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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Feb 24. 2024

조건부 사랑

언젠가 혼자 설 너를 위한 마음의 준비



임신 중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이라는 책을 읽다가 내 머리를 꽝 내려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아이가 세 살 때까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이가 사춘기에는 한발 멀어지는 사랑을,

성인이 되면 정을 딱 끊어내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빠와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났다. 할머니도 이걸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알아도 외면하셨을 분이다. 할머니는 아빠가 돌도 되기 전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우며 억척스러운 세월을 살아내셨는데, 일생을 둘째 아들인 우리 아빠와 함께 살며 아들에 대한 사랑인지 집착인지로 며느리를 지독히도 괴롭히며 우리 집을 지옥으로 만드셨다. 그 지난하고 교묘한 싸움판(이라고 하기엔 어린 우리 엄마가 일방적으로 당했지만)에 진절머리가 난 아빠는 술로 마음을 달래며 세상에 대한 울화와 분노를 무작위로 토해냈고 그걸 감당해야 했던 건 약하고 힘없는 자식들이었다.


십 년 전 갑작스레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빠가 지금도 무척 그립지만,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산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난 지금도 깊은 뱃속에서부터 곯고 썩어버린 분의 냄새가 올라온다. 아마 나의 이 미숙하고 신경질적인 감정의 기원은 이것이라 늘 짐작해 왔다.


나는 이런 인생의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아들을 낳고 나도 시어머니가 될 마당에 내 아들이 우리 아빠 같은 삶을 살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것을 눈앞에서 똑똑히 목도했던 첫딸이었기 때문에 가정이 지옥이 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인생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법륜스님은 이런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주셨다. 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사랑 혹은 에너지의 총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에게 줄 사랑의 양이 정해져있다면 뒤늦게 주지 말고 필요할 때 주자. 아이가 원할 때 충분히 주고 아이가 크면 미련없이 서로의 갈길을 가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는 내가 갖고 있던 직장, 커리어 다 내려놓고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했다. 주변의 친구들도 네가 그렇게 미련 없이 다 떠날 줄 몰랐다고, 그렇게 열심히 아이를 키울 줄 몰랐다며 놀라워한다. 14개월간 모유수유를 하고, 이유식을 모두 직접 만들어 먹이고, 만 3년간 가정 보육을 하며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았다. 그렇게 실컷 사랑을 하고 나니 내가 아이에게 뭘 못해줘서 아쉽거나 미안하다는 감정은 정말 1도 들지 않는다. 후회 없이 아이를 사랑했으니 미련이 없다.


이제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에게 한발 더 물러서 있다가 스무 살이 넘으면 온전한 성인으로 이 사회에 두 발 스스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스무 살 이후에는 모든 선택이 아이의 몫이다. 내가 간섭해서도 안되고 간섭하면 오히려 망치는 길이다.


그래서 아이가 어린 지금, 아이에게 무한의 사랑을 주고 있는 중이다. 나도 아이도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없이 사랑에 풍요롭고 사랑에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이렇게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면 살면서 다가오는 시련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마음껏 사랑을 줄 수 있는 이 시간을 만끽하며 후에 다가올 물러섬에 대비하고 있다.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해 지금 실컷 사랑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차근차근 오랜기간 준비된 이별은 만남만큼이나 값지고 소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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