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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Feb 29. 2024

방학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

아이 방학이 좋은 이상한 엄마


아이를 낳으면 진짜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요즘 출산율을 보면 이러다 정말 대한민국이 자연 소멸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그건 정말 오해인데.


다들 아이 방학이 무섭다고 한다. 급식 없이 삼시세끼 밥을 어떻게 해 먹일까부터 시작해서 종일 아이와 붙어 있으면 사소한 것부터 잔소리를 하게 되고, 쌓여가는 집안일에 애들끼리 싸우기라도 하면 엄마 멘탈이 와르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라고.


그런데 아이와 평소 사이가 좋은, 특히 외동인 우리 집은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방학이 제일 좋다. 학원숙제를 미리 할 수 있는 오전 시간이 확보되고, 시간의 여유가 많아 아이를 덜 보챌 수 있고, 나 혼자 대충 해치우던 삼시 세끼를 외롭지 않게 아이와 같이 먹을 수 있어서 더 좋다.


사실 같은 하나의 현상에 대해 나만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자식이니 말이다. 아이가 언제까지 엄마랑 둘이 밥을 먹는 걸 좋아해 줄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얼마 남지 않은, 언젠가는 끝나게 될 지나가는 추억이다.


나는 아이와 일어나면 무조건 씻고, 예쁘게 꾸민 뒤 차를 끌고 집 앞 도서관에 간다.


우리 집 근처의 작은 도서관은 워낙 소규모라 주차비가 없고 아파트에 둘러 쌓여 있어 보통 집에서 도보로 오는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주차가 자유롭다.  또 보통 책을 열 권 이상씩 빌려오기 때문에 무거운 책을 들다 허리디스크가 도질 것 같아 아무리 가까워도 차를 갖고 다니게 됐다. 아침에 화장을 하고 나 자신을 정갈하게 꾸미고 나가면 스스로 자신감도 붙고, 내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가 짧은 드라이브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다. 여기에 아이와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한곡 곁들이면 완벽한 나들이(?)가 된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두 시간 정도 아이와 함께 책을 보거나 밀린 숙제를 한다. 숙제를 30분 정도 하다가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을 골라 읽도록 해준다. 어릴 적부터 아이와 끈질기게 노력해 왔던 책육아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한다. 도서관에 가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르게 하면 아주 좋아서 방방 뛴다. 숙제 30분과 10분의 자유 독서시간을 두세 번 반복하면 아이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도서관 데이트가 끝난다. 아이가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는 동안은 나도 자유의 몸이 되어 내가 읽고 싶은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스마트폰을 하기도 한다.


아이와 공부를 하게 되면 종종 제대로 문제를 풀지 못하거나 빈둥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화가 날 때도 있는데, 도서관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가서 사회적 시선 안에 나를 노출시키게 되면 신기하게 화가 안 난다. 나를 한껏 꾸미고 난 뒤라 기분이 좋기도 하고, 집 안에서 있을 때보다 멋지고 쿨한 엄마인 것처럼 보이고 싶은 나의 이상한 욕망이 삐져나온다. 의도는 불순하지만 결과적으로 멋진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를 대하며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오고 간다면 이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오전 공부 시간을 보내고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맛있는 점심을 만들고, 그동안 아이는 빌려온 책을 읽고, 또 서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 학원에 간다.


가끔은 아이와 데이트 겸 식당에도 간다. 이제 아이가 제법 커서 식당에서 2인분을 시킬 수 있고, 좋아하는 책 한 권만 쥐어주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운 독서시간이 된다. 오늘은 아이와 애슐리에 갔다. 평일 런치라 가격도 3만 원 초반으로 두 사람이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방학 중엔 패밀리 레스토랑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더 좋다.


“오늘 엄마랑 함께하는 방학 마지막 평일인데, 엄마랑 애슐리 갈까?”


“와, 정말? 엄마 세상에서 제일 최고야!”


3만 원에 세상 최고 엄마가 된 날. 아이는 뷔페가 그렇게 좋은가보다. 수많은 음식을 자기가 직접 골라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달콤한 디저트와 아이스크림, 무엇보다 초코 분수까지 있으니 말이다. 같이 셀카도 찍고 서로의 접시에 뭐 담아왔는지 이야기하며 맛있는 점심을 먹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요즘 미혼의 젊은이들은 미디어에 나오는 지옥 같은 육아와 결혼생활을 보고 그게 전부인 줄 아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정말 초극단의 경우고 그러니까 쇼프로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은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결혼과 육아를 통해 나 자신이 그 이전보다 백배,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졌다. 특히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는 신이 주신 선물같이 느껴진다. 쓰다 보니 너무 자랑글 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나와 우리 아이의 평범하고 진실된 일상의 모습이다. 이렇게 행복하게 아이와 함께 사는 전업 엄마도 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우리나라는 돈에 대한 행복을 전시하는 것은 플렉스라고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전업주부의 삶은 왠지 짠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의 플렉스는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뻔한 말이지만 사실 사랑으로 인생은 진짜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아이에게 들인 노력과 사랑. 그것은 무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10년, 아니 딱 3년만 지나도 아이가 더 큰 사랑과 귀여움으로 열 배, 스무 배씩 다시 돌려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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