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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Mar 13. 2024

그 여름, 콜롬비아가 내게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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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작은 커피숍을 발견한 때는 한 여름으로, 기억하기론 더위가 초절정에 이른 7월의 한낮이었다. 근처의 협력사에 볼 일이 있어 고객과 함께 한 일정이었고, 일정 중간에 30분쯤 의도치 않은 간격이 생겨 우린 어디로든 더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허름한 상가건물 뒤쪽에, 그런 곳에 있음 직한 해장국집, 선술집 사이에 그 커피숍이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보기에도 그런 곳에 있음 직한 커피숍이었다.


아아 3잔이요. 주문을 하는데 덩치는 산만한 젊은 남자가 포스기를 앞에 두고 무척 당황한 눈치로 계속 뒤쪽을 살핀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 아마도 남자의 엄마인가 싶은 연배의 여인이 기계 앞에서 한창 분주하다. 커피가루를 털어내고, 김이 나는 스팀우유를 잔에 따르는 여인의 태가 어딘가 맵다. 굳이 보지 않아도 필요한 기구가 양팔의 동선 안 어디에 있는지 아는, 많이 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속도를 잘 버무려 놓은 그런 맵고 깐깐한 태.


‘아아’를 모르나? 장애인인가 봐요. 가족이 같이 하나 보네. 콩을 직접 볶는다는데요. 함께 간 동료는 우리들만 들을 수 있는 데시벨로 묻지도 않은 것들을 연신 브리핑 중이고, 아, 잘못 들어왔나, 난감해진 나는 주문을 취소할까 고민한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어쨌든 취소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순간에야 자리에 앉는다. 대개의 시선으로 보자면 지저분하고 낡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 우연히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곳에 커피를 사러 올까 싶다. 무언가 기대보다 낮고 누추한 것들이 딱딱하고 전혀 친절하지 않은 의자와 함께 놓여 있다. 비뚜름하게 앉아 무심하게 공간을 훑다가 문 앞에 쌓아 둔 포대자루에 시선이 멈춘다. 흐릿해져 먼지처럼 적힌 콜롬비아. 나는 콜롬비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생각해 보다가 내가 그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 조금 놀란다. 많이 들어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낯설어질 때, 내가 무언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본능적으로 겸손해지는데, 태도가 바뀌니 그제야 지금껏 보이지 않던 커피숍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족히 10분은 가야 하는 거리. 실로 다양한 메뉴와 합리적인 가격을 장착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넘쳐나는 이 신도시에서 구도심 그 작은 커피숍은 일단 내게서 멀다. 종종 그 커피를 먹고 싶다고 말하는 내게 동료 중 누군가는 ' 너무 멀잖아. 그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그런 거야? 난 모르겠던데'라고 말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커피를 딱히 즐기는 타입도 아니고 더구나 취향을 가릴만한 내공도 없어서, 문제는 나조차도 왜 그 커피를 찾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 왜 굳이.라는 눈총을 받으며 차로 20분을 왕복하는 나를 동료들은 의아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커피는 늘 계절에 따라 온기나 냉기를 잃고 나는 그것을  책상에 놓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다.


때로 제 온도로 다가서는 것들의 날카로움이 가슴을 스칠 때, 정해진 답이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선택이란 걸 해야 할 때, 도통 앞이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두려움 앞에 설 때, 나는 어떤 고집스러움을 떠올리게 된다.

왜.. 이런 곳에..라며 의아해했던 그 여름날의 나로 돌아가, 기준보다 낮고 누추한 것들 사이에서 맵고 고집스러운 태로 내리던 그 커피향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내 기억에 어떤 `처음`과 닮았고, 그 `처음`을 생각하다 보면 때때로 용기란 게 생기기도 한다.


서로의 사연도 모르고, 어떤 이유도 없는 것.

그저 말없이 뜨겁거나 차가운 커피를 사 가는 손님.

주문한 커피를 더듬더듬 따라 말하며 서툴게 포스기를 누르는 남자.

그 박자를 한 여인은 저 안에서, 나는 이 밖에서 무던히 기다려 주는 것.

그리고 그 낮고 누추한 것이 거기 오래 있어주길 바라는 작은 `지지`를 담아

담담히 커피를 받아드는 것.


그러니까 왜냐고.

그 여름, `콜롬비아‘ 가 내게 물어 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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