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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Dec 18. 2024

나팔꽃


새벽이면 푸른 허공이 열리고

나팔꽃은 물기를 머금은 입술을 내민다

잠들어 있던 바람의 한숨이

줄기 끝에서 조용히 울린다


너는 꼭 아는 사람처럼 피어나서

빛을 물어다 주었다가

금세 숨을 고르며 접히곤 했다

온종일 고개를 숙이며 드러난 맥락은

누군가의 어깨 위에 닿을 것만 같아서


꽃잎이 한낮의 햇살을 견디지 못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것임을

아무도 모른다


네가 접힌 자리엔 마침표 대신

묵직한 여백이 남고

누군가는 그것을 저물어가는 하루라 부르지만

어쩌면 다음 생의 첫 문장일지도 몰라


너는 늘 잠깐 피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남겨진 네 푸른 흔적은

내 마음 어딘가에 깊게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조금 접혀도 괜찮아

네가 피어나는 동안,

세상은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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