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나 꾸러미를 들고 그 길을 지나던 기억이 있다.아니 왠지 나는 그런 기억들 밖에 없다.
그 길에 더 있었던 무엇인가는 생각나지 않고 내가 들고 있었거나 들려 있었던 그 수많은 봉지들만 생각나는 것이다.
골목을 돌아 대문 몇 개가 보이고, 가끔은 개집도 보이고 널어 놓은 빨래들과 열어 놓은 창문들이 보인다. 보이는 것들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더 보아야 할 것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본 적이 없는 풍경들 사이를 걷는다. 걷다 보면 무심해지고 무심해지다 보면 봉지의 무게를 잊게 된다. 그리고 충분히 길은 길다. 골목과 골목은 늘 만나고 헤어지는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길에서 내가 잊지 않고 보게 되는 것은 대추나무다. 언젠가 엄마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일로 나와 그 길을 걸을 때 ' 저건 대추나무다'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생이 우리 앞에 예고해 둔 사건들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란한 시기였고, 그것이 사건인지 사고인지 누군가의 실수인지, 의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알고 있는 건 그저 우리가 들고 걷던 봉지에 든 내용물들과 이 골목의 끝과 저 골목의 시작일 뿐이던 그때 엄마는 길의 어느 한 구석, 그것을 가리키며 `저건 대추나무` 라고 말했었다.
나는 꿈을 꾼다.
꿈에서 보게 되는 대추나무는 매번 그 형태가 다르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그것이 대추나무면 되는 것이다. 그때 엄마가 그것을 가리킬 때 나는 그저 슬쩍 그 나무를 올려다봤을 뿐이었다. 별 감흥도 없었고, 며칠 후면 비워줘야 할 집과 갚아야 빚을 셈하고 나면 우리에겐 더 이상 돌아갈 집도, 집으로 가는 길도 잃게 될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사정이 내게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엄마는 속도 편하지. 남의 집에 있는 나무가 대추나무든 사과나무든 그럴 걸 구분할 정신이 어디에 있나 나는 의아했었다. 의아했을 뿐 묻지 않아서, 그때의 엄마가 가진 사정이란 것이 나의 것과 같은 것이었는지, 혹여 더 무겁거나 지나치게 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나는 영영 알 수 없다.
슬픔이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도무지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이제는 알 수 없게 된 것들이다.가끔 그때 묻지 못한 것들을 뒤늦게 엄마에게 물어보지만 엄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길에 서 있던 대추나무도 엄마는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해서 엄마는 편안하다. 그래서 그 기억은 이제 나만의 것이 되었다. 때로 슬픔이 어떤 모양인가 누군가 물어 온다면 나는 그 길에 서 있던 대추나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슬프냐고 다시 묻는다면
아니,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고.
그저 너무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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