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작가초아 Mar 13. 2024

어린이집 울타리 박살 낸 날

오늘따라 재수 없군 vs 이만하길 다행이야

# 겨울방학에 생긴 일


  지난겨울방학에 생긴 일이다.

딸아이는 이제 다섯 살 푸른 나무반.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소금산 출렁다리로 유명한 간현 유원지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빽빽한 아파트 숲 속 어린이집보다는 탁 트인 자연환경이 아이에게도 더 좋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딸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러 차에 올랐다.

집에서 4킬로 남짓 되는 도로를 운전해서 8분 정도 꼬불길을 달려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어린이집 건물 바로 앞에는 차 3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그 앞에는 놀이터가 있다. 늘 그곳에 잠깐 차를 세우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문 앞의 초인종을 누르면 선생님이 나오셔서 아이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신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차에서 내렸는데, 맙소사서울 가는 ktx 시간이 촉박했던 나는 급한 마음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운전석 문이 열린 채 차가 앞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이런!!! 아가야!!!"


  얼른 차에 올라타서 기아를 Parking으로 바꿔놔야 한다. 

그날따라 하필 평소에 잘 안 입던 치마에 새로 산 롱부츠까지 신고 나왔던 게 문제였을까? 차는 분명 천천히 가는데 나의 모든 운동 능력을 다 발휘해도 타지지가 않는다. 딸아이를 태우고 유유히 앞으로 가는 차가 주차장 방지턱을 넘어 대문 앞까지 갔다.


'쾅!!!' 


굉음과 함께 액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연출되었다. 대문을 박살 내었는데도 차는 도무지 멈출 생각이 없다. 대문에서 2미터쯤만 더 가면 아이들 놀이터다.


'놀이터는 안돼. 제발 좀...'

 

나는 모든 운동신경을 발휘하여 필사적으로 차에 올라 타 놀이터 바로 앞에서 간신히 파킹에 성공했다! 1~2초만 늦었어도 차가 놀이터 미끄럼틀까지 밀고 들어갔을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소미야 괜찮아?"

 

차를 놀이터 코 앞에서 겨우 멈춰 세운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후우..."


# 원장님과의 대화


  다시 후진을 하여 주차장 제자리에 차를 놓았다. 

놀이터로 들어가는 커다란 흰색 어린이집 대문이 속절없이 박살 나버린 사건 현장을 직접 본 건 CCTV 뿐이었다. 다행히 차는 매우 천천히 움직였기에 아이에게 타격이 갈 만큼의 충격은 없었다. 다만, 엄마가 너무나 당황한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을 뿐. 차에서 내려 어린이집 벨을 누르려던 찰나, 원장님이 출근길에 박살 나버린 대문 앞에 놀란 표정으로 멈춰 섰다.


나 : "원장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실수로 기아를 Drive에 놓고 차에서 급히 내리다가..."


원장님 : "어머! 세상에. 어머니 다친 데는 없으세요?"


먼저 나의 안위를 물어봐주시는 원장님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


원장님 : "사실 비슷한 사고가 한 번 있었어요. 그래도 놀이터까지 밀고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작년에 아이 할머니께서 놀이터까지 다 밀고 나가서 6개월 걸려서 놀이터 공사했거든요 어머니."


나 : "아, 저는 놀이터 리모델링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어요."


원장님 : "암튼 아이들 바깥 놀이 시간에 사고 난 게 아니라 천만다행이에요. 다솜이랑 어머니도 다친 곳은 없는 거지요? 너무 걱정 마세요. 대문은 수리하면 되니까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원장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정말 그랬다. 혹여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기라도 했다면? 평지가 아니라 내리막이었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번 일로 나는 차에서 내릴 때마다
기아를 한번 더 확인할 것이고,
이 습관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더 큰 사고를 막을 수도 있겠구나.


컵에 물이 반 컵 담겨있을 때,

반 밖에 없잖아 vs 반이나 남아있네


차 사고가 났을 때,

오늘따라 재수 없군 vs 이만하길 다행이야


힘든 일 앞에 서 있을 때,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 vs 이 일로 난 더 강해질 거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현재의 삶'은 지금까지 해 왔던 '수많은 선택의 결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만들어 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살다 보니 인생은 누구나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꽃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고난과 역경은 의지와 바람만으로 나를 피해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어떤 비바람이 내 인생에 몰아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어떤 비바람에도 쉬이 쓰러지지 않도록, 튼튼한 우산을 준비해야겠다. 


게시하자마자 발등이 다 까져 신지 못하게 된 롱부츠를 쓰레기통에 넣으며 생각한다.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별 일 아닌 듯 초연하게 넘길 수 있는 한 마디, 오늘부터 연습해야겠다.

이만하길 다행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