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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Mar 13. 2024

설거지 해방의 날

모든 가사일이 없어지면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엄마는 엄마만 하세요.’ - 조선미 선생님


지금껏 8년간 내가 엄마가 되어 마주치는 가장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을 때였다.


설거지가 쌓여있고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아이가 자기 옆에만 있어달라고 하거나, 방금 빨래를 마쳤는데 아이가 우유를 자기 옷과 바닥에 쏟았을 때, 세탁기가 고장 났는데 자다가 이불에 토를 해서 욕조에 물을 담가놓고 발빨래를 해야 했을 때 등등. 남편이 옆에 있기라도 하면 좀 나은데, 대부분 아이가 어릴 때는 남편도 한창 바쁠 시기인지라 대부분 저런 난감한 상황은 오로지 나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일단 나는 멘탈이 나간다. 이렇게 사고를 치는 아이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대부분 내 입에선 이런 말들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엄마가 그러니까 하지 말랬잖아.”

 

엄마가 직전에 날린 서너 번의 경고는 마치 귀 옆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처럼 아이의 뇌에 입력되지 않았고, 내가 생각한 딱 그만큼의 사고 혹은 그 이상이 터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은 일이 달랐다. 여전히 남편은 회사일로 아예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었고, 점심은 급식으로, 저녁도 밖에서 사 온 샌드위치로, 온 가족이 설거지거리를 만들지 않은 드문 날의 저녁이었다. 설거지통이 텅 빈 것이다. 아이의 급식 수저와 물통만을 씻으며,


‘오늘은 일이 하나도 없네? 이렇게 편할 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숙제를 버벅거려도, 샤워실에서 30분 넘게 씻으며 늑장을 부려도, 빨래를 뒤집어서 공중에 뿌려도 화가 나지 않았다. 고작 설거지 하나 없다고 마음이 이렇게 평안해지다니. 매일 설거지가 없다면 나는 얼마나 착하고 자애로운 엄마가 될까 라는 생각이 스치자, 또 한편으로는 그까짓 설거지, 그까짓 집안일 하나로 죄도 없는 애한테 왜 그리 짜증을 냈을까 라는 후회도 앞섰다.


내려놓기의 마음. 집안이 조금 아니 많이 어질러도 괜찮다. 집이 좀 어질러져 있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그 괜한 조바심 때문에 아이와의 따뜻한 눈 맞춤, 가벼운 장난과 스몰토크, 서로 사랑한다 말하기를 놓친다면 그야말로 너무도 큰 손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내일도 이 마음이 지켜질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집안일 때문에 아이에게 짜증 내는 일은 조금 더 줄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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