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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별 Feb 26. 2024

칭찬은 누구를 춤추게 하는가

일곱 살 아들이나, 서른일곱 살 엄마나


“어우, 잘했어. 정말 잘했어!”


아이가 숙제를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아이의 마음에 쏙 드는 구체적인 칭찬을 해줄까이다. 설명을 자세히 정확하게 하는 것은 선생님과 문제집 집필진의 몫이고,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나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력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게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껏 그 방법은 모두 효과가 있었다. 아이는 나름 우리 동네에서 제일 수준 높은 대형 프랜차이즈 영어와 수학 학원에서 탑반에 다니고 있고, 국어와 한자도 동학년 대비 꽤 높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자의 경우, 전국 5등 안에 들어 구몬에서 문화상품권을 탄 적도 있다.


공부를 하려면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마음이 힘들면 아무리 쉬운 것도 하기 싫다. 의자에 앉아있기도 싫다. 그런데 아이에게 엄마의 칭찬이 발휘하는 힘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가 가장 막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아이에게 엄마가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너무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방금 가르쳐 준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엄마가 애써 설명할 때 딴짓을 하며 불손한 태도를 보일 때면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그럴 때일수록 아주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아서 아이의 장점을 언급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 내 마음에서 들끓던 화딱지도 금세 가라앉는다.


“와, 아니 여기서 이걸 어떻게 발견해 냈지? ㅇㅇ이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겠구나? 대견한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뭐라도 하나 잘했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어라? 내가 잘하고 있었구나?’하며 아이도 스스로를 잘하는 아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잘하는 아이처럼 행동하게 된다. 나와 아들은 이런 칭찬의 선순환의 고리를 잘 타고 있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남편은 칭찬의 언어학에 소질이 없다. 대표적으로 내가 애써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요리를 식탁에 올려두면, 거의 항상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한다. 심지어 ‘잘 먹겠다’는 이야기도 없이 숟가락부터 들 때도 많다. 참으로 맥이 풀리는 순간이다.


 우리 친정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을 때, 음식에 대한 좋은 점을 서로 이야기한다. 엄마가 만든 숙주 나물이 참 아삭하다던가, 언니가 만들었던 크림스파게티는 소스가 참 부드러웠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스몰 토크를 하면서 식사를 하면  먹는 사람도 맛있고, 음식을 만든 사람도 보람이 있어서 식사 자리가 항상 즐겁다. 그런데 시댁은 식사 시간에 딱 차려진 밥만 먹는 분위기다. 처음 시집와서 제일 어색했던 것이 식사 자리였다. 아버님께서 전형적인 경상도 어른이시라 그런지 근엄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뭐가 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가풍의 차이다. 그러나 같은 날 친정과 시댁에서 한 번씩 식사를 하게 되는 명절날에는 그 차이가 아주 극명하다. 명절 당일 아침 시댁에서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한데, 친정은 음식이 맛있고, 누가 이전보다 예쁘고 잘생겨졌다거나 살이 빠진 것 같다거나 하며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여하튼, 이런 자라온 환경의 차이로 나는 식사시간에 즐거운 이야기를 하하 호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 신랑은 음식을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식량 섭취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애써 한 요리들에 대한 빈말이라도 칭찬의 언급은 절대 안 한다. 내가 ‘오빠 맛있어? 맛있어?‘하고 물어보면 그제야 떫떠름한 표정으로 ’응. 맛있네.’ 하면 끝이다.


덕택에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요리에 흥미를 서서히 잃어가던 중, 갓 태어난 우리 집 아가가 서툰 말솜씨로 나에게 맛표현을 해주기 시작한다.


“우와, 엄마 이거 뭐야? 진짜 맛있다. “


“아 이게 우엉이라는 거야? 맛있다 우엉우엉”


“엄마가 만든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아이가 해주는 칭찬이 이다지도 달콤할 줄이야. 어쩌면 내가 칭찬으로 아이의 숙제 시간을 교묘히 조종하는 것처럼, 아이도 자기가 원하는 메뉴를 위해 엄마를 조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어떤가. 서로가 윈윈 하는 행복한 술수라면 그를 받아줄 용의 또한 언제나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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