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어떤 시인의 시집을 읽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지 못했던 말들의 조합이라니, 아름답고 기막힌 표현들을 이렇게 마구 써버리면 난 뭘로 시를 쓰나’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후 시 쓰기를 그만뒀기 때문에 시인들이 세상의 멋진 직유와 은유를 다 써버리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와도 책과도 많이 멀어진 채로 살아오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고 나니 책을 읽게 되고, 내용의 깊이만큼이나 아름다운 단어로 채워진 책을 만나노라면 가슴이 뛰었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은 표현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쓸 수 있다면’이라는 부러움이 잔뜩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쓰는데 왜 눈물이 나려 하는 걸까....?)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내 삶과 언어의 수준을 아니깐. 꿈은 뭐든 꿀 수 있지만 정말 혼자 맘속에만 간직하고 실제로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여전한 두려움.....
이제 와 생각하니 다 써버리고 나면 바닥이 보일 것 같았던 언어의 창고란 애초에 없었다 싶다. 세상과 삶, 지구와 여전히 팽창하고 있는 우주는 언어와 의미의 무한한 원석으로 채워진 보고(寶庫) 일 것 같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조인(創造人)들은 원석을 발견하고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창조의 작업들을 가능하게 하는 건 성실과 고뇌라는 연장과 더불어 타고난 재능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영감일 것이다.
예쁜 것을 보는 것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어떤 창작물보다 글에서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글을 쓰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내게 ‘아름다움’은 외양뿐 아니라 내면의 깊이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난 아름다운 글을 써내고 싶은 거다. 통찰과 깊이를 지닌 멋진 표현들이 누군가에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그런 미문(美文)들을. 독자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위안과 위로를 주는 공감적 교류를 글을 통해 이루어보고 싶다. 상상만 해도 기쁜 그런 연대를 느끼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래, 글에 대한 찬사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토닥여 주는 연대가 훨씬 더 좋다.)
여기에 한 가지 바람을 더 보태자면 친절한 글을 쓰고 싶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답을 먼저 찾은 사람이 그 수수께끼에 대한 힌트를 주듯이, 혹은 자신이 답을 찾아간 여정을 일러 주듯, 아니면 속 시원하게 바로 그 답을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길 원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쩌면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자라기보다 발견자가 아닐까? 혹은 세상의 숨겨진 보화들을 찾아내는 탐험가 내지 발굴가. 난 그렇게 발견한 (원래 내 것이 아닌) 빛나는 것들로 누군가의 마음을 비추고 위로하고 싶다. 안아주는 글이 될 수 있다면 황홀할 것 같다.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함께 울어주고 다독여주어 일어날 힘을 보태는 글, 누군가를 살려내는 호흡을 지닌 살아있는 글, 바로 이런 영감 어린 글을 쓰고 싶다. 때로는 유형풀이집이나 기출문제집처럼 일상적이고 익숙한 예제들로 누군가의 숙제와 문제를 돕는 글이 되고도 싶다.
무명작가, 무명 가수라는 말이 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텐데 유명하다는 말의 반대로 ‘무명’을 사용한다. 천재 화가 고흐마저도 당대에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고독한 무명작가였다. 예술가에게서 자신의 작품이 사랑받는 것은 작품이 생명을 얻는 일 같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네는 예술가들은 친절한 대답에 너무나 갈급할 수밖에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막는 두려움은 그런 외면으로 외로운 작가가 될까 봐 하는 두려움인 것 같다. 소심한데 목소리까지 작아서 용기 내어했던 말들이 외면당했던 숱한 기억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여전히 나를 쪼그라들게 하는데, 마치 그런 위축됨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찾아올까 하는 그런 두려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풀꽃이 일생을 다해 피고 지며 자신의 색과 향기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존재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꿈이 어떻게 자라고 피어날지, 어떤 이가 사랑스럽게 보아줄지 모르겠지만 가슴 뛰는 일을 외면하지 않고, 고뇌와 힘겨움을 피하고 싶은 게으름도 과감히 벗어던지고 두려움에 망설이던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디뎌봄이 어떨까? 마치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미루고 있던 고백을 작정하듯 두려울지라도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 봤더니 역시나 깜냥이 부족했다는 결론에 이를지라도 열심히 난 나의 꽃을 피웠다 자부할 수 있도록.