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괜찮은걸까?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5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참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나름 쉰다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사부작사부작 지내면서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바쁘게 무언가를 하며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친척 동생이 죽었다. 마치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간 것처럼, 내가 들어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내 동생 사랑이가 그렇게 가버렸다.
젊은이가 떠나면 3일장을 하지 않는 관례를 지키지 않고, 이모의 바람대로 사랑이를 위해 3일장을 지냈다. 그리고 나는 그 3일 내내 장례식장에 있었다. 때마침 내가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내 동생 사랑이를 떠나보내는 시간으로, 내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정비의 시간으로 그렇게 보낸 것 같다.
프랑스에서 산책하며 드라이브하며 한가로이 지냈던 일상의 그리움이 저 너머의 꿈처럼 느껴질 만큼, 나의 2025년 7월 한 달은 그렇게 뜨겁게 사라졌다.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정리해야 할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하며, 나를 찾는 곳에도 다니면서 그동안 미뤄뒀던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하고, 틈틈이 나와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과도 재회하며 내 선물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름은 가버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가을은 역시 빠르게 지나고 있다. 겨울 냄새가 제법 느껴지는 11월 말이다.
나는 3년 전부터 당해 온(?) 어떤 일로 인해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고, 변호사도 선임하며 팔자에도 없는 형사 고소를 진행해야 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아야 했지만, 나쁜 놈은 벌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선처 없이 고소를 진행하기로 했다. 권선징악은 그래도 믿고 싶었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10년 전 일들도 참 많이 떠올랐다.
그 와중에 가르치는 기회와 일복은 끊이지 않으니,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더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내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세계문화지도사, 심리상담사, 직업적성상담사, 인사총무관리사 자격증도 땄고, 기자 활동도 이어가며 신문에 나의 기사를 계속 싣기도 했으며, 한글학회에도 내 글이 실렸다. 조용히, 그렇지만 강하게, 그렇게 나는 내 길을 이어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바쁜 시간 속에서도 나는 나를 지켜냈고, 내 속도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느꼈던 느릿하고 잔잔한 일상과 한국에서 부딪히며 지나온 바쁜 나날이 묘하게 겹쳐 떠오른다. 지나간 시간들을 정리하며 내 마음을 다독였고, 내 걸음에 의미를 붙이는 일을 나는 쉬지 않고 해 온 것 같다.
그것이 지금 나의 삶에 대한 예의이자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