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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Mar 04. 2024

분노 조절 방법 1

비열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100000000’ 숫자 세는 법을 공부하던 주말 오후.


“자, 여기서 순서대로 세는 거야. 동그라미가 몇 개지?”


“8개요.”


“동그라미가 8개가 붙어있으면 4개씩 끊어서 세면 돼. 그러면 이건?


“이건 ‘1억’이라고 읽어요. “


“ 잘했어. 그럼 ‘800000000’는 어떻게 읽지? “


“8조.”


“…….”


이럴 때마다 아이의 지능이 의심되고, 이건 단순한 숫자 세기인데. 수학이라기보단 산수, 아니 국어에 가깝지 않은가?!?! 과연 이 소통되지 않는 수학 실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남편 머리인가 내 머리인가, 너 진짜 내 자식이 맞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자 인증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이를 직접 가르쳤을 때 화가 나냐 안 나냐라던 데, 분노가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요즘 너는 과연 내 혈육이  맞구나.


나 어릴 적 우리 집은 수학 점수에 굉장히 엄격했다.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못 타면 큰일이 남은 물론이고, 수학에서 문제 하나를 틀렸다 하면 우리 집은 비상이었다. 외부 수학경시대회에서 죽을 쑨 성적표가 도착한 어느 날,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 돌아와 남동생이 먹다 남긴 식은 치킨을 겨우 먹고 있는데, 아빠가 경멸에 가까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너는 지금 그게 목에 넘어가냐.”


라고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사실 이런 적은 너무나도 많아서 셀 수가 없다. 엄마와 아빠는 사는 게 지쳐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적도 거의 없고, 특히나 성적이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사람대접받기 힘든 집안 분위기였기 때문에, 공부를 못했을 때 부모에게 받는 냉랭한 대접이 얼마나 가슴 시리도록 차가우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는 마음의 생채기가 되는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을 낳으면 절대 공부로 뭐라고 하지 않아야지 다짐을 수도 없이 했는데, 그게 막상 쉽지가 않다. 아이가 방금 가르쳐 준 것을 1초 만에 까먹을 때, 단순한 적용을 하지 못할 때, 숫자를 제대로 세지 못할 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다 어른인 나의 눈으로 봤을 때 부족한 것이고, 상위권 아이들과의 비교에서 떨어지는 것이지 절대 아이 자체가 덜떨어진 것은 아니라 믿지만, 막상 그 어리버리한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노라면 치솟는 짜증과 화를 어찌할지 모르겠다.


요즘 이래저래 많이 비판받는 오은영 선생님이시지만, 어릴 적 내 육아에 많은 도움을 받은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책에서 읽은 잊지 못하는 구절이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그 아이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 분을 약한 존재에게 푸는 비열하고 치사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우리가 화가 난다고 그 화를 아무에게나 풀지 않는다. 지나가는 100kg의 근육질 거구의 남자에게 화난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지만, 나약하고 힘없어 보이는 어린 사람, 여자나 노인 혹은 아이에게 그 분노가 향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굳이 신문 사회면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출퇴근길 지하철만 봐도 일어나는 너무나도 흔한 광경이다.


인간은 원래 이토록 비열한 존재다. 그렇지만 그 비열함을 자기 자식에게 나타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 비열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에게 나처럼 대한다면. 나는 얼마나 화가 나고 무서울까. “


요즘 내가 화가 날 때 마음속으로 외치는 주문이다. 부모와 어린 자식 간의 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논리적으로도,도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아이는 절대 성인인 부모를 이길 수 없다. 엄마 아빠가 화를 낼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가만히 조용히 그 화를 받아내는 것밖에 외에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배우는 것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뉘우침이 아닌 무기력감과 공포, 혹은 비굴함 그뿐이다.



나는 아이가 눈치를 보며 비굴한 인간으로 크길 바라지 않는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순간의 욱을 참지 못하는 완전한 ‘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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