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온도
이별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끝마다 남아 있는 미련과 습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 우리 사이를 더 깊게 가르고 있었다. 사랑의 끝은 언제나 말이 아니라 기척으로 온다. 눈빛이 먼저 식고, 손끝이 먼저 떨어지고, 그다음이 말이다.
종종 이별을 ‘계절의 이동’에 비유하곤 한다.
어느 날 아침, 창문을 열었는데 공기가 바뀌어 있는 것처럼. 어제까지는 여름이었는데, 오늘은 문득 가을이 되어 있는 그런 순간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떠나보내야 하는 결심도 그렇게 온다. 이유를 찾으면 늦고, 잡으려 하면 이미 사라져 있다.
이별 후의 시간은 낯설게 길다.
익숙했던 목소리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세상의 소음이 다르게 들린다. 웃음소리도, 바람도, 심지어 내 발소리조차.
'이제 어떻게 살 거냐'라고 나에게 묻는다. 그 질문 앞에서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다시 나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우리는 사랑 속에서 상대에게 조금씩 자신을 나누고, 결국 그 일부를 돌려받지 못한 채 떠나보낸다. 그러니 이별은 나를 잃었던 시간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없이 나를 다시 기억해 내는 일.
이별의 끝에는 공기가 다르게 흐른다.
처음에는 차갑고, 그다음엔 서늘하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서늘함이 투명해진다. 그제야 알게 된다. 이별의 온도는 차가움이 아니라 맑음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한 사람의 기억을 보내고 나면, 마음 한편에 작은 창이 생긴다. 그 창으로 계절이 드나들고, 그 창문턱에 먼지처럼 쌓인 시간들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이별은 결국 우리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