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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Feb 25. 2024

그녀는 없고 밀물이 든다.






‘그녀는 없고 방 안에는 온통 밀물이 든다.`

그녀는 없고 밀물이 든다는 것이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오래도록 생각한 적이 있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누군가 내게 그 여름을 물어온다면 ‘그녀는 없고 밀물이 드는 그 방’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촌각을 다투는 아침, 정신없이 달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던 길. 그 길에서 맥없이 풀리는 다리를 옮기며 나는 그녀가 없는 방을 생각했다.

주말이면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 유난히 키가 작았던 그 소나무 길을 따라 도서관으로 가곤 했었는데, 그 길에서도 밀물이 든다는 것이 그녀의 앞날이 밝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모두 잠든 밤, 욕실 거울 앞에서야 발견하게 되는 머리카락에 붙은 마른 밥풀을 보면서도 나는 무심히 그녀는 안전한가 생각했던 것 같다.

비가 잦았던 그 여름, 어쩌다 우연히 찾은 그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시였다. 글의 말미에는 ‘나는 이제야 이 시를 다 외워서 쓸 수 있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저 그뿐이었을 텐데 그때의 내겐 그뿐이 아니었던 건지  내가 이 마트와 저 마트의 매대를 돌며 같은 상품의 가격 몇 백 원을 고민하는 동안, 지구는 성실히 태양을 몇 바퀴나 돌아 그와 나 사이에 이 시를 놓았던 것이다. 시간과 거리, 공간의 개념이 이렇게 환산되니 그 수식은 내겐 “그뿐”이라고 적기엔 뭔가 더없이 불공평해 보였다.

그는 아직 오지 않고, 아이가 잠든 밤이면 나는 지친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커서에도 발꿈치가 달린 듯 매우 조용하게 그의 블로그를 뒤졌다.

그가 정말 내가 아는 그인지, 그가 맞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맞으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불도 켜지 않은 방,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에 기대 그의 흔적을 이리저리 더듬는 동안 책상 옆 커다란 통창으로는 비가 내렸고 또 그쳤다. 창으로 내리고 그치는 것이 마치 화면의 달뜬 커서마냥 사선으로 깜박였던 것 같다.

 

금요일의 퇴근길은 유독 힘들다. 차가 많고 불빛도 많으며 간간이 노을도 지기 때문이다.

내 오른편으로 지는 차창에 박힌 네모난 노을은 무심히 붉다가 이내 푸르스름하게 사위로 내려앉는다.  마음이 없는 것들에 자주 다치는 것는 습관인 걸까 생각하다가 나는 한 구절 소리 내어 시작한 그 시를 마지막까지 외워내지 못한다.

보통의 나무들 보다 한 뼘은 낮았던 단지 뒤 소나무들은 어쩌면 그들의 간격으로 나의 보폭을 따라 걷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손을 잡고 뛰던 아침에 그 길을 채우던 바람과 몰아쉬던 숨결, 그리고 그 1분을 남긴 안도감이 그때의 나를 지탱해 주던 호흡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언제 붙었는지 종일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머리카락에 붙은 마른 밥풀을 비추던 거울 앞에서 내가 궁금해했던 그녀의 안전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도 그때의 나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블로그의 그가 내가 알던 ‘그’였는지조차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대로 아름다워서 마지막까지 외워내지 못한 시처럼, 어떤 것들은 그저 확신할 수 없는 채로 두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그녀는 없고 밀물이 들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거라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앞차의 붉은 후미등이 깜박인다. 앞차와의 적정한 거리를 두려 무심히  밟았다 떼는 브레이크처럼, 이젠 제법 희미해진 기억에서 나는 살짝 발을 뗀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이런 순간 이런 공기를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 결국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는 묻지도 않은 답을 한다.

그러다가 가만히 숨을 참고 이내 한 마디 건네 본다.

그녀 거기, 잘 지내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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