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örk feat. rosalía - Oral
https://www.youtube.com/watch?v=8jsi2Tgvx6A&pp=ygUKb3JhbCBiam9yaw%3D%3D
이제 몬트리올에 도착한지도 2주 정도 됐는데... 확실히 아직은 적응이 안 된다. 살면서 언어적 장벽에 부딪혀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불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다시피 하는 이 곳에서 불어를 더듬더듬 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도 스스로 적응이 안 되고, 메뉴판에 쓰여 있는 가격을 보고 음식이나 커피를 주문해도 세금과 팁이 붙고 나면 결국 전혀 딴판이 돼버리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점도 적응이 안 되고, 아주 맑았다가 눈이 쏟아졌다가 하는 날씨도 적응이 안 된다. 에어비앤비 뿐만 아니라 며칠전 이사 온 장기 숙소에서마저 다른 사람들과 거실, 화장실 등을 공유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도 적응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부적응의 불안을 제쳐 둔 채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고, 하고 싶은 일들도 있으며, 이미 해낸 일들도 있다. 워홀을 포함해 모든 장/단기 외국인 노동자들의 첫번째 과제인 SIN 발급에서부터 시작해서 집 구하기(이건 정말 얕볼 일이 아니다! 돈 주고 살 방을 구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집 방을 내놓은 사람 역시 계약에 있어서 선택권을 갖는 일이기 때문에), 은행 계좌 열기, 이사하기, 장보기, 도서관 카드 만들기 등등 여러가지 일들을 마쳤고, 수퍼볼 하는 날 아이리시 펍에도 가보고(별로 재미는 없었다) 한국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틈틈이 보고 오기도 했다. Stop Making Sense 보러 가는 날을 정말 기대했는데, 영화 자체를 기대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토킹헤즈 팬인 친구를 좀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거기서도 친구는 못 사귀었다.
앞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그 난이도가 상당하다. 우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아마 밴쿠버나 토론토나 캘거리나 어디든 퀘벡이 아닌 곳이라면 내게 이 과제가 아주 까다롭지는 않았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여기가 퀘벡이라는 사실이며, 나아가서 내가 퀘벡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까다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지역 선택을 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상황이 내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그 불리한 점을 내가 다 알고 왔기 때문에 다른 누굴 원망하거나 그럴 수 없다는 뜻이다.
억지로라도 이 상황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보자면,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것이 내 의지였고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들도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 아닐까. 이른바 '번듯한' 사무직 일자리나 커리어를 찾기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도 내 계획 밖이었고, 오히려 사무직과 가장 거리가 먼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디시 워셔, 프렙 쿡, 또... 아무튼 그런 일. 실제로 프렙 쿡 공고들 몇 개에 이력서를 냈는데 아직 어디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어쨌든 불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로서는 몬트리올 기반 회사 사무직이라든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접객하는 일 같은 것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나는 이 사실에 맞는 커리어 선택을 해야만 한다.
반면 하고 싶은 일들은 많다. 연기 수업 듣기, 뉴욕으로 여행 가기, 3월에 있을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경기 직관하기, 여름에 있을 F1 캐나다 그랑프리 직관하기, 가을-겨울에 있을 스케이트 캐나다 직관하기(근데 이건 몬트리올에서 안 할 수도 있다), TIFF 구경가기(이건 확실히 몬트리올에서 안한다) 등등... 모두 기대되는 일들이지만 동시에 돈이 꽤 드는 일들이다. 그러니까 위에 쓴 내가 해내야 하는 일 - 일자리 구하기! - 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필요조건'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가지고 온 예산을 다 털어서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귀국해버리려고 내가 여기에 온 게 아니니까.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네이버에서는 '워홀 포기', '워홀 귀국' 같은 걸 검색해봤고 레딧에서는 '워홀 중 뭐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외국으로 옮겨온 지 열흘' 같은 걸 검색해보고 있었다. 나의 출중한 검색 능력 덕인지 세상에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 같은 막막함과 불안을 느끼는/느꼈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는 일찍이 귀국하는 걸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열흘을 넘어 2주, 세 달, 그 이상을 새로운 도시에서 살고도 막막함을 떨치지 못하기도 한다. 나라고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그 엄청나게 많은 블로그 글들과 레딧 포스트를 읽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적어도 지금 당장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어쨌든 지금은 해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보다 하고싶은 일들을 꼭 해 보고싶다는 욕구가 더 크기도 하고... 아직 푸틴Poutine을 못 먹어보기도 했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아직 첫 걸음도 제대로 떼 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 앞으로 몇 발자국만 가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그렇다. 정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예감은 작년부터 가끔씩 나를 사로잡고 있다. 몇 번이나 겪은 데자뷰déjà vu들, 까다로운 상황에서의 근거 모를 자신감, 뭔가가 막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 내가 내리는 결정들과 내가 처하는 상황들이 어쩐지 다 어떤 운명에 이끌려서 내 손에 쥐어지는 것 같다는 예감. 어떤 아이리시맨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무리하자면: "Instinct, instinct, instinct - over intelligence. Just because you can rationalize it doesn't mean it's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