껴지는 것인가? 아니면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면 행해지는 것인가? I am happy: 나는 행복한 상태이다? 나는 행복이다?



위에 적은 것은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행복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그 좋다는 ‘행복’이라는 것을 갖고 싶은데 뭔지를 알아야 가질 수가 있지. 그놈의 행복이 뭔지 생각할수록 어려워 일단 나만의 행복의 기준을 정해버리기로 했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약간의 불행과 많은 행복이 있는 곳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만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상대성이론으로 접근했다. 그래 모든 사람이 부자라면 세상에 부자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힘듦을 느끼기 위해선 힘들지 않은 상태를 느껴야 한다. 불행하지 않음을 인지하기 위해선 불행을 경험해야 한다.


‘항상 행복하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약간의 불행과 많은 행복이 있는 곳일 것이다.’를 시작점으로 삼아 기준을 만들었다. 그럼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약간의 불행이 있어야 하네. 여기부터 난관이었다. 난 불행이 뭔지도 모른다. 행복을 알기 위해 불행이 뭔지를 알아내기에는 나의 행복을 찾는 여정이 산으로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뉘앙스만 맞춰서 내가 아는 감각이나 감정과 매치를 시키자.



불행= 부정적인, 좋지 않은, 힘든

행복= 긍정적인, 좋은, 기쁜



이렇게 나만의 행복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나의 일상의 비율이 힘든 일 20%, 기쁜 일 80%의 비율에서 기쁜 일이 80% 이상일 때 나는 행복한 상태다.’



이 이후 자주 나는 나의 일상과 지난 하루들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행복하구나,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구나 구분했다. 이런 나만의 행복도 썩 괜찮았다. 힘들다가도 전체적인 내 상태가 기쁨이 더 많은 행복한 상태인 것을 인지할 때면 힘듦을 이겨낼 원동력이 돼주었다.



그러던 중 또다시 문득 행복에 대한 진짜 본질이 궁금해졌다. 내가 세운 기준이 아닌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지.



내가 세운 기준의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내가 인지할 때 내가 어떤 느낌이었지? 평온했다. 마음이 든든하며 잘 살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안정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말할 때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너는 왜 돈을 왜 모아?

‘그냥 나중에 편하고 살고 싶으니까’

-돈이 있으면 편하게 사는 거야?

‘그렇지,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지’

-편하게 살면 뭐가 좋은데?

‘행복하겠지’



그러고 보니 편하다와 행복은 항상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럼 결국 행복은 편하다는 걸까? 나에게 이 말에서 편하다는 단어의 뜻은 편리하다보단 편안하다는 단어로 해석됐다. 편안하다는 것은 뭘까 평온한 상태를 뜻하는 걸까? 내가 평온한 상태일 때가 있었나?



다시 위의 글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세운 기준의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내가 인지할 때 내가 어떤 느낌이었지? 평온했다. 마음이 든든하며 잘 살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안정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내가 행복하다고 인지할 때 느꼈던 느낌 중 평온이 있었다. 나는 왜 평온했을까, 나는 행복하다는 것을 인지할 때 말고 또 언제 평온했었나



불안도가 유독 높은 나는 늘 상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에는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경우도 있다. 원인의 유형에 따라 느껴지는 불안도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불안이다.  불안한 나는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 가장 평온하다.



그렇다면 왜 나는 불안하지 않을 때 평온함을 느꼈을까? 일단 항상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니 불편함이 사라져 평온한 건가.


그럼 불안이 느껴지지 않아서 불편하지 않을 때의 나는 어땠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불안할 때의 나는 어땠지? 사소한 것에도 온갖 감정이 요동친다.



그렇다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가장 평온하구나. 그러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평온해야 하고, 평온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야 하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는 불안하지 않아야 하구나.



이 날 내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다시 성립되었다.

‘행복이란 불안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때부턴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내가 불안하지 않은지 알아야 하기에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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