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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Mar 20. 2024

언제나 내 길일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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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내가 걷는 길은 보통 하나이다. 가끔 두 개인 척하며 목적지를 달리하지만 사실 그건 경유지일 뿐 최종 목적지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이 동선은 내가 근 몇 년 전부터 집 밖을 걸어서 돌아다니는 유일한 길이다.​​


아이가 좀 더 어릴 적에는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오는 동선의 경유지도 다양했었다.

그 경유지에는 아이의 어린이집도 있었고, 세 그루의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단지 내 놀이터도 있었다. 물론 당시 세일의 성지였던 아파트 앞 홈플러스는 단골 경유지였는데 왜인지 그 동선의 분주함은 봄이 오던 시기에 몰려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딸기나 상추같이 유독 여린 것들이 라벨을 달고 매대에 오르는 시기. 단톡방 맘들이 올려주는 할인정보를 따라 나는 부산히도 그 길을 오갔었다. 내일이면 물러져 상품의 가치를 잃고 버려질 것들을 봉지 가득 담아들고 그 밤 나는 이제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 밑을 걸어 집으로 왔다. 무언가 제값을 치르지 않은 포만감이 우리의 오늘을 간신히 지켜주는 듯 안도하며.

​​

그때는 그랬다. 나는 그런 포만감으로 오늘을 지켰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문득 시간이 흐른 어느 때 내가 언제나 `여기`에 있을까봐 두려워지곤 했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들의 불안감이 발꿈치를 따라다닌 시기였다. 밤늦게 톡을 확인하고 두 봉지가 남았다는 반값 감자를 사러 가던 날,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내 발등을 비추던 가로등 불빛.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렇게나 끌고 나온 헐거운 슬리퍼 구멍으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 걸을 때마다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그 길에 서서 나는 그 길의 가로등이 굽어보는 게 아무것도 신기지 못한 내 발등이거나 나의 정수리 어느 부분 이란 생각에 잠시 멍해졌던 것 같다. 그것은 속까지 다 들킨 부끄러움이었고,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따뜻함이었다. 비록 아래를 굽어보는 가로등의 자세란 게 제 자신의 의지일 리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분명 달빛보다 가까운 위로였다.​​


커피를 한 잔 사 갈까 해서 방향을 틀었던 길이었다그동안 나는 내가 살던 단지에서 두어 번의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지로 한 번 더 이사를 했다. 이 세 번의 이사가 물리적으로 벌려놓은 거리는 고작 1킬로 남짓일 테지만, 시간을 먹은 거리가 항상 그런 식으로 계산되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 놀이터 벤치에 앉아본다. 아이의 엉덩이를 쫓느라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키우며 그만그만하게 쌓이는 고뇌를 수다로 승화시키느라,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여백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은 이렇게 보아야 했다. 저 벤치에 내 우울이나 슬픔을 앉혀두고서 나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닌 양 조금 떨어져 그것들의 앞과 뒤를 살펴야 했다. 그랬다면 그 시절 저렇듯 서서 무던히도 나를 위로했을 저 메타세쿼이아를 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구나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어떤 한 시기를 지나게 될 때는 시선이고 마음이고 어쨌든 표면적을 줄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한순간도 견딜 수 없겠다 싶은 때도 있다는 걸 말이다.

​​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이제 일어서 봐야지.

어느새 바뀌어 있는 보도블록의 모양 같은 걸 확인하며 가로등을 따라 걷는다. 나는 더 이상 두 손에 봉지를 들고 이 길을 걷지 않지만, 내용물이 바뀐 더 많은 봉지를 들고 선 느낌이다. 지금의 내겐 어쩌면 더 많은 가로등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 가로등의 굽어보는 자세 같은,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 별 이유 없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한 시기가 지탱되고 유지되는 것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보도블록이 끝나고 오른편으로 공원을 끼고 도니 저만치에 도서관이 보인다. 동선이 바뀐다고 해서 최종 목적지가 바뀔 수 없다는 걸 시간을 먹은 거리가 알려 준다. 적어도 세월이 충분히 흐른 어느 때, 내가 아직도 `여기`에 있을까 봐 두려운 한때는 지나간 것 같다고. 내 길이었고 언제나 내 길일 그것이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따뜻함으로 여기 함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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