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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ul 31. 2023

안녕, 미나짱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이별의 순간

같은 팀의 이탈리아인 친구랑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은 날이었다. 그 친구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 출신으로 콜롬비아에서 쭉 살다가 석사를 하러 밀라노로 왔고 인턴을 하러 파리로 오게 되며 알게 된 친구다. 서로 어떻게 파리에 오게 됐고,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어떤지,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은 다른 나라가 있는지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이탈리아인 친구가 파리에서 석사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파리의 삶이 그리워서 다시 파리로 왔으며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파리에 왔다가 또 파리를 떠나는, 그리고 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파리에서 오래 함께 지냈지만 조만간 고국으로 돌아갈 친구 생각이 났고, 그 친구로 인해 쓸쓸해진 마음에 대해 토로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이랬다.


‘내 친구가 그랬는데, 파리는 항구 같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배가 드나드는 항구. 배가 잠깐 머물거나 오래오래 떠나는 항구. 어떤 사람은 파리에 오래 남고 어떤 사람들은 잠깐 머물고 떠나.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오고, 또 떠나는 것을 지켜봐.’



나의 프랑스 생활은 프랑스어 어학연수를 하며 시작됐다. 그리고 첫 어학원에서 미나라는 일본인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프랑스어가 어눌하던 시절부터 더듬더듬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미나는 조용하고 조심스러웠지만 또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우리의 성격은 매우 달랐지만 서로를 보완하기에 충분했고 취향은 또 매우 비슷해서 주말 내내 피크닉을 하거나 전시를 보며 파리를 누볐다. 우리 둘 다 파리에 갓 온 상태다 보니(그녀가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왔지만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난 게 프랑스에서 산지 고작 3주 정도가 됐을 무렵이었다) 작은 것에도 기뻐했고 온 마음으로 파리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 온도가 너무 비슷해서 우리가 더 친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파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리는 파리에 남기로 결정했다. 나는 비즈니스 스쿨, 그녀는 미술사 전공으로 석사 지원을 했고 둘 다 원하는 대로 파리에 남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코로나로 어지러운 시절에도, 각자의 학교 생활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리고 각자 고향으로 떠났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꾸준히 연락했고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 때가 되면 같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처음 가 본 남부 프랑스에서도, 그리스 미코노스에서도, 이탈리아 시칠리에서도, 우리는 함께였다. 서로에게 친구가 각자뿐이던 시절을 지나 경영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시작을 함께 한 친구, 미나만이 주는 안정감은 특별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미나는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있는 존재였고 여전히 그녀를 만나야만 불안하고 위태롭던 마음을 조금은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좁아지고 편협해지는 나의 바운더리를 넓혀주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던 그녀였다.


그렇게 5년이 지나니, 우리 둘 모두에게 마침표를 찍어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미나는 6월에 석사 논문을 마쳤고 나는 7월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는 첫 일자리를 구하면 파리에서 같이 아파트를 구해서 살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구직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그녀가 논문을 끝내고 오랜만에 함께 10킬로 마라톤을 뛰러 만난 날, 그녀는 여름이 지나면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목표였던 석사를 마치고 나니 더 이상 프랑스 살이에 미련이 남지 않았고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 쯤에는 나도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어서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다만, 나의 목표는 프랑스에서 취업을 하는 것이었고 석사는 그저 필요조건이었다는 사실이 달랐을 뿐. 그래서 나는 내가 목표한 바를 이뤄내고 싶다는 마지막 미련 하나 때문에 남아서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이별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건 명백했다. 나도 이랬다 저랬다, 어떤 날은 이곳에 남고 싶다가 다음 날은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를 반복했는데 상대도 그랬을 거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깨지기 쉬운, 그리고 언젠가는 깨질 유리구슬 같다는 생각을 늘 하니까. 우리가 더 이상 같은 도시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영영 만나지 못할 거라는 뜻은 아님을 알지만, 그리고 서울에서든 도쿄에서든 우리는 또 만나게 되겠지만 우리의 한 시절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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