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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Feb 27. 2024

미술은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예쁜 쓰레기 매립지가 되어가는 우리 집 거실


“Betray? 엄마, 이거 무슨 뜻이야? “


“ ’배신하다‘라는 뜻이야. 믿었던 누군가가 믿음을 저버리고 몰래 나쁜 행동을 하는 거지. “


“아, 엄마가 전에 몰래 내 미술 작품 버린 것처럼? “


헐.


아이와 영어 공부를 하던 중, 배신의 뜻을 가르쳐주자 배신은 곧 엄마가 자기 미술작품을 몰래 버렸을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라고 되풀이해 준다.


얼마 전 아이 몰래 재활용봉투에 아이가 만들어온 미술 작품 몇 개를 넣어두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봉투 안에서 반쯤 망가진 자기 작품을 마주한 것이다. 아이는 30분 넘게 길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저렇게 달래긴 했는데 아이 마음속엔 그게 깊이 박혔던 것 같다. 아니 배신의 뜻을 어떻게 엄마가 한 행동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지, 아이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그날의 말은 나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가사일을 담당하는 엄마에게도 최소한의 변이 있다.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은 저학년을 대상으로 만들기와 미술을 같이 하고 있다. 소수 정예로 그날의  주제를 정해, 종이와 물감 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로 입체적인 미술작품을 구현해 내는데, 그 방식이 상당히 창의적이고 만드는 결과물도 꽤 그럴듯해 아이도 나도 만족하며 보내고 있다. 자기가 봐도 꽤 멋져 보이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한지 아이도 미술학원에 있는 한 시간 반을 꼭 삼십 분 같이 짧게 느껴진다며 너무 재밌게 다니고 있다.


그런데 미술학원을 3년째 보내다 보니, 보관해야 할 작품이 너무 많다.

쿠사마 야요이의 거울의 방 오브제를 입체로 만들어 오거나 A4 용지 두세 개 붙인 크기의 정방형 입체에 지점토나 무언가를 섞어서 가지고 오는데 텍스쳐가 커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참 만족스럽다. 그러나 보관이 어렵다. 책 욕심이 많은 엄마 탓에 책으로 가득 찬 좁은 집에 미술 작품은 텔레비전 옆, 거실 스피커 위, 김치냉장고 위 심지어는 식탁 위에도 올라가 있다. 아이에게 이제 그만 정리할까 하고 물어보면 답은 보나 마나  NO, NEVER! 다.


나는 이런 것들을 한 2주 정도만 갖고 있다가 처분하고 싶은데, 아이는 평~생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이가 기억이 흐릿해져 갈 때쯤 몰래 한두 개씩 버리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러다가 그 사달이 난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아끼는 걸 몰래 버려. “


“아들 미안해. 엄마 어떻게 하면 용서해 줄래?”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평생 기억할 거야.”


자기가 아끼는 미술작품을 버린 엄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아들. 아꼈다고는 하지만 먼지가 쌓여도, 그게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기에 엄마는 그 아꼈다는 말이 신빙성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가 엄마한테 배신감까지 느꼈다니, 당분간은 아이가 만든 물건들을 4주 정도 보관했다가 아무도 모를 때 몰래 버려야겠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은 얇게 포개서 스크립트 파일에라도 끼워 넣지, 저 무지막지한 입체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산타할아버지의 요술 주머니 같은 게 있어서 무한대로 넣어둘 수 있는 보관 창고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다시 꺼내볼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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