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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레오in절머니 Apr 07. 2024

독일에서 첫 월급을 받았다.

기쁨과 걱정, 그 사이 경계 어딘가.

다시 생각해 보면 대책 없고 무모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달 월세와 생활비 1300유로만 가지고 한국을 떠났다. 한 달 뒤면 월급을 받으니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했던 행동이었다. 그 한 달이 가까워지자 돈이 점점 바닥나버렸고 월급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 경제적 자립을 해보겠노라 결심한 적이 있다. 부모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과외를 해가며 생활비를 마련해 대학가 근처 월세 방에서 자취를 했었다. 한 번은 어떤 이유였는지 몰라도 과외비가 들어오기 전에 월세를 내야 했는데, 단돈 5만원이 부족해서 친구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본 적이 없어서 빨리 갚고 싶은 마음에 과외비 입금이 정말 간절했었는데, 그때와 같은 간절함이었다.


한국에서는 월급날이 보통 매월 10일 또는 25일인 반면, 독일에서는 월급날을 지정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월급날이 어느 한 날짜로 정해지지 않았다. 근로계약서에도 월말 (at the end of each calendar month)로 명시되어 있을 뿐 날짜가 고정되지 않았다. 한 번은 동료에게 월급날이 보통 언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동료말로는 보통 25~26일 사이에 월급이 들어온다고 했다. 월급이 간절했던 나는 25일 오전부터 월급이 들어왔는지 체크를 했다.


안 들어왔다.

'뭐 그럴 수 있지'라 생각하며 오후에 한 번 더 확인했다.

역시나 안 들어왔다.

한국에 계시는 엄마가 톡을 보내왔다.

'월급은 들어왔니^^?'
'아니 아직..ㅎㅎ 내일은 들어오겠지~'


내 월급날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25일인 줄 아셨던 엄마는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아들이 월급을 제때 받았는지, 회사가 월급을 떼먹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셨는지 하루마다 물어보셨다. 26일에도 몇 번씩이나 계좌를 확인했지만 내 계좌의 잔고는 변함이 없었다. 점점 불안한 예감이 찾아왔다. 다시 한번 근로계약서를 보며 'at the end of each calendar month' 구절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직 3월은 3일이나 남았잖아..!'


다음날, 이젠 출근 전 계좌확인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는 폰을 열어 계좌를 확인했다. 좀 전에 확인했던 계좌 잔고보다 0이 두 개가 더 늘어났다. 월급을 확인한 내가 가장 처음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엄마 나 월급 받았어!'


당장 폰을 열어 엄마를 안심시킨다.

'축하 축하 ㅎㅎ. 몇 냥이나 되는고?'
'한국에서 받았던 돈이랑 비슷해.. ㅎ'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받았던 월급보다 독일에서 받는 월급이 더 적다. 그러니까 연봉을 깎아서 이직을 했다. 이직을 할 때 통상적으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를 해버린 것이다. 깎아도 많이 깎았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보통 입사 후 6개월 간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나는 수습기간 동안 계약 연봉보다 10% 정도 덜 받는다. 원, 유로 환율(24년 3월 말 기준 1,455원으로 5년 최고치를 향해 가는 중)이 많이 올라 예상 월급보다 살짝 많아진 것에 위안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한 선택이고 지금까지는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월급이 더 적은 만큼 더 적게 쓰고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더 강해질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첫 출근 전에 내 나름대로의 단기 미션을 세워봤다. 6개월의 수습기간 중 초기 3개월 동안 성과를 만들어내서 수습기간을 적게는 한 달 많게는 두 달 이상 단축시킬 것.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미션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는 걸까.



모두가 극혐 하는 사내 IT 시스템을 정말 빨리 습득한다고 팀 리더에게 칭찬을 받았다.

팀 동료와 인사 담당자는 내가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아직 배워야 할게 많이 남았지만, 나 스스로도 점점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익숙해질 때가 가장 무서운 법. 익숙해지면 점점 대충 하게 되고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직 수습기간을 단축시킬 만한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만들지는 못했다. 아직 두 달 남았다. 두 달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줘야지.




독일에서 일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한국에서의 첫 직장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출근 첫 한 달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한 달 동안 일도 열심히 배우고, 3년 전 독일 교환학생 시절 언어교환했던 친구를 만나서 재밌게 얘기도 나누고, 집 근처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도 시작하고, 함부르크 근처 소도시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마침내 첫 월급을 받게 되었다.


기쁨과 걱정, 그 사이 경계 어딘가. 독일에서의 첫 월급을 받고 내가 느낀 감정이다. 그토록 바라던 해외취업에 성공하느라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준 선물인 것 같아 기뻤고, 타지에서 앞으로 매일매일 나를 증명해나가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걱정이 됐다. 이 두 감정은 해외생활에 익숙해져 가며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니 이 감정들을 이 순간 많이 즐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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